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20. 황도 금릉으로 가다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8:23

 

 

황도 금릉으로 가다

성루마다 환영의 북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문무백관들은 참례전 밖 계단 앞에 두줄로 엎드려 보리달마를 영접했다



자사 소앙은 조정의 어사에게 조서를 읽게 했다. 어사는 소매 안에서 조서를 꺼내 펼쳤다. 달마 조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달마는 어사를 향해 절을 하거나 무릎을 꿇지 않았다. 꼼짝도 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런 달마의 태도에 함께 온 자사는 순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속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조사 앞에서 감히 그런 사실을 지적할 수는 없었다.

어사는 그대로 조서를 읽어 내려갔다. 달마는 눈을 감은 채 듣고 있었다. 어사가 조서를 다 읽었는데도 달마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땅히 폐하의 은혜를 고마워하는 인사가 있어야 할 터인데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달마가 눈을 떴다. 그리곤 ‘껄껄’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과찬이신 것 같소. 아무튼 이 나라의 황제는 불심이 돈독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구려. 이게 다 인연이오. 암 인연이고 말고…. 자, 그러면 가십시다. 이 늙은이가 어사를 따라 당장 출발하겠소이다.”달마는 방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대로 갈 길을 재촉했다. 달마의 그런 태도에 오히려 어사가 당혹스러워했다. 달마는 어사의 그런 마음을 읽고 웃으면서 말했다.

“출가인은 사해(四海)가 모두 자기 집인 것이오. 위로는 천자에게도 절하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제후에게도 겸양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출입하고 자유로이 오고 가는 것이외다. 자, 어서 떠납시다.”어사는 그제야 그 연유를 깨닫고 황급히 조사에게 절을 했다.
“성상(聖上)께서 마차(馬車)를 보내주셔서 지금 사찰 밖에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그리로 모시겠습니다.”“그렇게 합시다.”
법성사 앞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조사를 연호하는 소리에 옆 사람의 말소리조차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달마를 떠나보내는 이 곳 사람들의 심정은 한결같이 스산했다. 비록 황제의 초청으로 가는 영광된 길이긴 하지만 이 곳 사람들로선 그렇게 달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아쉬움에 울부짖는 이도 적지 않았다.

“댕! 댕! 댕! ….”
법성사의 종고루에서 종소리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종소리를 듣고 절 안에 있던 승려들이 모두 몰려 나왔다. 승려들은 삽시간에 유화선실에서 절 입구에 이르는 길 양쪽으로 줄지어 섰다. 나이 많은 스님이나 젊은 스님, 비구니와 사미승 할 것 없이 달마 조사의 가는 길 앞에 엎드렸다. 모두 두 손 모아 합장한 채 입으로 불호를 외쳤다. 달마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합장한 손으로 일일이 답례했다.

광지 주지, 자사 소앙 및 조정 어사의 호위를 받으며 달마는 천천히 절 대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러나 육중한 절 대문은 웬일인지 여지껏 닫혀 있었다. 달마가 대문 가까이 이르자 건장한 젊은 스님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쩔쩔맸다. 아침저녁으로 대문을 여닫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오늘 따라 대문이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여러 명의 스님들이 덤벼들어 힘껏 대문을 밀었다. 그러나 대문은 삐거덕거리기만 할뿐이었다. 이런 초유의 현상에 모두가 당황했다. 광지 주지와 자사 소앙도 당혹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달마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란 듯 대문 앞으로 다가서더니 이리저리 살피는 것이었다. 이윽고 대문이 문틀에 꽉 끼어 있어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곳을 가볍게 흔들어 조정한 다음 대문을 열어 보라고 일렀다.

대문은 아주 쉽게 열렸다. 대수롭지 않은 이런 일에서조차 신비로움을 느꼈는지 모두들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달마는 큰걸음으로 문지방을 성큼 넘어섰다. 대문 밖의 대중들은 일제히 엎드려 절을 했다. 달마는 정중하게 합장의 답례를 했다.

밖에는 노란색 휘장을 두른 마차가 한껏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달마가 마차에 오르자 황궁에서 파견된 200여 명의 호위병사들이 일제히 마차를 에워쌌다. 승려들과 대중들이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땅에 엎드려 ‘조사님! 조사님!’하고 소리 높여 송축했다. 달마는 마차의 휘장을 젖히고 전송하는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거듭 표했다.

달마가 마차 안에 좌정하자 어사는 출발을 명했다. 마차 앞엔 깃발을 든 군사가 길을 인도하고 양 옆은 칼과 창으로 중무장한 군사들이 에워쌌다. 어사는 마차 뒤를 따랐다. 달마가 떠난 뒤에도 광주성 안은 여러 날 동안 떠들썩했다. 달마가 조서를 받고 떠난 일을 두고 한껏 이야기꽃을 피웠다.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가 과장되어 달마는 신비로운 존재로 부풀려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자사 소앙은 연일 자축연을 열기에 바빴다. 서천에서 온 대조사를 최초로 모신 것과 상소를 올린 일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무제로부터 곧 큰 포상이 있을 것이라는 칭송의 말이 주변에서 끊이지 않았다.

