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의 강의·혜거스님

〈29〉마경(魔境) ⑤/중생 선근 파괴해 생사에 윤회하게 해

通達無我法者 2009. 9. 7. 03:27

 

 

중생 선근 파괴해 생사에 윤회하게 해

〈29〉마경(魔境) ⑤

 

본문에 <능엄경(楞嚴經)>과 <천태지관(天台止觀)>과 규봉의 <수증의(修證儀)>에서 마의 일을 다 밝혔다라고 하였는데, 마의 일은 매우 많아서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수행자를 방해하고 어지럽히는 일체를 마의 일이라고 한다.

마의 일에 대하여, <소지관(小止觀)>에서는 “부처님과 같은 분은 공덕과 지혜로써 중생을 제도 해탈시켜 열반에 들게 하는 것을 일로 삼고 있는데, 마는 항상 중생의 선근을 파괴하여 생사에 윤회하도록 하는 것을 일로 삼고 있다”고 하였다. 즉, 부처님의 하는 일이 번뇌가 많고 미혹한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켜 열반에 들게 하는 것이라면, 마가 하는 일은 수행하는 이의 선근을 파괴하고 마음에 틈이 생기게 하여 마음을 흐트러지게 하며, 수도를 방해하고 마침내는 그를 무너뜨려 생사에 윤회하도록 하는 것을 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의 <원각경도량수증의(圓覺經道場修證儀)>는 <원각경>의 실천 방법에 대해 설한 것으로, 도량법사(道場法事), 예참법문(禮懺法門), 좌선법(坐禪法)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선법을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 ‘변마(辨魔)’에서 마에 대해 밝히고 있고, 천태지의(天台智, 538~597)선사의 <마하지관(摩訶止觀)>과 <소지관>의 ‘변마’에서 마에 대해 상세히 밝히고 있다. <소지관>의 원명은 <수습지관좌선법요(修習止觀坐禪法要)>이다.

그러나 <마하지관>과 <소지관>, <원각경도량수증의>의 마에 대한 설명은 대체로 비슷하며, 이 가운데 귀신마를 설명한 부분은 중국의 민간사상을 그대로 수용한 듯하다. 왜냐하면 귀신마 가운데 하나인 정매를 12지(支)의 짐승이 갖가지 형색으로 변화하여 수행자를 방해하는 것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능엄경>에서는 수행할 때 나타나는 마의 모습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하고 있어 선문(禪門)의 주목을 받아왔다. 여기서는 선문에서 주목을 받아온 <능엄경>의 50변마(辨魔)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능엄경>의 조도분(助道分)에 해당되는 제9권과 제10권에서는 수선할 때 선정 중에서 나타나는 50종의 마의 경계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능엄경’에서는

오음이 녹아 없어질 때마다 나타나는 경계

50가지를 세분화해 설명하며

수행함에 있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

 

 

부처님께서는 앞부분(제1권~제8권)에서 큰 지혜인 최상의 묘각(妙覺)에 나아가려고 하는 연각(緣覺)과 성문(聲聞)들에게 참다운 수행법을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법문을 마치려고 한 부처님께서는 유학(有學)인 연각과 성문이 지와 관을 닦는 가운데 나타나는 미세한 마구니의 일과 마경이 앞에 나타날 때 사견에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다시 대자비의 법문을 시작한다. 이것이 <능엄경>의 50마경이 설해지게 된 배경이다.

즉 50마경은 유학들을 위해서 설해졌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학(無學)은 색수상행(色受想行)의 4음은 없어지고 식음(識陰)만 남아있어 천마.귀신 등의 마경이 작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유학들을 위해서 오음을 다 말씀하신 것이다.

<능엄경>의 ‘50마경’은 선문에서 주목을 받아왔는데, 그 이유는 수선할 때 선정 가운데에 나타나는 마의 모습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실질적인 수행상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과 세계의 연원과 실상을 이해하는 요소로서 오음(五陰)을 들고 있다. 오음은 오온(五蘊)이라고도 하며 색(色, 물질), 수(受, 감각), 상(想, 지각), 행(行, 형성력), 식(識, 식별작용)의 총칭이다. 이 오음은 크게 색과 그 작용(수상행식)으로 나뉜다. 색은 사대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이며, 그 작용은 사대소조(四大所造)인 명(名)이다.

그러면 <능엄경> 권2에서는 오음에 대하여 “본래무(本來無)인 5음(五陰), 6입(六入), 12처(十二處), 18계(十八界) 등의 인연이 화합하면 만가지의 허상이 허망하게 생겨나고, 그 인연이 흩어지면 허망하게 없어지느니라. 진실로 생멸거래가 본래 여래장(如來藏)의 묘진여성(妙眞如性)인 줄을 알지 못하고, 그 가운데에서 거래(去來)와 미오(迷悟), 생사를 구하면 조금도 얻을 수 없느니라”고 하여 오음은 깨닫지 못하면 허망한 것이며 깨달으면 본래는 여래장성이라고 하였다. 오음이 곧 인간을 이루는 요소이지만 인간이 맞는 여러 가지 장애도 역시 오음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에 “한 생각이 움직이면 오음이 함께 일어나나니, 오음 가운데 50가지 악이 갖추어져 있느니라”고 하였고, <잡아함경>에서도 나타(羅陀)가 부처님께 마의 정체를 물으니, “색수상행식 모두는 마라고 관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즉, 부처님은 색수상행식 오음의 작용이야말로 ‘마의 정체’라고 대답하고 있다. 붓다는 이 5개의 개념이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정체를 나타내는 것이라 보고, 악마란 그런 요소들이 작용해서 생기는 내재적인 갈등이나 불안으로 간파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음을 마로 본 것이다.

‘50마경’도 오음을 마로 보고 각 음마다 10개씩의 마상(魔相)을 제시하고 있다. <능엄경> 권9에 “선정을 성취하고 또 파란(破亂)함이 네 심중에 있는 오음주인에게 달렸다. 주인이 미혹하면 객(마구니)이 그 틈을 타고 오거니와, 분명하게 알지 못하여 오음에게 홀리면 반드시 마의 자식이 되어 마인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선정을 성취하고 성취하지 못하고는 오음의 주인인 자기 자신에게 달린 것이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주인이 미혹하면 마구니가 그 틈을 얻게 되고 마구니의 일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여 오음에게 홀리게 되면 마인이 된다고 하여 선정의 성취여부가 전적으로 오음주인에게 달렸다고 하였다.

<능엄경>에서는 오음, 즉 색.수.상.행.식이 녹아 없어질 때마다 나타나는 10가지씩의 마경을 제시해 수선함에 장애를 극복하고 수행에 정진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모두 50가지로 세분하여 세밀히 설명하고 있으며, 닦아 나아가는 입장에서는 응당 만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게 한 것이다.

 

혜거스님 / 서울 금강선원장 

[불교신문 2549호/ 8월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