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法語)

무안 목우암 금산스님

通達無我法者 2009. 6. 12. 22:40

 

 

무안 목우암 금산스님

 
  
 
 
  
 
“과정이 즐거워야 해요 대중이 선지식입니다”
 
 
  “기초수련 없이 혼자 하는 수행은 어려워
 
  재가자들은 함께 하는 ‘별시수행’이 좋아”
  
    
무문관 또는 혼자 오랜 기간 토굴에서 홀로 정진한 스님들이 경험해 본 것 가운데 하나는 말에 관한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말 수가 줄어들고 말을 하더라도 좀 어눌해졌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혼자 오랜 기간 생활하다 보니 생긴 흠결 아닌 ‘훈장’일 것이다. 스님이 아니더라도 고시공부나 어떤 특정한 공부를 위해 주변사람들과 대화 없이 1년여 이상 지내본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례가 더러 있다. 전남 무안의 승달산 목우암(牧牛庵)의 한 스님도 이런 이유와 건강문제를 핑계로 지난해부터 기자의 방문을 사양해 왔었다. 세수 82세의 금산스님이다. 법명은 상지(尙志), 법호가 금산(金山)이다.
 
“취재하려 하지 말고 차나 한 잔 하세요. 여기서 재배한 차에요.”
 
두어 번 통화한 덕에 구면인 듯 반갑게 맞이해 준 스님의 유일한 ‘도반’ 공양주 보살의 덕분인지 스님은 보임산방(保任山房)에서의 차담(茶啖)만을 허락했다. 목우암이 자리한 승달산의 이름은 중국의 승달산에서 유래했다. 중국의 스님 500명이 무안 바다에 이르러 승달산에 불연(佛緣)이 깊은 것을 알고는 법천사를 짓고 수행을 해 모두 견성했다고 한다. 스님들이 깨달음을 이루는 곳이라 해 승달산(僧達山)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1956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지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금산스님은 젊은 시절 감찰국장 조사국장 감찰부장 등 종단 소임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호형호제(呼兄呼弟)하던 한 교수의 조언으로 수행처를 구했으나 머무르는 곳마다 조용히 수행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많은 사찰이 비구-대처 분규의 후유증을 앓던 시절, 스님이 주지로 발령받은 지리산 화엄사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산판이 조계종에서 제일 큽니다. 주지 바뀔 때마다 산판을 팔다보니 서 있는 나무마다 ‘가처분’이 붙었어요.”
 
천만다행인 것은 팔려나간 산판(山板)에는 ‘조건부 계약’이라는 빈틈이 있었다. 문교부 승인을 받으면 완불을 하기로 하고 계약금만 받고 팔아넘긴 사례가 있었다. 불교재산관리법의 ‘위력’ 때문이었는지 문교부의 재산처분 승인이 없었던 점을 발견한 스님이 두 차례나 법정소송읕 통해 삼보정재를 되찾았다. 비구-대처 대립이 치열하던 때 대법원에서의 이같은 승소는 향후 종단의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중요한 판례로 또 하나의 정화의 산물이 됐다.
 
“아주 어려웠어요. 주지를 서로 안하려하는 데 경산스님과의 인간적 관계가 있어 한 일주일 생각하다 내려왔어요. 여럿이 가면 싸움난다고 해 혼자 내려갔어요.” 홀홀단신으로 주지로 들어가 두 차례나 승소를 이끌었지만 스님은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나왔다. “할 일을 다 했으니 나온 것”이다. 수행납자의 본분사를 찾아 제방선원에서 수선안거했다. 태안사 동리선원장, 내장사 벽련선원장, 미주 삼보사 금강선원장으로 대중들과 함께 하는 사인 31하(夏)안거를 성만하고, 목우암에 정착했다.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보임(保任)이라는 말은 ‘목우’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참선을 해서 어느 정도 해오(解悟)는 했지만 숨이 다 떨어지진 않았으니 보임하려는 거지. 밥을 하려면 뜸을 들여야 하거든. 여기서 보임하고 간 분들이 좀 있지.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목우자(牧牛子)라는 호를 지어 갔잖아요. 보임수행은 뜸을 들인다는 수행이에요.”
 
스님은 한 때 유럽에서 21일간 만행을 하며, 미주에서는 1년여 선방을 운영하며, 서울 대명사 금강선원에서 재가자들을 위해 참선지도를 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올곧은 수행길이었다. 폐결핵, 염세적 사고 등으로 자살까지 생각했던 시절을 ‘출가’로 극복해 낸 스님에게는 그 아픈 경험이 오히려 고행에 큰 거름이 됐다. 60년 가까이 흔들림 없이 걸어온 ‘대장부(大丈夫)’의 길엔 혹 낙(樂)은 없었을까.
 
“부처님의 상수제자 가섭존자는 굉장히 엄하고 근엄한 분이거든. 그런 분이 어느 때는 바위에 올라 덩실덩실 춤을 췄다는 거야. ‘환희지’에 춤을 추거든. 그 때의 기쁨이라는 것은 세상의 어떤 기쁨하고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요. 무슨 끓어오르는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어. 행복을 주체를 못해. 그런 환희지가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런 맛으로 사는 것이지. 건조하면 살겠어요.”
 
