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해제에 상당하여
태후전 (太后殿) 에서 가사 한 벌을 보내오다
스님께서 법의를 들고 말씀하셨다.
"대유령 (大庾嶺) 꼭대기에서 들어도 들어지지 않을 때에는 다투어도 모자라더니, 놓아버려 깨달았을 때에는 양보해도 남는구나."
향을 사른 뒤에 말씀하셨다.
"천 분 성인도 전하지 못하던 것을 어찌 한 사람이 친히 전하겠는가. 대중은 아는가. 접고 펴기는 비록 내게 있으나 거두고 놓기는 그대에게 있다."
가사를 입고 법좌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 자리는 많은 사람이 오르지도 못하였고 밟지도 못하였는데, 이 산승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몸도 움직이지 않은 채 올라갈테니 대중은 자세히 보라."
스님께서는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가사자락을 거두고 자리를 펴고 앉아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구 (主句) 인가, 빈구 (賓句) 인가. 파주구 (把住句) *인가, 방행구 (放行句) *인가.
대중은 가려내겠는가. 가려낼 수 있겠거든 당장 흩어지고, 가려내지 못하겠든 내 말을 들으라. 맨처음 한마디와 마지막 한 기틀 〔機〕 은 3세의 부처님네나 역대의 조사님네도 알지 못하는 것인데, 지금 대중의 면전에 들어 보이니 북을 쳐서 대중운력이나 하여라.
천년의 그림자 없는 나무가 지금은 밑 빠진 광주리가 되었다. 2천년 전에도 이러하였고 2천년 후에도 이러하며, 90일 전에도 이러하였고 90일 후에도 이러하다. 위로는 우러러야 할 부처도 없고 밑으로는 구제해야 할 중생이 없는데, 무슨 장기 (長期) ·단기 (短期) 를 말하며 무슨 결제·해제를 말하는가."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양쪽을 끊었고 가운데에도 있지 않다. 빈 손에 호미 들고 걸어가면서 물소를 탄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는데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는구나."
할을 한 번 하고는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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