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21. 양 무제와의 만남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8:24

 

 

양 무제와의 만남

수많은 절을 지었다해도 공덕은 ‘無’

“수행은 마음을 맑게하고
自性을 보아야 하는 것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양 무제는 출가한 일도 세 차례나 있었던 만큼 불학(佛學)에 대한 연구도 깊었다. ‘열반(涅槃)’ ‘대품(大品)’ 등의 저서를 출간하여 방방곡곡에 퍼트렸다. 문무백관과 백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무제의 신심과 높은 학덕을 믿고 따랐다.

무제는 명실공히 이 나라 불교의 정상(頂上)이고 중심(中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의 고승(高僧)들과는 문답을 주고받게 마련이었다. 달마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달마는 무제의 지나친 총명과 교만이 염려스러웠다. 자칫 한 차례 설전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달마는 잠시 생각했다. 비록 스승 보리다라의 명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서천 28대조의 자리를 스스로 버리고 이 곳까지 온 까닭은 진정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一)의 진법(眞法)을 회귀시키는 데 있지 않은가? 문득 생각이 이에 미치자 그의 마음은 바다를 뒤덮고 하늘을 품어 안았다. 그는 환한 얼굴로 일어서서 무제를 향해 합장하며 읍을 했다. “노납이 우매하오나 감히 성상께서 질문을 해 주시지요.”
“좋소!”
무제는 큰 소리로 웃으며 화답했다. 그리고 내관들에게 명했다.

“음식을 올려라.”
미리 준비해 놓은 황금빛 쟁반엔 술잔과 술병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소채로 안주가 한 상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무제는 내관에게 술을 따르라고 이르고 직접 술잔을 받아 달마 조사에게 바쳤다.

“조사께서 먼 길을 오시느라고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자, 한 잔 드시지요.”달마 앞의 술잔에선 흰색의 술거품이 소용돌이쳤다. 그것을 바라보는 달마의 낯빛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정각, 법광과 문무백관들은 아연 긴장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술을 먹는 것은 불가의 계율을 어기는 것으로 믿고 생활해 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오늘 조사에게 술을 베푸는 것이 무엇을 시험하기 위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달마의 반응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달마가 어찌 그런 것을 모르겠는가. 그는 말없이 한참 동안 술잔을 바라보다 슬그머니 웃음 지었다. 제(濟)를 가지고 선(禪)을 시험해 볼 심산이었다. 달마는 서슴없이 술잔을 들고 말했다.

“특별하신 배려에 감격할 따름입니다.”
한 입에 술잔을 비웠다.

무제는 순간 눈썹을 찌푸렸다. 술을 마시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관원들은 금새라도 무슨 일을 낼 듯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구석구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마저 들렸다. 다만 무제가 아직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아 감히 앞서서 큰 소리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무승 철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 꼴을 도저히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달마의 술잔을 향해 돌을 날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모두가 크게 놀랐다. 달마는 기다렸다는 재빠르게 승복의 소매로 돌을 받아 냈다. 그는 철타를 바라보면서 돌을 꺼내 도로 던져 주었다.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긴장, 충격, 놀라움이 뒤범벅이 되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철타는 돌을 받아 들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동그란 돌멩이가 달마의 손아귀 속에서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돌 위에는 지문까지 뚜렷하게 찍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철타는 무승답게 의젓하게 응수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달마를 향해 합장하며 말했다.

“금릉의 술맛이 어떠신지요….”
달마는 빈 술잔에 스스로 술을 따라 벌컥 들이킨 다음 대답했다.

“좋은 술입니다. 아주 좋은 술입니다. 노납이 정말 먹을 복이 있나 봅니다.”철타는 이런 달마의 태도가 너무나 방자하다고 생각되었다. 아무리 폐하께서 시험 삼아 술을 권했기로서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계율을 어기는 중이 어떻게 조사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달마 앞으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당신이 설마 계를 범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오. 이게 무슨 짓이오!”철타는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힐문을 퍼부었다. 그러나 달마는 오히려 웃는 얼굴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몸을 일으켜 합장하며 철타에게 물었다.
“그대의 법호는 무엇이오?”
“철타라고 하오.”
“아, 그래요.”
달마는 철타를 정면으로 보면서 말을 이었다.

“철타라면 동태사의 무승인 철타가 아니오?”
이 말에 철타는 마음 속으로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이 늙은 중이 어떻게 내가 동태사의 무승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철타의 마음을 읽은 달마는 손을 내저으며 웃음을 날렸다.
“노납의 말에 개의치 마시오. 그저 추측해 본 것일 뿐이오. 생각해 보시오. 성상께서 세 차례나 동태사에 사신(舍身)했는데 무승을 뽑아 호가(護駕)하려면 어찌 동태사에서 뽑지 않을 리가 있겠소?”“조사의 말씀이 지극히 옳습니다.”
그제야 무제가 위엄 짓는 소리로 말했다.

