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55. 도는 마음이 없는 경지에 이른자에게로 통하느니(終)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21:28

 

 

도는 마음이 없는 경지에 이른자에게로 통하느니

스스로의 本性 속에서 道의 씨앗 찾으라

혜능의 머릿골 海東으로
달마진법은 우리나라에
正脈이 이어지고 있다.



달마가 입멸한 지 3년 뒤 양 무제(梁武帝)는 달마를 기리기 위해 보리달마대사송(菩提達摩大師頌)을 인각한 석비와 묘탑을 웅이산 기슭에 세웠다. 약 1천자가 새겨져 있는 석비에는 문장마다 달마를 추모하는 무제의 절절한 심정이 드러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석비는 달마의 행적을 자세히 소개하면서달마가 혜가에게 전한 것이 일진(一眞)의 법, 곧 하나(一)의 진법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달마가 혜가에게 전한 하나(一)의 가르침은 이른바 현관일규(玄關一窺)를 개혈(開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현관’이란 ‘지현지묘지관문(至玄至妙之關門)’의 준말이다. 지극히 오묘한 기운이 출입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사는 집의 경우 현관을 통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몸에도 현관이 있으며 그곳을 통해야 참다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일규’는 한 구멍이라는 뜻인데 출입구가 ‘하나’임을 일컫는 것이다. ‘현관일규’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說)이 있다. 그러나 달마가 비전(秘傳)한 그 자리는 두 눈썹 사이의 한가운데다. 그 한 구멍을 바르게 개통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성구자(自性求子)의 옳은 길에 들어설 수 있는 법이다. ‘자성구자’란 스스로의 본성(本性) 속에서 씨앗을 찾으라는 뜻인데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보면 그 씨앗은 강재이뇌(降在爾腦) 즉 머릿골 속에 내려와 있다고 쓰여 있다. 달마는 바로 이 현관일규를 혜가에게 명지(明指)해 줌으로써 도를 잇게 했던 것이다.

달마가 소림사를 떠날 때의 에피소드는 새삼스럽게 전법(傳法)의 실상을 웅변해 주고 있다. 달마는 도부(道副), 이총지(尼總持), 도육(道育), 혜가 등 출중한 제자들을 불러모아 질문을 했다. “그 동안 오랜 세월 이 소림사에서 함께 선(禪) 공부를 해 왔다. 깨달은 바를 말해 보아라.”도부가 제일 먼저 나섰다.

“스승이시여, 제가 깨달은 바는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不執文字), 문자를 여의지 않는 것(不離文字)을 도의 작용(道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너는 나의 피부를 얻었구나(汝得吾皮).”

두번째로 이총지가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제가 깨달은 바는 경희(慶喜) 보살이 아축불국(阿  佛國)을 보았을 때 한 번 보고 다시는 보지 않은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달마 대사는 빙긋이 웃으면서 응수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도다(汝得吾肉).”

다음에는 도육이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제가 깨달은 것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가 본래 공한 것(本空)이기 때문에 몸도 공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色) 감각(愛) 지각(想) 마음작용(行) 등 오음(五陰)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한 법도 가히 얻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달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도다(汝得吾骨).”

맨끝으로 대답하게 된 혜가는 조용히 일어나서 달마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큰절을 올리더니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달마는 다른 제자들을 한번 둘러본 다음 혜가에게 말했다.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도다(汝得吾髓).”

이런 전법의 방식을 일컬어 흔히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진법은 현관일규를 통해서 선천(先天)의 기운을 받아 견성(見性)하는 지름길이다. 선천의 기운이란 수태한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받는 생명의 진기(眞氣)를 말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후천(後天)의 기운이란 태아가 이 세상에 태어난 뒤 받는 기운을 일컫는다. 호흡이나 음식을 통해 얻는 기운은 모두 후천의 기다. 가령 단전호흡 같은 것은 후천의 기를 받아 건강을 도모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행자가 선천의 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운용할 줄 모르면 어떤 경지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현관일규를 도외시 하면 아무리 수행의 공덕을 쌓아도 ‘자성구자’가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달마의 행법(行法)은 <세수경(洗髓經)>과 <역근경(易筋經)>에 담겨 소림사에 전해지고 있다. <세수경>의 원본(原本)은 오늘날 거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오직 높은 경지의 스승들에 의해 구전(口傳)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역근경>은 원전(原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행법도 비교적 자세히 전해지고 있다. 이 <역근경>조차도 한동안은 전설(傳說) 속의 책으로만 여겨져 왔다. 하지만 <역근경>이란 책을 구해서 읽을 수 있다고 할지라도 행법의 어려움 때문에 난해한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역근경>을 난해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 원인은 두 가지가 손꼽힌다. 하나는 <역근경>의 공법에 도가(道家)적인 트릭이 잠재돼 있기 때문에 쉽사리 행법을 익힐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역근경>의 행법은 기(氣)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는 완전하게 터득할 수 없다는 점이다.

흔히 역근경이라고 하면 소림사 무술의 교본 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역근경>은 단순히 무공(武功) 또는 외공(外功)만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내공(內功)도 외공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공 쪽에 <역근경>의 비밀이 감춰져 있다고 지적되고 있을 정도다.

