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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68

通達無我法者 2010. 12. 27. 02:03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수행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해도

바른 마음가짐이 없다면 오히려 해로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궁극의 목표는

무아를 알아 갈애를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갈애가 일어나면 집착을 해서

갈애가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행위가 모두 바른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자아를 더 강화해서 아만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항상 최고의 선에는 최고의 불선이 함께 있습니다.

불선도 생존을 위해서 선을 가장합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가장 경계해야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자신이 수행자라는 우월감입니다.

짐을 벗을 수 있는 곳에서 오히려 짐을 진다면

과연 어디에서 짐을 벗을 수가 있겠습니까?

수행은 갈애의 짐을 벗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수행을 더 잘하려고 하면 더 무거운 짐을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도 반드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서 바른 길을 가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수행을 하는 사명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해서

오늘도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4번 정진에 관한 것입니다.

정진은 노력, 힘, 원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본요소를 5가지 근기라고 해서 오근이라고 합니다.

이때 오근은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입니다.

 

이때의 노력이 바로 정진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노력을 하게 되고, 노력을 해야 알아차릴 수 있으며,

노력을 해서 알아차림을 지속시키면 집중이 되고, 집중의 상태에서 지혜가 납니다.

이렇게 해서 오근에 노력을 기울이면 오력이 생깁니다.

 

노력은 모든 것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천입니다.

선한 것도 노력을 한 결과이고, 선하지 못한 것도 노력을 한 결과이고,

게으른 것도 노력을 해서 얻은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말하는 노력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의 노력과 몸의 노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행을 하는 것을 노력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경행은 정진력을 키우기 때문에 노력이라고 말합니다.

좌선은 집중력을 키우는 것에 반해서

경행은 노력해야만 하는 정진력을 배가시키는 수행입니다.

 

주석서에서는 정진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정진은 활기참이다.

노력함이 특징이다.

동시에 나타난 대상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무너지지 않는 상태로 나타난다.

두려움을 가진 자는 지혜롭게 노력한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이것의 가까운 원인은 두려워함이다.

또 가까운 원인은 정진을 하는 동기이다.

바르게 시작했을 때 이것은 모든 성공의 근원이라고 알아야 한다.’

이렇게 주석서에서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이 있고 고통스러워야 우리가 수행을 합니다.

두려움과 고통을 수행으로 반전시키면

거기서 행복과 평화와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모든 성공의 근원이 노력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은 노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선한 것도 노력이고, 선하지 않은 것도 노력이고,

게으른 것도 노력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노력을 기울일 때

바로 선한 노력을 기울이느냐 선하지 못한 노력을 기울이느냐와

얼마만큼 노력을 하느냐하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항상 유념해야 하시겠습니다.

 

다음에는 5번 희열입니다.

희열을 환희, 기쁨, 만족이라고도 합니다.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충만해지면 희열이 생깁니다.

선정수행에서는 자비희사라고 하는 사무량심에서 희가 바로 희열입니다.

 

이처럼 희열은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얻는 자신의 내면의 기쁨이 있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는 사마타 수행의 기쁨이 함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 중에 나타나는 정신적, 육체적 희열은

7가지 깨달음의 요인 중에 하나입니다.

 

처음에 수행을 시작할 때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다음에 대상에 대한 탐구와 노력을 하면 다음 단계로 희열이 나타납니다.

희열로 인해 몸과 마음에서 생기는 현상은 5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약한 희열로 소름이 끼치거나 닭살이 돋고 털이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둘째, 순간적인 희열로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짜릿하고 시원하고 기분이 좋은 느낌입니다.

셋째, 파도와 같은 희열로 파도를 타는 듯이 공간을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넷째, 들어 올리는 희열로 몸이 공중에 뜨는 느낌이 들거나

실제로 몸이 공중으로 부양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몸이 이동합니다.

다섯째, 퍼지는 희열로 온몸에 완벽하게 스며들 듯이 기쁨이 충만한 느낌입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을 하면 이러한 느낌이 나타날 때

이것이 바로 희열이라고 아시기 바랍니다.

몸과 마음이 충만한 상태에서 정신적 충만함이 몸에서 이러한 희열로 나타납니다.

 

주석서에서는 희열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만족한다고 해서 희열이라고 한다.

충분히 만족하는 특징이 있다.

몸과 마음을 강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의기양양함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수행 중에 나타난 이러한 희열은

여러분들 스스로가 희열이라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어떤 현상이 나타나든 스승과 면담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스승이 이러한 희열이 나타났을 때 적절하게 조언을 해줄 것입니다.

 

이 희열은 7가지 깨달음의 요소 중에 하나이므로

반드시 모든 수행자가 거쳐야 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이 희열이 일어날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수행이 더 발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 희열로 인해서 수행이 더 퇴보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에 6번째는 열의입니다.

