그 뒤 담주 운개산 해회사에 머물면서 남긴 어록
[後住潭州雲蓋山海會寺語錄]
서주(舒州) 백운봉(白雲峰)에서
법제자 수단(守端)이 편집함
1.
스님께서 흥화사(興化寺)에서 개당할 때 부주(府主) 용도(龍圖)
가 스님에게 소(疏)를 건네 주니 그것을 받아들고서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부주 용도와 여러 관료가 여러분에게 제일의(第
一義諦)를 모두 설명했다. 여러분은 알아들었느냐. 알았다면 집과
나라가 편안하여 한 집안일 같겠지만, 몰랐다면 승정(僧正)에게
수고를 끼치노니, 승정은 표백(表白:唱導)에게 주어서 세상사람
이 알게 크게 읽도록 하라."표백이 소를 선포하고 나서 말하기를
"오늘은 훌륭한 관원(官員)들이 안개처럼 에워싸고 바다같은
대중들이 법회에 임하였습니다. 높은 중에서도 가장 높은 법문
[最上上乘]을 스님께서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최상상승이라면 모든 성인도 비켜서야 하고 불조도 자취를 숨
겨야 한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그대들 모두가 옛 부처와 같기 때
문이다. 믿을 수 있겠느냐. 믿을 수 있다면 모두 흩어지거라. 흩
어지지 않는다면 산승이 여러분을 속일 것이다."
그리고는 드디어 법좌에 오라 향을 집어들고 말씀하셨다.
"이 향[一瓣香]으로 우리 황제의 성수(聖壽)가 길이 무궁하기를
축원합니다."
또 향을 들어올리고 말씀하셨다.
"이 향은 지부(知府) 용도와 그 관속들에게 올리노니 업드려 원
하옵건대 항상 국록을 받는 자리에 계시옵소서."
다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귀결점을 알았느냐. 모른다면 설명해 주어서 석상
산(石霜山) 자명(慈明)선사께서 법유(法乳)를 먹여 길러주신 은혜
에 보답하고자 하나 이제 나는 천지에 불 놓은 것을 면치 못하게
되었구나."
그리고는 마치매 향을 사루셨다.
정행대사(淨行大師)가 백추(白槌)를 치면서 말하기를 "법회에
모인 용상 대중은, 제일의(第一義)를 관찰해야 한다"고 하자 스님
께서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이는 벌써 두번째 세번째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대장부의 기상을 자부하지 않느냐. 그렇지
않는 자는 의심이 있거든 질문하라."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옛날에 범왕(梵王)이 부처님께 법을 청하자 하늘에서 네 가지
꽃비가 내렸는데, 부주(府主)가 법회에 오셨으니 어떠한 상서가
있겠습니까?"
"조각구름은 산 앞에서 걷히고 소상강(瀟湘江)물결은 절로 잔잔
하구나."
"대중이 은혜를 입었으니 학인은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머리 끊긴 뱃사공이 양주(楊洲)로 내려가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군사를 매복하고 무기를 휘두르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오
늘 당장의 일을 어떻습니까?"
"내가 인간세계에 와서 이렇게 솜씨좋은 선지식은 처음 보았
다."
그 스님이 손으로 획을 한 번 긋자 스님께서 "몸을 양쪽에 나누
어 보라" 하셨다.
이어서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질문 있는 자는 나오너라.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가장 수
승하다.
조사의 종지에 의거하여 법령을 내린다면 조사와 부처도 종적
을 숨기고 천하가 깜깜할 것인데, 어찌 여러분이 여기 서 있을 여
지를 용납하며 하물며 산승이 입을 벌리기를 기다리랴.
그렇긴 하나 우선 두 번째 기틀[第二機]에서라면 약간의 언어문
자를 설하고 큰 작용을 번거롭게 일으켜 움직이는 족족 완전한 진
실이다. 이미 진실이라 이름하나 진실을 여의지 않고 성립하였으
므로 그 자리가 바로 진실이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 생겨나 그
자리에서 해탈함을 바로 여기서 알아야 하는데, 이를 '시끄러운
시장 속에서 찰간대에 오르니 사람들 모두가 그것을 본다'고 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말해 보라. 금과 금을 바꾸지 않는 한마디를 무어라고
해야겠는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나와서 엎어지고 뛰어
보아라. 없다면 오늘은 내가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영광스럽게도 지부용도통판(知府龍圖通判)
과 여러 관속들로부터 운개산 도량에 머물러 달라는 청을 받았다.
