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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29

通達無我法者 2010. 12. 24. 23:46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눈으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이 보고 그것을 아는 마음이 있어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귀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로 듣고 그것을 아는 마음이 있어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코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코로 냄새를 맡고 그것을 아는 마음이 있어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혀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혀로 맛을 보고 그것을 아는 마음이 있어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몸으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부딪치고 그것을 아는 마음이 있어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수행은 감각기관이 하는 것이 아니고

감각대상과 부딪쳤을 때 그것을 아는 마음이 합니다.

 

수행은 마음이 일을 하는 것이며, 일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이 있는지 알아야, 실제로 있는 것입니다.

 

법이 있지만 알지 못하면 법이 아닙니다.

행복이 있지만 모르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자의 것입니다.

 

모르는 마음은 몰라서 괴롭지만

아는 마음은 알아서 행복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 몸을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에 대해서 계속 공부를 하시겠습니다.

 

불교의 괴로움은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더 괴롭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괴로움이 있다는 현실적인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불교 수행에서 실재하는 대상을 혐오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혐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혐오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대상을 혐오하는 것의 진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수행방법입니다.

 

부처님의 수행방법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라는 바른 성품을 알아서

자연스럽게 갈애와 집착을 끊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지켜보아야 하며,

무엇도 없애려고 하지 않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사실 이것이 쉬운 것 같지만, 이렇게 살아보지 않아서 가장 어려운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제 수행자 여러분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상좌 불교는 맨 날 괴로움만 말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불교를 선택하는 바른 마음가짐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면 부처님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여기에 다른 견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까지 세상의 어디에도 없는 방식을 찾아내시고

그것을 실천해서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물론 맹목적으로 따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선입관 없이 실천해보고 나서,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지고 노력해야하겠습니다.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 경전에 기록된 부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고 따르셔야 합니다.

과연 이 세상에 믿을만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과연 누구를 믿겠습니까?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자신이 알고 하는지 어떻게 우리가 확인할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수행을 할 때 먼저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하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따르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수행을 평가할 때는 언제부터 누가 한 수행방법인가를 먼저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그 수행방법에 대한 분명한 기록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수행을 지도하는 사람은 누구에게서 배웠나 그 스승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스승 없이 알았다면 그것은 위험한 수행방법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이렇게 검증을 해야 비로소 바른 수행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수행으로부터 오는 위험을 예방하고 또한 치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그러면 몸을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에 대한 경전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은 아래로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는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덮여 있으며,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깨끗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즉, 이 몸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과 발톱, 이빨,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장,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위장, 소화 안 된 음식물, 대변, 뇌,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비계, 눈물, 임파액,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

 

마치 양쪽에 주둥이가 있는 자루에 여러 가지 곡식,

즉 밭벼, 보리, 녹두, 완두, 참깨, 논벼 등이 가득 담겨 있는데,

어떤 눈 밝은 사람이 그 자루를 풀고

‘이것은 밭벼, 이것은 보리, 이것은 녹두, 이것은 완두, 이것은 참깨, 이것은 논벼’라고

아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은 아래로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는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덮여져 있으며,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깨끗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즉, 이 몸은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과 발톱, 이빨,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장,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위장, 소화 안 된 음식물, 대변, 뇌,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비계, 눈물, 임파액,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이상이 몸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수행방법입니다.

여기서 몸에서 알아차릴 대상은 32가지입니다.

이 32가지 대상을 알아차리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배워야만 이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경전을 살펴보면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은 아래로는 발바닥부터

위로는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덮여져 있으며,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깨끗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몸의 32가지 기관을 차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32가지 순서는 이 수행을 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처음에 몸의 기관을 알아차릴 때 다섯 가지와 여섯 가지씩 묶어서 알아차립니다.

 

32가지를 다섯 가지와 여섯 가지로 분류 하면

첫 번째는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과 발톱, 이빨, 피부,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

두 번째는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

세 번째는 심장, 간장, 늑막, 지라, 허파,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

네 번째는 창자, 위장, 소화 안 된 음식물, 대변, 뇌,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

다섯 번째는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비계, 이렇게 여섯 가지입니다.

여섯 번째는 눈물, 임파액, 침, 콧물, 관절액, 오줌, 이렇게 여섯 가지입니다.

이렇게 32가지를 그룹별로 외웁니다.

 

다음은 주석서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수행자는 이처럼 자신의 몸을 살피고, 마음을 보고, 32가지 부분을 보고,

이들 부분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킴에 대하여 알아차립니다.

 

많은 서양인들에게는 몸에 대해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 어려움은 이러한 수행을 열린 마음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을 다시 되새기게 합니다.

 

열린 마음과 괴로움으로부터 해방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면

여러분들은 왜 부처님께서 이 수행을 칭찬하셨는지 이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한 가지를 계발하여 반복해서 수행하면

최고의 긴박감, 최고의 이익, 속박이 정지된 최고의 상태.

최고의 알아차림과 완전한 앎, 지혜와 통찰력의 얻음

지금 여기에 행복한 삶, 분명한 통찰력과 해탈이라는 열매의 실현으로 인도된다.

무엇이 그 한 가지인가? 그것은 몸에 전념한 알아차림이다.”

 

이렇게 몸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에 대한 이익과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께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몸에 대해 틈이 없는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수행자는 불멸을 경험하고,

몸에 대해 틈이 없는 알아차림을 계발하지 않는 사람들은 불멸을 경험하지 못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불멸을 경험한다는 것은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는 것이고,

불멸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태어나서 죽고 또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오직 이 유형의 수행만이 진리의 깨달음에 인도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많은 수행 유형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이 종류의 수행을 원하는 사람은 가급적이면 스승에게서

그것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하는가를 우선 배워야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몸을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수행을 하기 위해서 다음 세 가지 단계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배움의 일곱 가지 기술입니다.

둘째, 주의를 기울이는 기술 열 가지입니다.

셋째, 수행의 진보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수행을 하는 첫째 배움의 일곱 가지 기술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배움의 일곱 가지 기술을 알아야합니다.

 

첫 번째로 시작해야할 것은 입으로 독송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32가지 몸의 부분을 외우고, 몸 부분의 이름을 아주 상당기간,

온종일 깨어있는 전 시간 동안 독송하면서 안다는 뜻입니다.

 

경전에서 말하기를 삼장을 통달했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우선 32가지 몸의 부분들의 이름을 독송해야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수행에서는 지식의 많고 적음이 없습니다.

몸의 32가지 부분의 독송은 부지런히 165일 동안 실행해야합니다.

수행자는 그것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