달마는 술잔을 들어 철타와 문무백관 앞에 흔들면서 말했다.

“내가 어찌 불가의 여덟 가지 제계(薺戒)를 모르겠소. 더군다나 금루의 계를 지키지 않을 까닭이 있소. 그러나 오늘은 경우가 다르오. 성상이 내려주신 술을 내 어찌 사양하겠소. 내가 분명히 말해 두고 싶은 것은 심성(心性)이 명징(明澄)하여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면 술 따위에 너무 속박될 것도 없다는 것이오. 또 술은 사람들의 생계의 근본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오.”달마의 말에 이번엔 무제가 반박했다.
“조사. 당신의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소. 불가에서 계를 세운 것은 그것을 지킴으로써 정과(正果)를 이루자는 것이 아니겠소. 설마 천축의 선종은 계율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겠지요?”달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선종은 마하 가섭 존자가 영산회상에서 세존의 염화시중의 가르침에서 도리를 깨달은 이후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전통을 세운 후 여러 대에 걸쳐 이심전심(以心傳心)하여 왔소이다. 마음으로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 것이외다. 팔계의 계율은 사람들이 출가하지 못하여 성불할 수 없음을 걱정한 끝에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근본이 아니고 껍데기일 뿐이오. 단지 표상을 지키기 위한 가르침일 뿐 본질을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이외다. 그것은 지킬 수 있고 지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달마의 이 말은 그야말로 선(禪)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무제의 공부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덫이나 진배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달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무백관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사설(邪說)이다. 집어치워라.”
무제의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일찍이 조칙(朝則)으로 금주(禁酒)를 선포한 바 있다. 이런 마당에 달마의 주장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황제의 뜻을 아는 관원들이 길길이 날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무제 스스로도 자칫 권위가 손상되지 않을까 염려해 마지않았다.

무제는 불문(佛門)에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것은 외도(外道)에 속하므로 엄히 규제돼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심지어 ‘금주육문(禁酒肉文)’ 즉 ‘술과 고기를 금하는 글’까지 써서 반포했을 정도였다. 이 글은 마치 경전처럼 숭상되었다.

이 글에서 무제는 술을 악(惡)의 뿌리이고 ‘술을 마시는 것은 마사(魔事)라고 규정했다. 술이란 쌀과 물이 혼합하여 변질된 것이기 때문에 쌀도 정체(正體)를 잃은 것이고 물도 정체를 잃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죄업의 인연으로 이 나쁜 물을 마시지만 그것이 바른 길이 아닌 것은 분명하며 감로(甘露)의 맛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라고 설파했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에서는 마땅히 음주를 금해야 하며 그것을 어기는 자는 파문하고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무제는 나름대로 수양의 경지가 높다고 자부하고 있는 터였다. 곧 평정을 되찾았다. 그는 관원들의 소란을 제지했다. 짐짓 온화한 표정을 지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마에게 말했다.

“짐의 무지를 용서하시오. 조사께서 방금 하신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소. 부디 자세히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라오.”달마는 마음 속으로 기뻐했다. 무제의 이런 태도가 대견스러웠다. 흔히 생각하는 임금과는 완연하게 다르다고 믿었다. 비록 선의 이치는 깨닫지 못했지만 예불의 성실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여겼다. 달마는 무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진정으로 선법을 전하여 깨달음이 있기를 소원하며 간곡하게 말했다.

“성상께 삼가 아뢰오. 노납의 어리석은 견해로는 예불은 마땅히 마음에 있어야지 입에 있는 것이 아니오. 수행은 마음을 맑게 하고 자성(自性)을 보아야 하는 것이지 표면적인 것이나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무제는 조사의 마음과 입, 내면과 외면의 설법에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달마의 말이 너무 고매하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가르침을 받는 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싶었다. “다시 조사께 여쭙겠습니다. 짐은 지금까지 경건히 부처를 모시고 수많은 절을 지었소. 불교의 경전도 많이 펴냈고, 수많은 승려를 길러냈소. 그러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공덕의 보답이 있을 것인지 조사께서 한 마디 가르쳐 주기 바라오.”보리달마는 무제가 전혀 깨닫지 못하자 적이 실망했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것은 전혀 공덕이 되질 않습니다.”
무제는 그 대답에 도리어 어리둥절했다. 불쾌한 말투로 응수했다. 모든 신하들의 표정도 얼어붙은 듯 싸늘해졌다. “무엇이라고? 어째서 그렇소? 짐이 그토록 정성을 다해 많이 베풀었는데도 아무런 공덕이 없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달마는 부드럽게 응수했다.

“성상께서는 노납의 입에서 공덕이 있다는 대답을 기대하셨을 테지만 그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찌꺼기라고 하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은 세속적인 인과응보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공덕이 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성상처럼 그렇게 무엇을 구하기 위해서 한다는 것은 시시한 소과(小果)에 불과한 것입니다. 귀한 것은 행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신 일은 그림자를 좇아다닌 것이지 실제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