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空卽是色
아이고(我離苦) 이래도 모르시겠습니까?
감히 말씀드리면 제 인생의 목표는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적 수준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야 국민 중에서 스님도 되고, 목사님도 되고, 신부님도 되는 것이니 종교적 수준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출가한 중이므로 우선 불교집안의 수준부터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마음가짐일 겁니다. 제가 속한 불교집안의 속내부터 터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2004년 10월 6일 벌어진 일입니다. (아래 글은 현대불교신문의 10월7일자 기사 중 발췌했습니다.)
10월 6일 오후5시 해인사 대웅전에서 법전 스님은 해인사 주지 세민 스님을 비롯해 현응, 원택, 선각 스님 등 해인사 산내 대중스님과 심우조 합천군수 등 군내 주요 기관장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수성 전前 국무총리를 범국민 추진위원장에 위촉하는 위촉패를, 해인사 주지 세민 스님을 총도감에 임명하는 임명장을 수여했다. 또 스님은 이수성 전前 총리를 “남북통일, 국운융창 세계평화를 발원한 원력의 화신”이라며 치하하고, “동판대장경 불사의 회향을 위해 해인사 사부대중과 동판 대장경 추진위원회는 새의 양날개가 되어 불사의 원만회향을 위해 힘을 모아 정진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어 이수성 前 국무총리는 인사말을 통해 “불자가 아닌 가톨릭 신자이며 큰 자리를 맡기에 부족한 점이 있어 사양의 뜻을 밝혔으나 종교를 초월한 불사이며, 열심히만 해달라는 세민 스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맡게 됐다”며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종교간 대화합 국민의 대단결로 무서운 경쟁의 세계에서 우리나라를 우뚝 세우는 기폭제의 역할을 다시 한번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간절히 기원하면서, 조용한 가운데 겸손하게 그러나 참으로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요점은 팔만대장경을 동판으로 만드는데 그 추진위원장을 가톨릭 신자에게 맡겼는데, 그 이유는 국내 '마당발'로 소문난 전 국무총리를 자금조달의 적임자로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보도를 접한 직후인 2004년10월 일요 법회 때 법문하며 공개적으로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종정 때문에 자존심 상해서 중 노릇 못하겠다(실은 '쪽 팔려서'라고 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평상심이 도道라는 말은 중 노릇 몇 년 만하면 다 이해하는 말입니다. 더욱이 백수의 왕 사자는 다른 짐승에 먹혀 죽는게 아니라 뱃속의 벌레 때문에 죽는다는 말은 햇중이라도 골백번 듣는 말입니다. 저는 사자는 못 되더라도 사자와 벌레는 가릴 정도의 안목은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이런 '해괴한' 결정을 종정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내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마 불교의 미래가 가톨릭에 달렸다고 아우성일 것입니다.
제가 좌절하는 이유는 이런 종정의 상식 이하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불교집안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불교 내 몇 몇 단체들의 경우 자신들의 이익이 걸린 불교 내부의 문제나 사회적, 정치적 사안에는 걸핏하면 즉각 '성명서'를 내고 행동에 돌입하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런데 어떤 스님이나 신도단체에서도 불교 망신이라거나 혹은 잘못된 결정이니 시정을 요구한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제가 시력은 무척 나빠도 귀는 2.0으로 아주 상태가 좋은데도 말입니다.
결국 2005년 6월 2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가톨릭 신자 이수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해인사 팔만대장경 동판 간행 범국민추진위원회'의 공식 출범식을 마쳤습니다.
그 후 몇 개월간 공청회도 열고 해인사 주지도 바뀌는 등 진통이 있었지만 사실상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경제적으로 이 어려운 시대에 81,258명을 선착순으로, 최소 동참금이 100만원인 거의 1천 억에 달하는 ‘불사’不事(해서는 안 되는 일)를 일간지에 억대의 전면 광고까지 내대며 ‘불사’佛事(부처님의 일)란 이름으로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 돈이면 우리나라에 전깃세 못 내고, 밥 굶는 결식 아동은 없게 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과연 어느 쪽이 고달픈 중생을 위한 자비를 행하는 진정한 불사일까요 따라서 해인사 불사不事는 당연히 쓴 맛을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 오십보 백보입니다. 이번의 발췌는 해인사 팔만대장경 동판 추진위원장 건에 관한 발표가 있은 지 불과 한 달도 못 된 2004년10월25일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김 추기경은 마지막으로 “신앙이란 하느님이 자신을 언제나 사랑하고 계시다는 믿음”이라며 “하느님은 애국가에도 나오듯 대한민국을 보우하고 계시지만 인간은 미련해서 시련을 겪지 않으면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한국의 상황이 하느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시기인 것 같다”며 “가톨릭 신자로 세례를 받았지만 성당은 다니지 않는다는 노 대통령이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특별히 하느님께 의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이고(我離苦), 애국가의 하느님과 기독교의 하느님이 같답니다. 저는 우리나라 종교를 대표함은 물론, 그 언행에 불교적 수행과 기독교적 영성과 축복이 가득하여 어린 백성을 이끄셔야 할 두'대장님'이 헛발질 하신 것에 아직도 가슴이 아픕니다.(2006년 3월초 또 한 분의 대장인 다른 추기경님이 추가 임명되셨습니다.) 외교적인 언사로 표현하면'앞날이 걱정된다'고, 제 성질대로 표현하면'아, 속았다'라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를 보고'그 중 정말 속 좁네'하신다면 차라리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그 중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보네'하신다면, 제가 못 보는 그 나머지 하나는 도대체 무엇인지 겸허하게 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그 중 말이 맞네'라는 분이 행여라도 계신다면 혼자만 알고 계셔야 할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종교계와, 문화계, 학계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입바른 소리 했다가는 정치판을 닮아'저 놈이 무슨 꿍꿍이가 있어'혹은'영웅주의' 운운하며 매도당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실추될 명예도 없고, 더더욱 영웅되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으니까요. 앞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부처가 되어야 하거든요.
※ 성법스님 저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