이는 모든 관료의 원(願)이 깊고 커서 나라에 충신이 되어 법의
깃발을 세워서 위로 황제의 복을 장엄했다 할 만하다.
그러므로 모든 관속들은 산같이 장수를 누리면서 훌륭한 임금
을 길이 보좌하여 팔다리같은 신하가 되고 부처님의 시주가 되어,
모든 절의 큰스님과 법회에 모인 신도들과 함께 세세생생에 큰 불
사 짓기를 기원한다. 오랫동안 서 있느라 수고하였다. 몸조심하여
라."
2.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봄비가 골고루 적셔 주는데 한 방울 한
방울이 딴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더니 주장자를 들어서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알았느냐. 9년을 부질없이 면벽하니 늙어감에 더욱 마음만 고
달프구나."
3.
설날 아침에 상당하시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묵은 해는 이미 섣달을 따라가버렸습니다. 오늘 새 봄의 일은
어떻습니까?"
"발우 속이 가득하구나."
"그렇다면 윤달은 3년에 한 번씩 오고 9월이면 중양절(重陽節)
이겠군요."
"들불이 타지 않아서 봄바람이 부니 다시 살아나는구나."
"제방(諸方)에 이 말씀을 꼭 전하겠습니다."
"이 운개의 말후구 한마디를 어떵게 말하려느냐?"
"칠구 육십삼입니다"
"말이나 외우는 놈아!"
이어서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봄바람은 칼같고 봄비는 기름[膏]과도 같아서 율령(律令)이 올
바로 시행되니 만물의 정이 움직인다. 그대들은 실제의 경지를 밟
는 한마디를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나와서 동쪽에서 솟고 서쪽에
서 잠기는 자리에서 말해 보아라. 설사 말한다 해도 양산(梁山)의
노래이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른 아침 맑음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들 보아 왔는데 다시 어
떻냐고 묻는다면 역시 어리석은 사람이다."
5.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티끌 하나가 이니 온누리를 다 거둬들
인다"하더니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이제 일어나는구나" 하셨
다.선상을 한 번 치고 말씀하셨다.
"산하대지가 여러분의 눈동자를 막아버렸다. 남에게 속지 않을
사람이 있거든 나와서 말해 보아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옥피리를 비껴 부니 천지가 요동하는데 이제껏 알아줄 이[知
音]를 만나지 못했구나. 참구하라."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몸과 마음이 청정하면 모든 경계가 청정하고, 모든 경계가 청
정하면 몸과 마음이 청정하다. 이 늙은이의 귀결점을 알겠느냐?"
그리고는 말씀하시기를 "강뭉에다 돈을 빠뜨리고 물 속을 휘젖
는구나" 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이 일은 밤송이나 부들[蒲]을 삼키듯 선(禪)을 설명하는
것과는 다르다. 여기서 알아낸다면 불법이 천지처럼 현격하게
다르리라."
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삼춘(三春)이 끝나려 하니 사해(四海)가 맑게 트이고, 바람이
잠잠해져 물결이 고요하구나. 이런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
보라. 긴 것을 가지고 짧은 것에 보태는 한마디를 무어라 하겠느
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검은 바람은 큰 바다를 몇 번이나 뒤집었는가. 이제껏 고깃배
기우뚱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네. 참구하라."
9.
상당하여 주장자를 잡고 한 번 내려치더니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달마에게 참다운 소식이 있다해도 그것은 여러분
을 두 번째 기틀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참구하라."
1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날이 잠깐 개이니 물물이 화창하게 퍼진다. 발걸음을 드니 천
신(千身)의 미륵이요, 움직이며 작용하니 곳곳마다 석가인데, 문
수와 보현이 다 여기에 있다. 대중 가운데 남에게 속지 않을 사람
이 있거든 말해 보아라. 나는 밀기울까지 국수로 판다. 그렇긴 하
나 포대 속에 송곳을 가득 담았구나."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말 있음과 말 없음은 등넝쿨이 나무를 의지함과 같으니 문수와
유마는 손을 놓고 되돌아 간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 해도 금길[金
路]에 땜질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여기에 한마디가 더 있으니
잘못 꺼내지 말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하하하, 이것이 무엇이냐? 큰방 안에
서 차나 마시거라" 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상당하여 주장자를 던지고는 말씀하셨다.
"석가노인이 가부좌를 하고 내가 횡설수설하는 것을 몰래 비웃
는다. 그렇긴 하나 세상은 공평하여 부지런함을 가지고 못난 것을
보완한다. 참구하라."
