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28. 숭산 소림사(嵩山 少林寺)

通達無我法者 2008. 9. 20. 18:36

 

 

숭산 소림사(嵩山 少林寺)

눈을 감자 온 우주가 내 안에 들어왔다

다섯 봉우리에 둘러싸인
소림사와 두 그루 계수나무
마치 연꽃 한복판에 선듯



달마는 숭산이 세 개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번쩍’하는 영감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셋(三)이 하나(一)를 이루는 철리(哲理)를 상징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달마는 일찍이 스승 반야다라 존자로부터 삼일원리(三一原理)의 비법(秘法)을 가르침 받았기 때문에 더욱 감흥이 새로웠다.

숭산은 비단 세 개의 산으로만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동쪽과 서쪽에 있는 태실산과 소실산만 해도 기이한 봉우리가 각각 36개나 된다. 36봉(峰)은 하늘의 도수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두 산을 합한 72봉은 중요한 지리적 의미까지 더해 그 기세를 한껏 뿜어냈다.

소실산 기슭에 도착한 달마는 숙연해졌다. 숭산에서의 첫밤을 이 곳 기슭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마땅한 자리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살폈다. 마침 북쪽 기슭에서 퇴락한 암자를 찾아 냈다. 그는 뚫린 지붕 위로 보이는 별을 이불 삼아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새벽 동이 트기가 무섭게 달마는 산길을 올랐다.

산길은 비록 굽이굽이 굴곡이 심했지만 그다지 험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골짜기마다 우거진 녹음이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풍광이 사람을 유혹하며 발길을 붙잡았다. 느릿느릿, 때로는 바위를 타고 때로는 돌계단을 따라서 얼마를 걸었는지 모른다. 어느덧 등줄기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잠깐 쉴 요량으로 주변을 살폈다. 마침 돌로 된 정자가 먼발치에 보였다. 정자를 찾아들었다. 돌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돌 의자에 앉아서 땀을 닦으며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시야가 가려 밑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하늘에 떠돌던 운해(雲海)가 내려앉는 듯 느껴졌다. 온통 주변이 구름바다에 뒤덮였다. 계곡을 타고 산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산 아래서 피어 오른 안개가 구름과 합쳐져 회오리치는 모양이 예사롭지 않았다. 안개와 구름, 숲과 바위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회오리 속에 모두 하나가 되었다.

달마는 그대로 돌 의자에 앉아서 쉴 수가 없었다. 안개구름을 뚫고 돌 정자를 나섰다. 한 줄기 희미한 빛이 꽂히는 방향으로 찾아 올랐다. 단숨에 십여 리나 올라 온 듯싶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다. 아마도 소실산 정상인 듯싶었다. 달마는 장방형(長方形)으로 뻗은 긴 바위 위에 앉아 쉬기로 했다. 구름이 걷힐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구름은 뭉실뭉실할 뿐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마치 기다리는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달마는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육신의 눈을 감자 온 우주가 내 안에 들어왔다. 우주가 나이고 내가 곧 우주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살며시 눈을 떠 보니 뿌옇던 시야가 조금씩 터지기 시작했다. 달마는 자기가 앉아 있던 긴 바위의 저편 끝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비록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지만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어쩌면 존재양식(存在樣式)으로서의 인간의 한계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달마는 입가에 엷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이런 산꼭대기에서 사람을 만났고 그것도 한동안 함께 앉아 있었다는 것이 못내 즐거웠다.

물끄러미 등줄기에 시선을 보냈다. 그도 무엇인가 느낌이 달랐던 모양이다. 흠칫 놀라면서 뒤돌아보았다. 그는 아직도 어린 티를 못 벗은 동자승이었다. 동자승은 눈을 크게 뜨며 경악하듯 입을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기골이 장대한 이역의 노승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동자승은 구천에 있는 신선이 내려온 것으로 믿었다. 벌떡 일어나 달마앞에 엎드렸다.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승이 어리석게도 대선(大仙)을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달마는 어린 스님이 놀라 당황하는 것을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렇게 놀라게 했는가? 이 늙은이는 신선이 아니라 천축에서 온 승려라네. 놀라지 말고 고개를 들게.”“천축에서 오신 스님이시라고요?”
동자승은 신선이 아니고 천축의 스님이라는 말에 곁눈질을 하면서 반문했다. 과연 코도 있고 눈도 있는 스님의 모습이 뚜렷했다. 단지 피부색이 약간 다르다고 느꼈다. 그제야 동자승은 이마에 나 있는 식은땀을 닦으면서 일어섰다. 그리고 달마에게 읍 하면서 물었다.

“여쭙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오셔서 어디로 가시는 길이십니까?”달마는 귀여워 죽겠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인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짚신 하나, 탁발 하나로 사해를 돌아다니고 있다네. 소사부께 묻겠는데, 여기가 어딘가?”동자승은 손을 들어 저쪽 산꼭대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를 보십시오.”
달마는 동자승의 손끝을 따라 눈길을 보냈다. 구름을 뚫고 우뚝 솟은 봉우리 밑에 오래된 절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그 고찰은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규모도 대단했다. 겹겹이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옛 위세가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고찰로 가는 길목엔 커다란 산문이 세워져 있고 금색으로 죽림사(竹林寺)라고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었다.