천축조사 보리달마를 태운 마차는 드디어 황도(皇都)인 금릉에 도착했다. 지금의 남경(南京)인 금릉의 본래 이름은 건업(建業)이었다. 이것이 진 나라 때 건강(建康)으로 바뀌면서 금릉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무제가 양 나라를 세운 뒤 금릉은 명실공히 정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구실을 했다. 특히 불교의 대본산으로 자리잡았다. 무제는 불교를 국교(國敎)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 이치를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시키고자 했다. 금릉의 도성 안에만 무려 500개가 넘는 절을 지었고 전국에서 10만이 넘는 승려를 불러모았다. 그 가운데서도 동태사는 특히 규모가 엄청났다. 무제가 출가했던 절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념하여 안팎을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절에 주석하는 고승(高僧)만 100명이었고, 고승을 받드는 문도는 1,000명이 넘었다. 매일 찾아드는 신도 역시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였다.

호위병에 둘러싸인 달마가 도성 문안을 들어서자 성루마다 환영의 북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도성 안 길거리엔 이미 청실과 홍실이 치렁치렁한 초롱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초롱에는 예외 없이 노란색으로 ‘불(佛)’이라고 쓰여 있었다. 거리에는 몰려 나온 환영인파로 한 발짝도 움직일 틈이 없었다. 모두들 조사의 모습을 보려고 아우성이었다. 가까이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달마가 탄 마차라도 보기 위해 안간힘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자신들에게 복이 내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황궁 안의 참례전에는 촛불이 환하게 밝혀졌고, 침향을 태우는 향기가 그윽이 감돌았다. 한가운데엔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앞에 연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무제는 곤룡포에 옥대를 하고 위풍당당하게 탁자의 위쪽 정중앙에 앉았고 시신(侍臣) 정각과 법광이 좌우에서 보필했다. 무승 철타는 눈을 부릅뜨고 뒤에서 호위하고 있었다. 문무대신들은 양쪽으로 줄지어 서서 달마 조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참례전 밖엔 한 무리의 근위병들이 칼과 창 그리고 도끼로 중무장한 채 대문 앞까지 도열하여 삼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갑자기 대문 밖에서 폭죽소리가 들리면서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집례관이 전각 안으로 들어와 아뢰었다.

“보리달마 조사께서 방금 도착하셨습니다.”
문무백관들은 일제히 참례전 밖으로 나와 계단 앞에 두 줄로 엎드려 영접했다. 달마를 태운 마차는 딸랑딸랑 요령소리를 내며 참례전 바로 앞에 멈춰 섰다. 마차의 노란색 휘장이 걷히면서 달마가 내려섰다. 문무백관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삼가 대조사를 환영합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달마는 입으로 불호를 외우면서 합장으로 답례했다. 달마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참례전 안으로 들어갔다. 문무백관들도 황급히 몸을 일으켜 그 뒤를 따라 들어가 무제의 양쪽에 줄지어 섰다.

장중한 분위기의 궁중 음악이 연주되었다. 음악이 그치자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송(頌)을 지어 읊었다.

“우리는 성상(聖上)의 귀중한 말씀을 들으면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대량(大梁)에 불법을 드날리시고 불업(佛業)을 드러내셨습니다. 큰 가르침으로 교화를 펴시고 오계(五戒)를 넓혀 중생을 훈도하셨습니다. 이에 불교가 더욱 발전하게 되고 선법(禪法)의 기운이 바야흐로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무제의 공덕을 드높이는 송(頌)은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모든 게 무제가 이른바 ‘불심천자(佛心天子)’임을 달마에게 깊이 인식시키려는 각본에 따라 진행됐다.

달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는 문무백관들과 정각, 법광, 철타 등을 한 차례 둘러본 다음 무제를 쳐다보았다. 머리 위에 황관을 쓴 무제는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달마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합장하면서 몸을 굽혀 예를 표했다.

“성상을 뵈옵니다. 아미타불!”
이때 여러 신하들은 비로소 고개를 들고 달마를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달마의 모습에 모두 내심으로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폐하께서 초청한 대조사가 그토록 남루한 옷을 걸치고, 수염도 제대로 깍지 않은 꾀죄죄한 늙은이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생각이 빗나가자 신하들은 맥이 풀렸다. 조금 전까지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서로 눈짓을 하며 이죽거렸다.

그러나 무제는 달랐다. 여러 신하들의 기꺼워하지 않는 기색을 보고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달마가 무릎을 꿇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무게를 느꼈다. 그는 웃으면서 자리를 권했다.

시신 정각은 공손하게 달마에게 무제의 옆자리에 앉도록 청했다. 달마는 사양하지 않고 ‘고맙소’하고는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 무제는 신하들을 한 번 훑어본 후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천축조사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만리 바다를 건너 이 나라에 와서 불법을 널리 펴시려 하니 이는 우리 나라의 행운이자 우리 불문의 복이라 할 것이오. 짐은 오늘 여기서 연회를 베풀어 조사를 환영하고자 하오. 한편으로는 조사에 대한 존경을 표하자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사의 선법과 높은 지혜를 듣고자 하는 것이니 조사께서는 기꺼이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달마는 무제의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금새 알아차렸다. 무제는 달마의 불법에 대한 이해와 수행의 정도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그에 대한 대우를 다시 결정할 작정으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