열의는 자극, 고무, 의욕, 하고자 함, 의지, 의향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어 하는 의지를 내서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열의는 좋은 결과를 바라는 열의입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바라는 열의가 아닙니다.

 

열의는 때때로 다른 것과 같아지는 유익한 것으로,

손을 뻗어서 선한 것을 잡으려는 소망입니다.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노력도 어떤 노력을 할 것이냐 이지만

열의도 선한 것이냐 선하지 못한 것이냐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선하지 못한 사람은 항상 선하지 못한 일에 더 열의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더 노력합니다. 그리고 더 집중합니다.

 

이것이 똑같은 열의, 똑같은 집중이지만

사실은 선한 마음의 작용과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을 중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쓰이는 것입니다.

 

주석서에서는 열의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열의는 하고 싶어함의 동의어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고 싶어 하는 특징이 있다.

대상을 찾는 역할을 한다.

대상을 원함으로 나타난다.

바로 그 대상이 가까운 원인이다.

이 열의는 마음의 대상을 잡는데 있어 마치 손을 뻗는 것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

 

이상으로 모든 마음과 관련되어서

항상 있는 마음의 작용 7가지와

다양하게 섞여서 때때로 나타나는 마음의 작용 6가지를 합쳐서

모두 13가지의 마음의 작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인간이 산다는 것은 이처럼 기본적인 마음의 작용과

다양하게 나타나는 마음의 작용이 함께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7가지 기본적인 마음의 작용을 가지고

6가지 다양하게 섞이는 마음의 작용을 계발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래서 6가지 마음의 작용은 일반적으로 수행을 하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13가지 마음의 작용을 가지고 수행을 하면

다음에 나오는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을 갖지 않고

깨끗하고 유익한 마음의 작용을 갖게 될 것입니다.

 

수행을 한다는 사실이 그냥 막연하게 좋아지기 위해서 하지만

사실은 이러한 내용들을 포함하면서

매순간 마음을 고양시키고 번뇌에서 해방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두 이러한 것들이 있어서 나타난 결과들입니다.

 

이상 13가지 중에서 7가지 속에 포함된 느낌과 인식을 제외한

나머지 11가지는 모두 행에 속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52가지 마음의 작용 중에서

오온의 수온과 상온을 뺀 나머지가 모두 행온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모든 마음의 작용은 행온입니다.

이 행온이 바로 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업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어떤 결과를 얻는가가 결정됩니다.

 

이처럼 많은 행이 있지만 알아차림 하나만 있으면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수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고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 어느 때나 알아차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 알아차림이 바로 선한 행중에 하나라는 사실은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은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입니다.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은 모두 14가지입니다.

이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을 불선심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불선이라고 하지 않고 선하지 않은 마음의 작용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은 어리석음, 양심 없음, 수치심 없음, 들뜸,

탐욕, 사견, 자만, 성냄, 질투, 인색, 후회, 해태, 혼침, 의심입니다.

이상 14가지를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14가지의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 중에서

어리석음과 양심 없음과 수치심 없음, 들뜸이란 4가지 마음의 작용은

어리석음을 앞에 세워 독자로 일어나지 않고 항상 함께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리석을 때는 양심이 없고 수치심이 없고 들뜸이 함께 결속되어 있습니다.

그런 뒤에 이 4가지는 다시 다른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함께 참여합니다.

 

그래서 모든 다른 선하지 못한 마음이 작용이 있을 때마다

이상 4가지 마음의 작용이 함께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리석음이 있는 곳에서

항상 양심 없음, 수치심 없음, 들뜸이 함께 결합되어 나타나고,

그리고 이상 4가지가 자기들끼리만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다시 다른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이 일어날 때 마다

그것들과 결합되어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이 어리석음은 양심 없음, 수치심 없음, 들뜸이라는 세 가지 것을 결합하여 항상 함께 움직입니다.

그리고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이 나타날 때마다

이곳저곳에 가서 참견하면서 그것들과 함께 일어납니다.

그러니 어리석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그러니 어리석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어리석음의 실체를 파악하셔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탐욕이란 마음의 작용이 있을 때에도

어리석음, 양심 없음, 수치심 없음, 들뜸이 가세합니다.

그리고 성냄이란 마음의 작용이 일어날 때도 이상 네 가지가 가세합니다.

또 해태와 의심이 있을 때에도 이상 네 가지 마음의 작용이 가세하여 함께 결합하여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리석음, 양심 없음, 수치심 없음, 들뜸은

모든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과 항상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음이 있는 곳에

양심 없음, 수치심 없음, 들뜸이 함께 모여서 함께 움직인다고 하였는데

사실은 이것들만 모여서 작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다는 것은 이렇게 복잡하게 서로 결합되어서

힘이 힘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냥 탐욕도 그냥 탐욕이 아니고 어리석음이 탐욕과 합류하기 때문에

그 탐욕의 힘이 자꾸 커지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