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空卽是色
양자론과 형태장으로 보는 물질
반야심경의 색色 즉, 물질을 현대과학의 부정할 수 없는 이론인 양자론을 중심으로 이해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저의 물리학적 설명이 공空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반야심경에서 물질이 곧 공空이다[색즉시공色卽是空]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양자론의 전자가 확률적으로 '어떤 위치'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불교의 정신적 직관이 현상세계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깨달음의 세계가 오로지 형이상학적이고 무상한 세계가 아니란 말입니다)
모든 물질이 최소한의 단위에서 이런 '확률적 존재의 성질'을 갖는다는 것은, 물질의 앞날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결정론이나 숙명론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관찰자의 의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실은 '결정된다'가 더 정확합니다)는 사실은 인간의 마음이 물질에 '관여'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듯이 여러분도 당연히 이 두 가지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서 제가 양자론을 받아들이려면 종교적인 '믿음' 같은 것이 요구될지 모른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양자론에 '형태장'形態場의 개념을 붙이면 더욱 불교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믿기도 더 어려워집니다.
이쯤 되면 여러분 사정이 딱하더라도 양자론에서 물질이 마음과 관련이 있다는 확고한 실험결과를 부정할 수는 없으니,
'색즉시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신과학의 대표주자격인 영국출신의 루퍼트 쉘드레이크(Rupert Sheldrake,생물학자 1942~)박사의 또 다른 이론인 형태장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주인이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려는 의도를 갖는 순간 멀리 떨어진 집에서는 갑자기 애완견이 하던 모든 놀이를 멈추고 문을 향해 달려가 주인을 기다린다.
이것은 텔레파시가 뛰어난 미래의 어느 개가 행하는 행동이 아니다.
주인과 교감이 잘되는 애완견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가능하며 그것을 애완견과 주인을 동시에 촬영하는 실험을 통하여 증명했다고 쉘드레이크 박사는 말한다.
쉘드레이크 박사는 생물 집단 사이에 지금까지 과학이 인식하지 못한 어떤 연결 수단이 존재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실험하였으며 거기서 얻은 긍정적이고 놀라운 결과를 발표한다.
특히 애완견이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주인의 의도를 알아채는 실험은 그들의 텔레파시 능력을 놀라울 정도로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종끼리 상호 소통이 일어난다면 같은 종 내부에서 일어나는 미지의 연결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까?
비둘기들이 집을 찾아오는 능력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연결 수단에 의한 것이라면 집 찾아오기 능력을 지닌 많은 다른 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 물고기, 포유동물, 곤충, 그리고 그 밖의 동물들의 이주에 유사한 힘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사람의 경우에도 사냥꾼들과 유목민들에게 잘 발달되어 있는 방향감각이 그와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발견되지 않은 서로 다른 종류의 장(場)들이 많이 존재할 수도 있다.
애완동물과 주인 간의, 비둘기와 둥지 간의, 흰개미 집단 구성원들 간의 연결 방식은 완전히 서로 다른 현상이며 공통점이 전혀 없을는지도 모른다.
각각의 현상은 새로운 종류의 장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거나 원격 감응을 일으키는 물리적 연결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며, 전반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일 가능성도 있다.
나는 이런 현상들이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하는 가설이 더 경제적이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현상들 모두는 유기적인 조직의 각 부분들을 아우르는 한 가지 종류의 새로운 장을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 양태들일 것이다(그림 참조).
나는 그것을 형태장(形態場)이라고 생각한다.
이 장을 '생물학적 장(biological field)' 또는 '생명장(life field)' 등 다른 이름으로 명명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통합된 장 이론이 확립되기 전까지 모든 새로운 종류의 장(場)은 어쨌든 물리학의 알려져 있는 장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지금까지 물리학계는 생명계에서 새로운 장을 입증해주는 현상들이 존재할 가능성을 무시해왔기 때문에 통합된 이론이 완성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실험 결과들이 속출하는 한, 그 가능성은 활짝 열려있다.
<루퍼트 쉘드레이크 저 'Seven experiments that could change the world'
(국내 번역본 - 양문출판사 간)' 중에서>
이 미완성이지만 현실적인 현상들을 설명하는 형태장을 저는 양자론과 접목시켜 보았습니다. 그 결과가 물질은 전자단위에서 물질은 정보를 '교환'하고 '습득'하고 '공유'한다는 것인데, 이 논제는 매우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이것을 설명하는 데에만 적어도 다른 책 한 권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부족하겠지만 말입니다.
다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불교적인 해석을 하면 '모든 존재하는 것은 서로 상의상관相依相關인 연기론緣起論적 존재다'
다시 말해 화엄경의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를 과학적으로 푼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이 당장의 반야심경의 이해보다, 불교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갖는 것이 미래불교를 위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돌한 예를 들겠습니다.
불교 공부하는 이가 스님께 물었습니다. '반야가 무엇입니까' 답, '공' '공은 무엇입니까? 답, '반야' 이는 무슨 뜻입니까? 답, '할!'
이런 식의 불교로는 중생의 의문을 해소할 수도 없고, 반야나 공을 이해시킬 수도 없고, 더더욱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이런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하기야 아직도 '영험설화'나 '기도빨' 운운 하는 법문에 중생들이 더 솔깃하니 굳이 저처럼 골치 아프게 파고들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앞의 문답은 그래도 기복불교는 벗어난 수준이기는 합니다.
※ 성법스님 저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