14.
관료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절로 돌아와서 상당하여 말씀하셨
다.
"석가느인이 선봉이 되고 미륵보살이 뒤를 따른다. 대중 가운데
힘을 쓸 수 있는 자가 있느냐? 나와서 내게 그 힘을 보여다오.
없다면 내가 스스로 신통을 보이겠으니 사나흘 드나들면서 보아
라.
수좌와 대중들이여, 말해 보라. 여기에도 막히고 걸릴 도리가
있는가? 그대들이 승당 안에서 발우를 펼 땐 그대들과 함께 펴
고, 졸 땐 그대들과 함께 졸며, 서 있을 땐 그대들과 함께 서 있
다. 키 큰 사람은 법신이 길고, 키 작은 사람은 법신이 짧다. 미
륵의 운용과 가고 옴이 어느 곳인들 간격이 있으랴. 그렇기는 하
나 말해 보라. 내가 뱃머리에 있느냐, 배 끝에 있느냐? 대중 가
운데 간파해낸 영리한 납승이 있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사람마다 평지에서는 험하다고 하나 누각에 오르고서야 먼 산
이 푸름을 깨닫는다[人人盡道平地險 登樓方覺遠山靑]. 참구하라."
1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눈이 와서 그 어디나 눈이 부시게 깨끗한데 황하수는 꽁꽁 얼
어 실오라기만한 흐름도 끊겼다. 빛나는 햇빛 속에서 매서움[烈]
을 쏟아내야만 하니, 매서움을 쏟아냄이여. 나타(那陀 : 비사문
天)의 머리 위에서 가시덩쿨을 먹고 금강역사의 발 아래서 피를
흘려낸다. 참구하라."
1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저울추를 밟으니 무쇠처럼 딱딱한데 벙어리는 꿈을 꾼들 누구
에게 말하랴. 수미산 꼭대기에는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대고 큰 바
다 밑바닥에선 뜨거운 불을 만났다. 참구하라."
17.
상당하여 선상을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강호의 오뉴월 그리워하지 말고 낚싯줄 거두어 돌아가거라."
1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선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그저 먹고 자기를 조하할 뿐이
다. 진동하는 하늘의 우뢰를 쳐서 움직인다 해도 그것은 반푼어치
도 못된다."
19.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한마디에 몸을 바꿀만한 옛사람의 한
마디 공안을 들어 대중에게 보시하노라" 하더니,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입은 그저 밥 먹기 만을 좋아할 뿐이로구나" 하셨다.
20.
양기 전(楊岐詮) 노스님이 찾아오자 스님이 상당하여 말씀하셨
다.
"꽃을 들어 부촉하니 당사자[當人]를 굴복시켰고, 면벽 9년에
오랑캐가 중국말 하니 당사자들로서는 천지를 휘어잡았다. 말해
보라. 무엇이 천지를 휘어잡는 한마디인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면 내가 손해를 보았다."
21.
양전제형(楊 提刑)이 산 아래를 지나가자 스님께서 나아가 맞
이하였더니, 제형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누구의 법을 이었습니까?"
"자명(慈明)대사를 이었습니다."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그분의 법을 이었습니까?"
"같은 발우에 밥을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보지 못했군요."
스님이 무릎을 누르면서 말하였다.
"어느 점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양전제형이 크게 웃자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제형이라야 되겠
소" 하였다.
다시 "절에 들어가 향을 사루시지요" 하니 양전제형은 "기다려
주십시오. 돌아가겠습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스님께서 차와 글을 드리니 양전제형이 말하였다.
"이런건 되려 필요치 않습니다. 무슨 무미건조한 선[乾 底
禪]이 있기에 약간만 보기도 힘드는지요?"
스님께서 차와 글을 가르키며 말씀하셨다.
"이것도 필요치 않다면서 더구나 무미건조한 선이겠습니까?"
양전제형이 머뭇거리자 스님께서 게송을 지으셨다.
왕신(王臣)으로 나타내보이니 불조가 어찌할 바를 모르네
미혹의 근원은 지적하려고 숱한 사람을 죽였다네.
示作王巨佛祖罔措 爲指迷源殺人無數
그러자 양전제형이 말하기를 "스님은 무엇 때문에 자신을 겁탈
하십니까?" 하니 스님께서 "원래 우리집 사람이었군" 하셨다. 양
전제형이 크게 웃자 스님께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셨다.
22.