달마 선법의 핵심은 바로 <역근경>에 내장되어 있고, 현관일규를 견성의 통로로 삼은 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소림사에 모셔진 달마 석상이나 웅이산에 세워진 달마 석상은 일반적인 불상과는 전혀 다르다. 그 차이점은 특히 두 가지 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첫째는 수인법(手印법法)이다. 달마의 석상에는 ‘수인’이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고 옷소매 속에 감춰져 있다. 이것은 다른 불상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달마의 숨겨진 수인법을 알면 곧 달마의 선법을 알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달마의 수인법은 천부(天符)의 수인 또는 일자(一字)의 수인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런 수인법은 단군의 천진(天眞)에서 나타나 있는 것과도 상통한다.

둘째는 좌법(坐法)이다. 달마의 앉아 있는 모습은 결가부좌의 좌법이 아니라 궤좌(  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좌법을 일컬어 일자(一字) 좌법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좌법은 우리 나라의 고구려 고분벽화나 발해의 석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달마가 9년 면벽하기 위해 찾아 들었던 소림사 뒤의 소실산 석굴의 본래 이름은 ‘치우’동굴이었다. 치우는 우리 역사상 단군보다 앞선 환웅 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치우가 수행한 방법은 다름 아닌 하나(一)의 진법이고, 그가 앉은 좌법은 하나(一)의 궤좌법이었다.

이것이 달마선법의 핵심인데, 그것은 우리 전래의 <천부경>이나 <삼일신고>의 수행법과 별개가 아닌 것이다. 달마는 일(一)은 무극(無極) 중의 일점(一點)의 영성(靈性)을 말하는 것이며 석가모니 부처의 진경(眞經) 중의 진경이라고 말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일(一)은 동토(東土) 즉 동녘 땅에서 비롯된 것으로 만물은 모두 이것에서 생성된다고 밝혔다. 나아가서 삼계(三界)는 일(一)로써 이루어졌다고 간파한 바 있다.

이렇게 보면 달마선법이 결코 별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와 인연이 매우 깊다고 아니할 수 없다. 나는 달마의 진법은 우리 나라에 정맥(正脈)이 이어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나의 예증으로 거론되는 것이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진신불(眞身佛)에 얽힌 설화이다. 진신불이란 육신 그 자체가 부처라는 뜻으로 육신 그대로 성불한 것을 일컫는 것이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이므로 등신불(等身佛)이라고도 하고,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이라고도 부른다.

혜능의 속성은 노씨(盧氏)이고 남해의 신주(新州) 사람이다. 이곳은 옛 백제 땅이므로 혜능은 백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혜능이 오조(五祖) 홍인(弘忍)을 찾아 구법하자 양자강 남쪽의 오랑캐는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그러나 혜능은 당당했다.

“사람이 태어난 곳에는 남북이 있겠지만 불성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이 한 마디에 혜능은 홍인의 제자가 되었다. 결국 심인(心印)을 얻어 의발과 법을 받고 법통을 잇게까지 되었다.

달마가 예언한대로 의발을 전수하는 전통은 혜능을 끝으로 단절되었다. 혜능은 입적하면서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배와 노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당황한 제자들이 물었다.

“정법안장(正法安藏)은 누구에게 부치십니까?”
“도 있는 자가 얻고, 마음이 없는 경지에 이른 자에게 통하게 되었느니라.”혜능의 이 한 마디는 제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후에 무슨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내가 간 뒤 5~6년이 지나면 내 머리를 가져가는 자가 있을 것이니라.”혜능이 열반에 들자 제자들은 스승의 예언이 마음에 걸렸다. 혜능의 진신불을 탑 속에 안치하면서 철엽(鐵葉)과 칠포(漆布)로 목을 튼튼하게 감쌌다. 그리고 철저하게 감시했다.

그런데 어느날 밤, 스승의 진신이 안치된 탑 속에서 쇠줄을 끊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제자들이 놀라 뛰어가 보니 이미 혜능의 목은 도둑맞은 뒤였다. 관가에 비상이 걸렸고, 얼마 안 되어 범인 장정만(張淨滿)이 체포되었다. 범인은 신라승 김대비(金大悲)에게 금 2만 냥을 받고 육조대사의 머리를 넘겨주었다고 자복했다. 육조 혜능의 머릿골은 그가 예언한 그대로 해동(海東)의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기록에 따르면 혜능이 열반한 해가 단기 3천46년(서기 713년)이고 유골이 도난당한 것은 단기 3천55년(서기 722년) 그리고 그 유골이 이 땅에 돌아온 해는 단기 3천56년(서기 723년)이다.

그러나 유골의 존재는 거의 천년 동안이나 비밀의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이 사실이 공개된 것은 단기 4천1백95년(서기 1862년) 쌍계사 주지 용담 선사에 의해서였다. 용담 스님은 목압사(木鴨寺)에 보존되어 있던 유골을 쌍계사로 옮겨와 육조정상탑(六祖頂上塔)을 세우고 크게 불사를 일으켰다. 이때 육조정상탑에선 신묘한 빛이 발광하여 온 누리를 대낮같이 밝혔다고 한다.

우리 나라엔 비단 육조의 두개골뿐만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두골사리도 존재한다.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의 자장법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직접 그 유골을 받아 이 땅에 가져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一)의 진법이 시원(始源)한 곳에 귀일(歸一)하는 오묘한 이치인저.

이번 호로 달마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그 동안 달마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연재 내용과 관련해 궁금하신 점에 대해서는 필자(02-722-9831)에게 직접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부다피아 : http://www.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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