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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31

通達無我法者 2010. 12. 24. 23:54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고 무례한 것은 범부가 일으키는 불선행입니다.

그 근본 원인은 어리석음이며, 알아차리지 못해서 양심과 수치심이 없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성은 탐욕이 많고, 내가 최고라는 사견이 있으며, 자만에 중독되어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알아차리는 것은 수행자의 선행입니다.

그 근본원인은 지혜이며, 믿음이 있어서 양심과 수치심이 있고

부끄러움을 알아 바르게 행동합니다.

이런 사람의 특성은 탐욕이 없고, 성내지 않으며 중도를 취합니다.

그래서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직업의식을 가지고 자비희사의 무량한 행위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해서 부정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비구들이 최상의 침착함을 이루기를 원한다면,

여섯 가지 것들을 성취하도록 가르칩니다.

 

이들 여섯 가지란

첫째 마음이 억제되어야 할 때 마음을 억제하고,

둘째, 마음이 정진하도록 해야 할 때 마음을 정진시키고,

셋째, 마음이 격려되어야 할 때 마음을 격려하고,

넷째, 모든 것을 평정심으로 보고,

다섯째, 최상의 상태를 얻고자 결심하고,

그리고 여섯째 열반의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세 번째 경전 상윳따니까야에서는 깨달음의 어떤 요소를 계발해야 될 때를 설명합니다.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가 있는데 이들 요소 하나하나는 특정한 때에 계발되어야 합니다.

수행자는 이 세 번째 경전을 읽어야하고, 그 경전에 있는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수행자는 이들 주의를 기울이는 열 가지 기술을 배워야합니다.

 

부정관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세 번째는 수행의 진보에 관한 것입니다.

이상의 열 가지 기술을 배웠을 때 수행자는 적절한 곳에 가서

갖가지 몸의 부분들을 소리 내어 외우고 다음에 암송하는 등, 수행을 계속합니다.

 

몸의 32가지 부분을 알아차려서 한 부분이 제일 뚜렷하게 나타날 때까지

다시 또다시 알아차리고, 수행자는 그것을 하면서 지냅니다.

 

수행자는 근본 삼매를 성취하거나 선정의 단계에 도달 할 때까지

이 부분을 계속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 수행은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이 자신의 몸과 다른 사람들의 몸에 덜 집착하도록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것은 첫 번째 선정의 달성으로 이끄는 사마타 수행으로 인도할 수 있고,

위빠사나 수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수행자는 초선을 달성하고 그 후 선정 자체를 알아차리든지

그 선정의 대상인 몸의 32개 부분의 하나를 알아차리는 위빠사나로 전환해야 합니다.

 

수행자는 위빠사나에서 더 높은 단계에 도달 할 때까지

선정 또는 그 선정의 대상이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도록 노력해야하겠습니다.

 

그 대신 선정을 계발할 것 없이 수행자는 몸의 부분들을 요소로 보고

이 부분들에 대하여 위빠사나 수행을 계발할 수도 있습니다.

둘 중의 어느 방법으로든 수행자는 결국 열반을 실현할 것입니다.

 

사마타만으로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경전의 다음 구절을 보면 분명해질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마타 수행에서 위빠사나 수행으로 넘어오지 않으면

결코 열반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처럼 몸의 32가지를 알아차림에 있어서

사마타 수행의 선정 수행으로 대상을 알아차릴 수도 있고

이것들을 느낌으로 알아차려서 위빠사나 수행을 통하여 열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경전 구절로 가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보듯이 몸의 현상을 일어나고 사라지는 느낌으로 보면

결국 열반에 이르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게 됩니다.

 

알아차리는 대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아는 것은 사마타 수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수행자가 이미 말한, 일어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요소들에 대한 알아차림을 이해할 때

위빠사나를 뜻한다는 것을 압니다.

사마타 수행은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에 종속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마타 없는 위빠사나 수행을 있을 수 있지만

위빠사나 수행이 없는 사마타 수행은 수행으로서 완전성이 결여됩니다.

 

몸의 부분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에 대하여 알아차리고.

얼마나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지 알려고 노력할 때.

어떤 갈애도 잘못된 견해도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즉 몸의 부분들에 어떤 집착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다섯 가지 무더기인 오온의 세상에서 어느 것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온을 단지 오온으로 보고 오취온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오온을 집착하면 오취온이 되어서 바른 법을 볼 수가 없습니다.

나라는 유신견이 있으면 무명이 눈을 가리어 있는 그대로 법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착이 없을 때만이 비로소 실재하는 현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수행을 할 때 얻는 이득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외딴 곳에 있을 때 종종 행복하지 않으나,

이런 수행을 한 사람은 수행을 함으로써 외딴 곳에서의 지루함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곳에서, 어떤 곳에서나 즐길 수가 있습니다.