만수(萬壽)스님이 먼저 도착하고 이어서 편지가 이르자, 스님께
서 물었다.
"만수봉(萬壽峰) 앞의 사자후를 이 사람〔當人〕이 되받아치느
일은 어떠한가?"
"펄쩍 뛰어 33천에 오릅니다."
"그렇다면 내게 당장 들킬 것이다."
"좀도둑이 크게 패했습니다."
"두번 간파하지는 않을 터이니 앉아서 차나 마시게."
23.
용흥(龍興)의 자(孜) 노스님이 돌아가시자 한 스님이 편지를 가
지고 오니 스님께서 물었다.
"세존께서는 입멸하여 곽에 두 발을 보이셨는데, 스님께서는 돌
아가시면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더냐?"
그 스님이 말이 없자 스님이 가슴을 치면서 "아이고! 아이
고!" 하였다.
24.
자명스님이 돌아가시자 한 스님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스님께
서는 대중을 모으고 초상화를 걸어놓고 장례를 거행하려 하셨다.
스님께서 초상화 앞에 이르시더니 좌복을 들고서 "대중들이여, 알
겠는가?" 하시고는 이윽고 초상화를 가르키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지난날 핼각할 때 이 노스님께서 120근이나 되는 짐을 내
몸 위에 놓아 두셨는데 지금은 천하태평을 얻었다."
대중을 돌아보시면서 "알겠느냐" 하였는데 대중이 말이 없자 스
님께서는 가슴을 치면서 말씀하셨다.
"아아, 슬프다. 바라옵건대 맘껏 드시옵소서."
25.
자명스님의 제삿날에 재를 열어 대중이 모이자 스님께서는 초상
화 앞으로 나아가셨다. 두 손으로 주먹을 모아 머리 위에 얹고,
좌복으로 한 획을 긋더니 일원상(一圓相)을 그리셨다. 이어서 향
을 사루고는 세 걸음을 물러나 큰절을 하시니 수좌가 말하였다.
"괴이한 짓을 날조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스님께선 괴이한 짓을 날조하지 마십시오."
"토끼가 소젖을 먹는구나."
제2좌(第二座)가 앞으로 나가 일월상을 그리고 이어서 향을 사
루고는 역시 세 걸음을 물러나 큰절을 하자, 스님께서는 그 앞으
로 가서 듣는 시늉을 하셨다. 제 2좌가 무어라고 하려는데 스님께
서 뺨을 한 대 치고는 "이 칠통이 횡설수설하는구나" 하셨다.
26.
무천(武泉)의 상(常) 노스님을 전송하러 문을 나왔다가 물으셨
다.
"문을 나셨으니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겠는데, 집에 도착하는 한
마디를 무어라고 말하겠습니까?"
"스님께선 주지나 잘 하시오."
"이렇다면 몸이 쓸쓸한 그림자를 따라가며 발이 크니 짚신도 널
찍하겠군요."
"스님께서 밭이나 잘 갈아두시오."
"토끼가 언제 굴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까?"
27.
하루는 신참승 셋이 찾아왔는데 스님께서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반드시 지혜로운 이가 있다…하였는데" 하고는 좌복을 들고
말씀하셨다.
"참두(參頭 : 수좌)는 이것을 무어라고 부르겠느냐?"
"좌구(坐具)입니다."
"참말이겠지."
"그렇습니다."
"이것을 무어라고 부르겠느냐?"
그 스님이 "좌구입니다" 하자 스님께서는 좌우를 돌아보더니
"참두가 되려 안목을 갖추었구나" 하고는 다시 제2좌에게 물으셨
다.
"천리길을 가려면 한 걸음이 최초가 된다 하는데 무엇이 최초의
한 마디이더냐?"
스님께서 한 손으로 한 획을 긋자 그 스님은 "끝났습니다[了]"
하였다. 스님께서 두 손을 펴자 그 스님이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
께서 "끝났다" 하셨다.
다시 제3좌에게 물으셨다.
"요즈음 어디서 떠나 왔느냐?"
"남원(南源)에서 왔습니다."
"내가 오늘 그대에게 간파당했구나.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28.
하루는 신참승 일곱 명이 찾아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진이 완벽하게 쳐졌는데 솜씨좋은 장수는 무엇 때문에 진을 나
와 겨뤄보지 않느냐."
한 스님이 좌구로 갑자기 후려치자 스님께서 "훌륭한 장수로군"
하셨다. 그 스님이 다시 후려쳤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좌
구, 두 좌구 해서 어쩌자는 것이냐?"
