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록(懶翁錄)

24. 승하하신 대왕의 빈전 (殯殿) 에서 소참법문을 하다

通達無我法者 2008. 3. 19. 15:30

 

 

 

24. 승하하신 대왕의 빈전 (殯殿) 에서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손 가는대로 향을 집어 향로에 사르는 것은 승하하신 대왕 각경선가 (覺穀仙駕:공민왕을 말함) 께서 천성 (千聖) 의 이목을 활짝 열고 자기의 신령한 근원을 증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향을 꽂으셨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기대앉아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주장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대왕은 아십니까. 45년 동안 인간세상에 노닐면서 삼한 (三韓) 의 주인이 되어 뭇 백성들을 이롭게 하다가, 이제 인연이 다해 바람과 불은 먼저 떠나고 흙과 물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대왕은 자세히 들으소서. 텅 비고 밝은 이 한 점은 흙이나 물에도 속하지 않고 불이나 바람에도 속하지 않으며, 과거에도 속하지 않고 현재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가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오는 것에도 속하지 않으며, 나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죽는 것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금 어디로 가겠습니까?"
주장자를 들고는 "이것을 보십니까?" 하고 세 번 내리치고는 "이 소리를 들으십니까?" 하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허공을 쳐부수어 안팎이 없어 한 티끌도 묻지 않고 당당히 드러났다. 몸을 뒤쳐 위음왕불 (威音王佛)  뒤를 바로 뚫고 가시오. 둥근 달 차가운 빛이 법상 (法滅) 을 비춥니다."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