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양기산 보통선원 회화상 어록
(袁州楊岐山普通禪院會和尙語錄)
강녕부(江寧府) 보녕선원(保寧禪院)
법제자 인용(仁勇)이 편집함
1.
스님께서 균주(筠州) 구봉산(九峰山)에 계실 때, 소(疏)를 받고
나서 법의를 입고 대중에게 그것을 들어보이면서 말씀하셨다.
"알계느냐! 모르겠다면 오늘 괜히 물빛 암소떼 속으로 뛰어들
어간 셈이다. 알았느냐! 균양(筠陽)의 아홉 구비에 부평초[萍實]
인 양기(楊岐)이다."
그리고는 법좌에 올랐는데, 그때 한 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나오
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늙은 어부는 아직 낚시도 던지지 않았
는데 팔짝 뛰는 고기는 파도에 부딪치면서 오는구나" 하자 그 스
님은 대뜸 악! 하고 할을 하였다. 스님께서 "말을 하지 그러느
냐" 하자 그 스님은 손뼉을 치며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용왕의 굉장한 바람을 쓰는그나"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어느 가문의 곡조를 부르며, 누구의 종풍을 이었습니까?"
"말이 있으면 말을 타고 말이 없으면 걸어가지요."
"젊은 스님인데도 기지와 계산이 훌륭하시군요."
"그대가 늙은 것을 생각해서 30대만 때리겠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다리가 셋 달린 나귀가 절룰절룩 가는구나."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호남의 장로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인(人)과 법(法) 양쪽을 다 버린다 해도 납승 최고의 경계는
아니며, 부처와 조사를 둘 다 잊는다 해도 학인에게는 의심이 가
는 곳입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께 학인을 지도하시는지 모르겠습니
다."
"그대는 새 장로를 간파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생나무를 땔감으로 찍어다가 잎이 달린 채로 태워야
하겠군요."
"칠구 육십삼이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더 질문할 사람이 있느냐? 대중 속에서 한번 나와 봐라. 오늘
내 목숨은 그대들 손아귀에 달렸으니 이리 끌던 저리 끌던 한번
마음대로 해보아라. 어째서 그렇겠느냐. 대장부라면 대중 앞에서
결택(決擇)해야지 등뒤에서 마치 물에서 호로병을 누르듯 해서는
안되며, 대중 앞에서 증거를 내놔야지 얼굴이 불거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있느냐, 있어? 나와서 결택해 보아라. 없다면 나만 손
해를 보았다."
스님께서 법좌에서 내려오자마자 구봉 근(九峰勤)스님이 붙들어
세우고는 말하였다.
"오늘은 기쁘게도 동참(同參)을 만났소."
"동참하는 일이란 어떤 일입니까?"
"구봉은 쟁기를 끌고 양기는 고무래를 끄는 것이오."
"바로 그럴 때 양기가 앞에 있습니까, 구봉이 앞에 있습니까?"
구봉스님이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이 밀어제치면서 말하였다.
"동참이라 하렸더니 그게 아니었군."
2.
스님께서 절에 처음 들어가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양기산의 경계입니까?"
"외로운 소나무는 바윗가에서 우뚝하고, 원숭이는 산을 내려가
면서 운다."
"무엇이 그 경계 속에 있는 사람입니까?"
"가난한 집 여자는 대바구니를 들고 가고, 목동은 피리를 불면
서 물을 향해 돌아간다."
스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안개는 긴 허공으로 사라지고 바람은 큰 들판에서 일어나니 온
갖 풀이며 나무가 큰 사자후를 내어서 마하대반야(摩訶大般若)를
연설하고 3세 모든 부처님이 그대들 발꿈치 아래서 큰 법륜을 굴
린다.
알아들었다면 공을 헛들이지 않았겠지만, 몰랐다면 양기산의 산
세가 험하다 말하지 말라. 앞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하나 더 있
다."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백장(白丈)스님은 불을 들고 발을 갈면서 불법대의를 설하였다
는데, 이것이 무슨 말이겟느냐? 나도 이틀 동안 벼를 심었는데 역
시 대단한 법문이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달마대사는 앞 이빨이 없다"라고
하셨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한 가지 요점[一要]은 모든 성인의 그것과 똑같이 오묘한
데, 이것을 대중에게 보시하리라."