 

또는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을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에 빠지는 것에 익숙하나, 이 수행을 하면 그런 욕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몸의 갖가지 부분의 매력을 보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그것에 무관심할 것입니다.

 

다른 이득은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존재와 몸의 갖가지 부분들의 매력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위험이 일어날 때, 수행자는 공포도 불안도 경험하지 않습니다.

수행자는 추위, 더위, 배고픔 등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는 기후, 음식, 갖가지 상황에 더 많은 참을성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오온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면 내 몸이 다칠까봐,

내 마음이 아플까봐, 내 몸이 배고플까봐, 내 마음이 괴로울까봐,

여러 가지 근심, 걱정으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머리카락 색깔 등을 바탕으로 네 가지 선정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에 대한 명상만 하면 첫 번째 선정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선정에 도달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몸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이라는 거친 대상에 대한 의식을 지탱하기 위하여

처음에 마음을 대상에 적용하는 선정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일으킨 생각입니다. 오직 첫 번째 선정만 그 선정의 요소를 수반합니다.

 

수행자는 머리카락의 색깔 등에 관하여 알아차릴 때 그것은 색깔 명상이 될 것입니다.

파란색, 노란색, 흰색, 붉은 색, 등등 색깔의 명상이 되었을 때 이들 대상에서 선정을 계발할 수가 있고,

그 선정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선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수행자는 머리카락의 색깔 등에 관한 명상을 바탕으로 네 가지 선정을 모두 도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머리카락뿐이 아닙니다.

몸의 어느 한 부분에서도 모두 네 가지 선정에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 선정에 도달 한 후 멀리 있는 물건을 볼 수 있는 능력이나

보통이 아닌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서 그것을 계속 더 계발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여섯 가지 신통이라고 부릅니다. 이것들이 이런 명상을 함으로써 얻는 것들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으로 전환하면

이런 능력보다는 지혜가 계발되어 궁극의 열반을 성취합니다.

선정 수행에서 능력을 계발하는 것과 위빠사나 수행으로 지혜를 계발하는 것은

오직 자신이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그러나 선정 수행은 윤회하는 세계에 있고,

위빠사나 수행은 통찰 지혜가 나서 무상, 고, 무아를 보아 윤회계를 벗어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마타 수행도 좋은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 사마타 수행의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번뇌를 해결하셔야 합니다.

 

몸의 기관들에 대해 명상할 때, 몸의 부분의 임상적 정확성과

어떤 것을 몸의 부분이라고 불러야하는지에 대해 문제 삼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소화가 되지 않은 음식물, 대변과 오중, 이것들은 몸을 구성하는 부분은 아닙니다.

이것들은 단지 명상을 위해서만 여기에 언급된 것입니다.

 

물론 32가지 이상의 몸의 부분이 있으나 이들 32가지 부분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이 보았듯 수행자가 첫 번째 부분에 대하여 명상을 할 때

선정의 단계에 도달 할 수 있고, 위빠사나로 바꾸어서 진리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도 있습니다.

 

몸의 부분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그것에 대하여 논란을 벌릴 필요는 없습니다.

병원이나 검시 해부를 하는 곳에 간다 해도 이 부분들 하나하나를 모두 볼 수는 없습니다.

몸의 여러 부분의 사진을 보여주는 책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책에 있는 그림을 보고 명상의 대상으로 한 부분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몸의 부분들 중 한 두 개를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로 본 것에 대한 명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 수행은 몸에 대한 혐오를 느껴 집착을 끊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이것 외에 다른 것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몸의 기관을 32가지로 나누었다는 사실에 대한 것도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몸을 32가지로 나누었는데 이것은 잘못이라거나,

또는 부처님께서 몸을 32가지로 나누었으니 몸은 32가지로 나눈 것이 옳다는 식의 견해입니다.

여기서 32가지라는 숫자는 지엽적인 것으로 그렇게 큰 의미는 없습니다.

 

몸의 부분을 세분화하면 더 많은 기관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몸의 집착을 끊기 위해서 선택한 32가지는

부정관 수행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분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32가지 분류가 잘못된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논쟁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행은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을 함께 병행할 수 있는 수행방법입니다.

아직 위빠사나 수행을 해보지 않은 수행자는 사마타 수행밖에 모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완성시키려면 반드시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만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반드시 스승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스승의 수행 방법에 따라 사마타 수행을 거치고 위빠사나 수행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있고,

아니면 처음부터 사마타 수행을 하지 않고 위빠사나 수행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사마타 수행을 하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지 않고 그냥 선정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마타 수행만 하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영원히 윤회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부처님께서 바라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것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수행자들이 사실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선택은 선업에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는 사실은

선업의 과보로 인한 것으로 여기셔야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