달마는 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죽림사의 색다른 품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마는 동자승에게 물었다.

“소사부, 그대는 죽림사에 있는가?”
“그렇사옵니다.”
“내 한 가지 묻겠는데, 이 죽림사는 어째서 이렇게 높은 곳에 지었나? 대나무숲이 산꼭대기에 있는 것도 이상하고….”어린 스님은 천진스럽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노사부께서는 아직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전설에 의하면 이 죽림사는 본래 등봉성(登封城) 서쪽에 있는 대나무숲 죽림(竹林)의 한복판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의 이름도 죽림사라고 붙였답니다. 그런데 어떤 신선이 법력을 펼쳐 이 절을 승천(昇天)하게 하여 오늘날의 이 곳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꼭대기에 있는 대나무숲은 천상(天上)죽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달마는 동자승이 말하는 전설을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절을 들어 옮기는 법력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마는 기쁨을 머금은 얼굴로 동자승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죽림이 하늘로 올라왔다면 그 땅에는 절이 없어졌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그 곳에는 아직도 절이 있습니다.”
동자승은 노승이 몰라서 묻는 것 같아 절로 신바람이 났다. 팔을 휘두르면서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노사부님, 이 곳에서는 천상에 죽림이 있고 지상(地上)에는 소림(少林)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것도 모르셨습니까?”“아, 그래…. 그런 말이 있는가?”
동자승은 멀리 산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보라는 시늉을 했다. 달마는 눈을 크게 뜨면서 내려다보았다. 정말 절이 보였다. 산 아랫자락의 울창한 숲 속에 지붕 끝이 뚜렷하게 포물선을 긋고 있었다.

“저 곳에 있는 절은 무슨 절인가?”
달마가 물었다.

“소림사입니다.”
동자승이 대답했다.

“무엇이라고, 소림사라고?”
달마는 다시 산기슭 아래로 시선을 보냈다. 그는 그 곳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눈을 손으로 비비면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 바로 절 앞쪽으로 두 그루의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나무의 향기가 달마의 코끝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계수나무의 향기였다. 달마는 한순간 신비로운 느낌에 휘감겼다. 할 말을 잊은 채 계속 두 그루의 나무를 응시했다. 이윽고 동자승에게 고개를 돌렸다.

“소사부! 내 또 한 가지 물을 게 있네. 저 밑에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두 그루의 나무가 무슨 나무인가?”“그것은 천 년도 더 된 오래된 나무인데, 이 곳 사람들은 계수나무라고 알고 있습니다.”그 말에 달마의 귀가 번쩍했다. 눈앞도 갑자기 밝아지는 것 같았다. 달마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입으로 중얼대기 시작했다.

‘계수나무라, 계수나무라! 이 곳이 바로 오래도록 창성할(久昌昌) 땅이란 말인가!’동자승은 노스님의 갑작스런 변모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못하고 다만 지켜볼 따름이었다. 달마는 계속 중얼거릴 뿐 끝내 말이 없었다. 동자승에게 합장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작별의 말 한 마디도 없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달마의 마음은 벌써 소림사와 두 그루의 계수나무에 닿아 있었다. 아무리 걸음을 빨리 걸어도 마음의 속도를 따를 수 없었다. 달마는 몇 개의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 거의 두 시간이 넘어서야 소림사 언저리에 접어들었다. 달마는 자기의 걸음이 그토록 느린 것을 예전엔 미쳐 몰랐었다. ‘청산에 마음이 매이니 말을 타고 달리는 것도 느리다’고 했던가. 달마는 마음의 조화를 되뇌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두 그루의 계수나무 앞으로 갔다. 우뚝 하늘로 솟아 햇빛과 구름마저 가려주고 있었다. 달마는 계수나무 두 그루를 번갈아 가며 안아 보았다. 나무 둘레가 어찌나 큰지 세 사람이 팔을 벌려야 겨우 닿을 정도였다.

달마는 경건한 마음으로 소림사 산문 앞에 섰다. 그는 문득 소림사가 다섯 개의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섯 봉우리 가운데 어떤 산은 마치 깃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산은 큰북을 닮은 듯싶었다. 어떤 산은 보인(寶印)과 같은 느낌을 주었고, 어떤 산은 큰칼처럼 솟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산은 마치 큰 범종(梵鐘)같이 보였다.

달마는 다섯 봉우리를 둘러보면서 다섯 꽃잎이 활짝 핀 연화(蓮花)같다는 느낌을 떨칠 길이 없었다. 소림사는 바로 다섯 꽃잎의 연꽃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꼴이었다. 달마의 입에선 저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일찍이 풍수지리상으로도 이렇듯 훌륭한 명당을 본 일이 없었다. 달마의 가슴은 감동으로 고동쳤다. 바다를 건너 산을 넘어 험한 길을 헤쳐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날개를 펴듯 펄럭였다. 달마는 스승 반야다라의 게송을 떠올리면서 계수나무 두 그루와 맞닿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았다. 달마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산문을 지나 소림사 경내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