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23. 동태사(同泰寺)에서의 하룻밤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8:27

 

 

동태사(同泰寺)에서의 하룻밤

통미장로는 어떻게 내가 올 줄 알았을까?

色을 파괴하기도 어렵지만
자신(我)을 깨뜨리는 것은
더욱 어려운 법이다



달마는 종소리가 들려 오는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언덕으로 난 길을 넘어서자 엄청나게 큰 절이 시야에 들어왔다. 향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절의 규모를 볼 때 동태사인 듯했다.

달마는 동태사의 주지 통미장로(通眉長老)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양 나라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대덕이었다. 통미장로는 동태사의 주지를 맡은 지도 오래됐지만 무제를 절로 받아들인 공로로 하루 아침에 국사(國師)의 지위에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무제의 존경과 총애를 한 몸에 받았음은 물론이고 유일하게 자줏빛 가사를 입도록 허용되었다. 그것도 무제가 친히 하사한 것이었다.

하지만 통미장로는 결코 공명심에 물든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제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다. 남들이 하는 말을 따라서 하는 그런 위인도 아니었다. 공(空)과 무(蕪)의 실체에 대해서도 통찰한 바가 있었다.

그는 설법할 때도 이른바 유(有)와 무(無)는 딱 잘라서 가르기 어려운 개념이라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각 종파의 관점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완전히 상반된 견해도 궁극적으론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미장로는 달마가 조사임을 굳게 믿었다. 달마가 천명한 ‘심요(心要)’설도 결코 사설(邪說)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것을 불교의 교의(敎義)를 심화시킨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오온개공(五蘊皆空)을 깨닫기만 하면 능지(能知)와 소지(所知) 또한 없어지게 된다는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애욕과 집착의 근거도 사라진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나타난 색(色)을 파괴하기도 어렵지만 자신(我)을 깨뜨리는 것은 더욱 어려운 법이다. 바로 내가 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 즉 반야의 지혜를 얻어 일체의 고액(苦厄)을 넘어 피안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공’과 ‘무’를 철저하게 터득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달마는 통미장로의 경지로 미루어 볼 때 동태사에서 하룻밤 묵는 것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 날이 밝은 다음 배를 빌려 강북으로 건너가기로 마음먹었다.

사방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언덕에서 동태사로 접어드는 길까진 잡초가 무성해 찾아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때로는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기까지 하면서 거의 한식경이 지나서야 동태사의 정문으로 가는 큰길에 접어들 수 있었다. 절 문 위쪽에 ‘동태사’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금으로 쓰여진 글자에선 광채가 났다. 무제의 어필(御筆)이란 인각도 뚜렷했다.

막 절 문을 들어서자 사미승 하나가 달마를 반갑게 맞이했다.

“혹시 달마 조사가 아니신지요?”
“그렇소이다. 한데 노납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소승은 통미대사의 명을 받들어 한참 전부터 조사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달마는 움츠렸던 마음을 활짝 열고 웃음으로 응했다.

“아, 그렇소이까. 통미장로가 법중용상(法中龍象)이라더니 과연 그 비범함을 알겠소이다. 하나 이렇게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오. 노납을 안내하시지요.”“조사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지요.”
사미승은 달마를 공손하게 안내했다. 그런데 정전(正殿)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잇길 좁은 통로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통미장로의 거실에 도착했다. 바로 그때 달마의 머리 속에 퍼뜩 스치는 게 있었다. 이렇게 남 모르게 안내하는 것을 보면 조정에서 이미 밀령이라도 내려온 것일까? 그건 그렇다 치고 통미장로는 어떻게 내가 이 곳에 올 줄 알았을까? 아무래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통미장로는 인기척이 들리자 방문을 열고 나왔다. 지팡이를 짚고 반갑게 인사하면서 달마를 방 안으로 모셨다. 통미장로는 얼추 백 세쯤 되어 보였다. 치렁치렁한 흰 수염에 이마에선 밝은 빛이 감돌았다. 눈빛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비록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지만 허리는 꼿꼿했고 걸음걸이도 힘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정정해 보였고 대덕의 기품이 있었다. 좌정하자 달마가 입을 열기도 전에 통미장로가 먼저 합장하며 말했다.

“많이 놀라셨지요?”
달마도 합장으로 답례했다.

“금릉에서의 일이 뜻에 부합되지 못한 것은 법연이 아직 익지 못해서일 것이오. 장로께 수고와 심려를 끼쳐드려 실로 미안하기 이를 데 없소이다.”“저희 절의 철타가 조사께 무례한 행동을 한 점,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조사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보리달마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낮에 궁궐에서 일어난 일을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통미장로가 어떻게 그리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았단 말인가?“그 또한 법연이 무르익지 않은 탓인데 어찌 철타를 탓하겠소이까? 장로께서는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통미장로는 다시 한 번 합장했다. 그리고 탄식하듯 말했다.

