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尊坐次 跋多婆羅 倂其同伴十六開士 卽從座起 頂禮佛足 而白佛言 於浴僧時 隨例入室 忽悟水因 旣不洗塵 亦不洗體 中間安然 得無所有 妙觸宣明 成佛子住
세존께서 앉아 계실 때 발다파라 보살과 그의 도반 16명의 보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리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스님들이 목욕을 할 때에 순서를 따라서 욕실에 들어가서 홀연히 물의 원인을 깨달았습니다. 이미 때를 씻은 것도 아니며 또한 몸을 씻은 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이 편안하여 아무것도 존재하는 바가 없는 경지를 얻었습니다. 미묘한 감촉이 선명해서 부처님의 제자로서 머물 자리를 얻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물을 대하면 누구나 편안
‘촉진원통’ 이룰 수 있어
해설 : 이 이야기는 <능엄경>의 25원통(圓通)을 밝히는 내용 가운데 촉진(觸塵)의 원통을 설명한 글이다. 원통이란 도통이며 깨달음이란 뜻이다. 25원통이란 6근과 6진과 6식과 7대(大)에서 모두 깨달음을 이룬 아라한들과 보살들이 하나하나 등장하여 자신의 경험들을 부처님께 말씀드리는데 발다파라라는 보살은 목욕을 하면서 물의 감촉을 통하여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다.
불교는 세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일로부터 출발하여 시종일관 그 깨달음의 내용과 방법을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하여 모든 사람들도 부처님처럼 깨닫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바른 이치를 깨닫고 나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스스로 알고 실천하게 되어 있다.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운 인생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 것은 오로지 인생의 지극히 소중함을 느끼고 그리고는 가장 보람 있고 가치 있게 사는 길을 배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깨달음을 이루는 일이라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대단히 많다. 흔히 알고 있는 참선과 염불과 간경과 주력과 같은 수행법이 있는가하면 <능엄경>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25종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있다. 그것도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소개하였다. 한 가지 의문스런 점은 백운스님이 <직지심경>을 편찬하시면서 <능엄경>의 수행법을 소개하는데 <능엄경>에서도 관음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이 가장 우수하다고 하여 특별히 다루었는데 ‘왜 하필이면 발다파라 보살의 촉진원통을 이끌어 왔는가?’하는 문제이다.
사사로운 생각으로는 이 세상에는 아마도 수분이 가장 많고 모든 생물이 최초에 생길 때도 물에서 생겼으며 사람의 몸도 수분이 가장 많다. 뿐만 아니라 서양철학에서도 물은 모든 존재의 원인이며 원리라고 하여 모든 것은 물에서 나와 물로 형성되어 물로 돌아간다고 보기도 하였다. 생물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물은 지구의 많은 부분이 물로 구성되었고 아기도 모태에서 물에 있다가 태어난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하며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물은 어쩌면 한시도 잊지 못하고 사는 대상이다. 공부란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도가 그렇고 화두가 그렇고 경을 읽는 일이 그렇다. 물을 자주 대하므로 물의 원인을 관찰하여 선정에 든다면 아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염화시중이라는 화두를 드는 사람은 꽃을 볼 때마다 놓친 화두를 다시 상기할 수 있어서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경우와 같은 것이리라.
“때를 씻은 것도 아니며 또한 몸을 씻은 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이 편안하여 아무것도 존재하는 바가 없는 경지를 얻었습니다”라고 한 것은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사람이 물을 대하는 순간은 누구나 마음이 편안하다. 바닷물이 그렇고 흐르는 강물이 그렇다. 더구나 목욕탕에 들어가서 느끼는 경우는 더 편안하다. 굳이 때를 씻거나 몸을 씻거나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 느낌의 그 상태가 오래 지속하여 지극히 편안한데 이르러 아무것도 존재하는 바가 없는 경지인 텅 빈 자리에 머무른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무비스님 / 조계종 전 교육원장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