선상을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과연 비춤[照]을 잃었군."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한마디 말[一言]은 모나면 모난대로 둥글면 둥근대로 하
는 것이니 만일 조금이라도 헤아렸다가는 십만 팔천 리나 틀린 것
이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한 마디 말[一語]은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꾸짖는다. 눈
밝은 사람 앞에선 잘못 거론하지 말아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한 구절[一句]은 재빨리 착안해서 엿보아야 한다. 길다란
선상 위에서 숟가락 들고 젓가락 드는구나."
그리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물살 급한 강물에 낚시를 드리워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큰 자
리를 낚아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저 허공 밖으로 손을 놔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
는구나."
"아는 일은 어떤 일입니까?"
"구름이 고갯마루에서 일어나는구나."
"솜씨좋은 선지식은 역시 자연스럽습니다."
"이 말이나 외우는 놈아!"
그리고는 스님께서 말을 이으셨다.
"한 법도 보지 않는 이것이 큰 병통이다."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석가노인의 콧구멍을 뚫어버렸다. 몸을 벗어날 한 구절을 어떻
게 말하겠느냐. 물로 물을 씻지 못하는 곳에서 한마디 해보아라."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을 이으셨다.
"지난날 산 아랫길로 다니지 말라 하더니 과연 애간장을 끊는
원숭이 울음소리를 듣는구나."
9.
상당하여 선상을 손으로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마음마음일 뿐이니, 마음이 부처로서 시방세계에서 가장 신령
한 물건이다. 석가노인도 꿈을 설명하였고, 3세 모든 부처님도 꿈
을 설명하였으며, 천하의 노스님들도 꿈을 설명하였다. 여러분에
게 묻노니 꿈을 꾸어본 적이 있느냐. 꿈을 꾸어보았다면 한밤중에
한마디 해 보라."
한참 잠자코 있더니 말씀하셨다.
"인간에게 진짜 소식이 있다 해도 나에게 차례대로 꿈을 설명해
보아라. 참구하라."
1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하늘 땅에 눌러앉으니 천지가 암흑하며 하나[一着]를 놓아주니
비바람이 순조롭다. 그렇기는 하나 속된 기운이 아직 없어지지 않
았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속의 시끄러움을 벗어버리려면 응당 옛 가르침을 보아야
한다 하는데, 무엇이 옛 가르침입니까?"
"천지에는 달이 밝고 푸른 바다엔 파도가 맑구나."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발밑을 보아야 한다."
"홀연히 넘실대는 큰 파도를 만났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하나〔一着〕를 놓아주어 네거리에서 종횡무진할 때는 또 어떻
겠느냐?"
그 스님이 대뜸 악! 하고는 손뼉을 한번 치자 스님께서 말씀
하셨다.
"이 역전의 장수를 보라"
"풀을 쳐서 뱀을 놀래켰군요."
"그래도 모두가 알아야 한다."
스님께서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하나가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이 하나이다[一卽一切 一切卽一]"하고는 한 획을 긋고 말씀하셨
다.
"산하대지와 천하의 노스님이 산산히 부서졌는데 무엇이 여러분
의 본래면목이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칼은 공평하지 못한 일 때문에 보배 칼집을 떠나고,약은 병을
고치기 위해서 황금 병에서 꺼내진다."
악!하고 할을 한번 하고 주장자를 한 번 내려치더니 "참구하
라!" 하셨다.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가을 비가 가을 숲을 씻으니 가을 숲이온통 비취빛이구나.
슬프다. 부대사(傅大士)여, 어느 곳에서 미륵을 찾느냐."
1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박복하게도 양기산에 머문 뒤 해마다 기력이 쇠약해 간다. 찬
바람에 낙엽은 시들한데 그래도 옛친구 돌아오니 기쁘구나. 랄랄
라.
불 꺼진 나무토막을 끄집어내서 연기 나지 않는 불에다 던진
다."
1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내게는 정통 종지가 없고, 발을 갈아 다같이 밥을 먹을 뿐이
다. 꿈을 말한 석가노인은 어디서 그 종적을 찾을까."
악!하고 할을 한번 하고 선상을 한 번 치더니 "참구하라!" 하
셨다.
1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범부도 성인도 없는데 부처와 조사가 어찌 성립하랴. 대중들이
여, 맑고 평화로운 세계에서는 시장에서 멋대로 물건을 빼앗는 것
을 허락하지 않는다."
1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내 잠시 머무는 집의 담벽은 헐어 침상 가득 진주빛 눈발 쌓이
니 목을 움츠리고 가만히 탄식해 본다."
그리고는 한참 잠자코 있다가 "나무 밑에 살았던 옛 어른을 돌
이켜 생각해 본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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