“빈승은 일찍부터 조사의 가르침을 흠모해 왔었습니다. 이번에 이 곳까지 먼 길을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게다가 황제가 조사를 금릉으로 모셨다고 하기에 큰 가르침을 전해 주시리라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법연이 맞지 않아 마음으로 통하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달마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근본을 이해하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 밖에서 구할 것이 아닙니다.”통미장로는 감격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 밖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빈승이 조사께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곳에 며칠 머무르시면서 허물을 일깨워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이미 석초암(錫草庵)에 모든 준비를 해 놓았으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달마가 대답했다.

“장로의 말씀이 너무 과하십니다. 노납이 보기에는 장로의 덕이 높고 신망 또한 두터운데 무슨 허물이 있겠소이까.”“오히려 과찬이십니다. 오직 조사의 대자대비를 바랄 뿐이옵니다.”
달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훌륭하오, 참으로 훌륭하오. 정히 그렇다면 노납이 한 마디 직언을 할 것이니 받아 주기 바라오. 황제에게 기대어 불사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 덕에 전각을 세우고 백성들에게 불전을 내놓게 하고 전답을 헌납 받아서 어쩌자는 것이오. 또한 몇몇 무예가 출중한 무승을 배출한 것은 좋으나 불법을 제대로 익히지도 않고 행동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오. 그것은 상자를 사고 구슬을 돌려주는 격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소이다.”“상자를 사고 구슬을 돌려준다니요?”
“장로께서는 이런 고사(故事)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옛날에 구슬장수가 있었는데 한 손님에게 구슬을 팔게 되었더랍니다. 손님은 값을 묻더니 부르는 대로 돈을 치르더랍니다. 장사꾼은 너무나 고마워 상자까지 함께 포장해서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손님은 구슬을 꺼내더니 그에게 도로 주고 상자만 갖더라는 것입니다. 손님의 말인즉 자기는 상자가 좋아서 그 값을 치른 것일 뿐이고 구슬은 원하지 않으니 돌려준다는 것이었습니다.”“그것이 상자는 사고 구슬은 돌려준다는 이야기이군요.”
“그렇소이다. 불문에 몸담은 사람이 칼이나 창 또는 암기 따위는 가지고 놀 줄 알면서 불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법은 구슬이요, 칼이나 창, 암기 등은 상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타 같은 승려는 상자는 사고 구슬은 돌려주는 사람과 다를 바 없지요.”통미장로는 황급히 몸을 굽혀 절을 했다.

“조사의 가르침을 듣고 보니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 같습니다. 철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점 심히 꾸짖어 주시옵소서.”달마는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럴 것까지 없소이다. 사람이란 깨닫는 만큼 행하는 것이오.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그런 걸 어찌 하겠소. 그저 흐르는 대로 맡겨 두시지요.”통미장로는 진실로 깨달은 바가 컸다. 마음 속으로 거듭 감복했다.

“조사께 한 가지 솔직하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조사를 보는 즉시 신고하고 체포하라는 칙령이 이미 모든 사찰에 내려와 있습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빈승은 조사를 이 곳에 모셔 두고 성상의 진심을 알아보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조사의 신상이 염려되는 바 적지 않습니다. 만약 조사께서 이 절에 계시다가 압송되시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상의 설득에 응하지 않으시면 죽임을 당하든지 천축으로 쫓겨갈 것입니다.”달마는 그러한 사태 진전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지의 말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해 주니 고맙소이다.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이 곳에서 하룻밤만 묵고 가게 해 줄 수 없겠소이까. 내일 아침엔 마땅히 동태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겠소이다.”통미장로는 무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시지요. 저희 절은 사람도 많고 보는 눈도 많습니다. 자칫 소란이 일어나 조사께 누를 끼칠까 염려스럽습니다. 오늘은 이 곳 빈승의 침소에서 묵도록 하시지요.”“좋습니다. 고맙소이다.”
달마는 합장하며 마음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장로께서는 진실로 자비로우십니다.”
통미장로도 합장으로 화답했다.
달마를 뒤쫓다 놓친 무승 철타는 어명을 받들어 날도 어둡기 전에 금릉의 성문을 닫아걸었다. 물샐 틈 없이 경계를 펼쳤기 때문에 반드시 달마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정이 넘어 이역(異域)의 스님이 동태사로 가는 것을 보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철타는 서둘러 군졸을 이끌고 동태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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