스님들이 무어라 말하려는데 스님께서 등을 돌리고 섰다. 그가
다시 후려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말해 보라. 내 말이 어디에 귀결되는가."
그 스님이 얼굴을 가르키면서 "여기 있습니다"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30년 뒤에 눈 밝은 사람을 만나거든 잘못 들먹이지나 말아라.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거라."
29.
하루는 도오산의 공양주 스님이 편지를 가지고 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봄비가 잠시도 쉬지 않고 내리느데 물흐름〔波瀾〕을 거슬리지
말고 한번 말해 보아라."
"편지를 조금전에 이미 전해드렸습니다."
"이것은 도오 것이고, 저것은 화주(化主) 것이로구나."
공양주가 가르키면서 "봄비가 계속 옵니다" 하자 스님께서는 손
뼉을 치며 크게 웃더니 말씀하셨다.
"반푼어치도 안되는군."
공양주가 대뜸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눈먼 놈아, 조금전에 반푼어치도 안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악을 써서 무얼 하려느냐."
공양주가 손뼉을 한 번 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30.
하루는 석상산의 공양주 스님이 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정벌하러 가는 장수가 길을 빌려 지나가는구나. 방비가 이미
완벽한데 무엇 때문에 나와 한판 붙어보지 않느냐."
"지난날엔 도중에서 잘못 찾았더니 오늘은 노련한 선지식을 친
견하는군요."
"내 우선 조금만 싸움을 걸겠다."
공양주가 별안간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께서는 "그렇게 허
둥지둥해서 무얼 하려느냐" 하셨다.
공양주가 좌구를 가지고 한 획을 긋자 스님께서 "재가 끝나고
종을 치는구나" 하셨다.
공양주가 "허(噓)!" 하자, "이것일 뿐 다시 더 있겠느냐" 하셨
는데 공양주가 말이 없자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패전한 장수는 목을 베지 않는 법이다. 우선 앉아서 차나 마
셔라."
31.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양기산에 오는 길은 험한데 어떻게 귀한 걸음을 하셨습니까?"
"스님께선 다행히도 대인이십니다."
"에, 에〔 〕."
"스님께선 다행이도 대인의 스승이십니다."
"나는 요즈음 귀가 먹었다. 우선 앉아서 차나 마셔라."
32.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가을 빛이 완연한데 아침에 어디서 떠나 왔느냐?"
"지난 여름에는 상람사(上覽寺)에 있었습니다."
"앞길을 밟지 않는 한마디를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두겹의 공안이군요."
"그대의 대답이 고맙네."
그 스님이 별안간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서 이런 헛것을 배웠느냐?"
"눈 밝은 큰 스님은 속이기 어렵군요."
"그렇다면 내가 그대를 따라가리라."
그 스님이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고향 사람인 것을 생각해서 30대만 때리겠다."
33.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구름은 깊고 길은 험한데 어떻게 귀한 걸음을 하셨습니까?"
"하늘은 사방에 벽이 없습니다."
" 짚신 꽤나 닳렸겠군."
그 스님이 별안간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께서 "한번,두번,
할을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하셨다. 그 스님이 "그대는 이 노승
을 보아라"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주장자도 없잖아!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34.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ㅆ은 낙엽더미가 구름처럼 쌓였는데 아침에 어디서 떠나 왔느
냐?"
"관음사(觀音寺)에서 왔습니다."
"관음의 발밑을 한마디로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조금전에 이미 만나 보았습니다."
"만나 본 일은 어땠느냐?"
그 스님이 말이 없자 " 제2좌가 참두(參頭)수좌 대신 일러 보아
라" 하셨는데 또 대답이 없자 "피차 서로를 바보로 만드는구나"
하셨다.
35.
하루는 신참승 여덟 명이 찾아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일자진(一字陣)이 완벽하게 쳐졌는데 솜씨가 좋은 장수는 무엇
때문에 진을 나와서 나와 겨뤄보지 않느냐?"
한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말을 돌이켜 보십시오."
"나는 오늘 말[馬]을 껴안고 깃대를 끌겠다."
"새로 계를 받은 이가 후퇴를 알리는 북을 칩니다."
"말해 보아라"
그 스님이 머뭇거리자 다시 "말해 보아라" 하셨는데 그 스님이
손뼉을 한번 치자 "그대의 대답에 감사하네" 하셨다.
그 스님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장수가 용맹하지 못하면 화가 삼군(三軍)에 미친다. 우선 앉아
서 차나 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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