 <사진설명> ‘보임’ 다음 단계를 위해서인가. 금산스님은 ‘다시 태어나도 수행자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사회과학서적도 많이 읽고 외국어도 많이 익히고 싶어서다. 스님이 10여년 가꾼 암자 앞의 차밭이 왠지 더 푸르러 보인다.
 
하지만 그 맛은 아무나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거 때마다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특정한 것에만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는 듯 스님은 보다 가벼운 예를 들었다. 청화스님(곡성 성륜사 조실.2003년 11월 입적)과의 일화가 많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에서 함께 있을 때 일이다.
 
“청화스님은 그렇게 자비로워. 어떤 부처님이 새까맣게 변해있으면 개금불사를 해주고 싶다는 거라.” 지금같이 순금박은 엄두도 못 내던 시절. “공업용 금분을 사다 아교를 바르고 붓에 묻혀 입으로 ‘호’ 불면 되거든. 그렇게 부니까 코로 들어가 나중에는 대변에도 금박이 나옵니다. 목에도 걸리고…. 개울가에서 도솔암 부처님을 그렇게 해서 다시 모시고 달밤에 함께 올라가는 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서 내가 그랬어요. ‘스님, 스님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청화스님이 ‘그러세요? 나도 행복합니다’ 그러는 거예요.”
 
차원은 다르지만 보살심만으로도 환희지에 버금가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스님은 이렇게 얘기했다. 스님에게 듣는 수행의 의미 또한 전혀 어렵지 않았다.
 
“수행은 자기연마, 자기 마음을 닦는 것이니 하면 할수록 맛이 달라지는 것이고 또 ‘부처님에게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니까 그 재미로 사는 것이에요. 과정이 좋아요. 과정이 행복해야 하는 것이지. 그런 과정이 없으면 공부가 되는 게 아니에요. 이치로는 깨달았다 하더라도 자기의 습(習)이 좀처럼 벗겨지지 않거든요. 평생 습관이 어디 쉽게 바뀝니까? 그러니까 점수(漸修)를 해야지요. 개혁이나 혁신이라는 것도 자기개혁 자기혁신이 핵심이 돼야 해요. 자기 자신이 개혁돼야 사회도 개혁되고 혁신되는 것이에요. 선(禪)수행이 바로 자기개혁이고 자기혁신 과정입니다.”
 
하지만 금산스님에게도 아쉬움이 있다. 강의록을 정리해 초심자를 위한 참선지도서 <생활 속의 참선>까지 펴냈지만 도시에서 24시간 개방하는 시민선방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스님은 재가들에게 권하는 게 하나 있다. 별시(別示)수행. 어려운 말 같지만 쉽게 다가온다.
 
“평소 훈련이 돼야 해요. 기초수련 없이 혼자 앉아서 수행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요. 대중이 바로 선지식이거든요.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파도 대중과 함께 수행하다보면 극복해 나가거든요. 요즘 재가자들도 참선이나 요가를 많이 하는 데 그런 훈련을 많이 받으면 집에서 혼자 하는데 도움이 돼요. 아침마다 하면 기분도 좋고 몸도 좋아져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5일째. 5월27일 한 시대의 지도자를 잃은 안타까움은 산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자 도덕경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어요. 가장 위대한 선(善)은 물과 같은 것이다. 왜 물과 같으냐? 물은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어.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물 한 방울 한 방울에 바위도 깨는 힘이 있다 이 말이에요. 그렇지만 그 물은 자기 스스로 힘을 쓰지 않고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가. 큰 바위가 있으면 그걸 돌아가지 부러 넘어가지 않는단 말이야.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 결국 어마어마하게 깊고 넓은 바다를 이루는 것이지. 그래서 ‘상선약수’라, 위대한 선은 물과 같다고 하는 것이지. 사람도 그래야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지도자는 참 어려움이 많아요. 자기가 좀 안다고 해서 자기 말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노 전 대통령도 불교를 조금만 더 공부했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당연한 말 같은데도 스님들을 통해서 들으면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에 자칫 앞서간 지도자의 길을 모방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낸 것일까. 스님은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우리 불교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부처님 생각을 하는 것이에요. 다른 게 아니에요. 염불하는 것이죠. 참선도 결국 부처님 되기 위한 것이니까. 어려울 때도 가장 좋은 것이 부처님을 많이 생각하는 것이에요.”
 
‘평생도반’이었던 청화스님이 81세에 입적해 “(나도) 작년에 가려고 했다”는 말로 법석을 연 금산스님. 나이 먹고 힘들어지면 자신만 힘든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까지 힘들고 괴롭다는 이유였지만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을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대기설법(對機說法)’의 묘미가 이런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말씀 한 마디 차 한 잔엔 스님의 평생 체험이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벽에 걸린 선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스님은 거기 적힌 게송을 응시했다.
 
미고삼계성 오고시방공 본래무동서 하처유남북(迷故三界城 悟故十方空 本來無東西 何處有南北).
‘미혹한 즉, 삼계의 성 안에 갇힘이요. 깨달은 즉, 시방이 공한지라. 본래 동도 서도 없는데 남북이 어디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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