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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47

通達無我法者 2010. 12. 27. 23:19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모든 행위는 하려고 하는 마음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이때의 마음은 그 순간의 마음이지 나의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은 그 순간의 조건에 의해 빠르게 일어나서 사라져 버립니다.

이때 조금 전의 마음과 현재의 마음과 지금 이후의 마음 중에

어느 마음이 나의 마음일까요?

 

마음은 단지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지

여기에 나의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 의해서 일어난 행위도

나의 행위가 아니고 그 순간의 행위일 뿐입니다.

그래서 행위에 의해 일어나는 과보를 받는 자도 없습니다.

 

마음에 의한 행위와 행위에 의한 과보가

저 스스로의 힘으로 굴러갈 뿐이지 내가 굴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고통과 즐거움도 나의 것이 아닙니다.

단지 조건에 의해서 한순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오늘은 넷째,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는 마음을 알아차리기’ 수행은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의 최종적 관문입니다.

 

그러므로 앞선 ‘있는 마음 알아차리기’, ‘일어난 마음 알아차리기’,

‘하려는 마음 알아차리기’ 수행을 충분히 해서

네 번째인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 수행까지 해야 합니다.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는 앞선 세 가지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과

병행하여 할 수도 있고 다른 수행을 익힌 뒤에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수행은 다른 수행에 비하여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수행을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고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함으로써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으며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상이 희미해질 때 더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는 수행이 잘 안될 때나 수행이 잘 될 때나

언제나 알아차려서 마음이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지혜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수행입니다.

 

수행을 해서 몸이 소멸하면 호흡과 느낌이 사라집니다.

이때 아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해야 마지막 단계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수행을 하지 않고서는 도과를 성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수행을 바르게 익히면 마지막에 별다른 장애 없이 도과를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종 단계의 마음은 매우 미세하므로 반드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해서

그 미세한 마음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도과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단계의 과정을 평소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는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는 마음을 새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를 다른 말로 하면 ‘알아차리는 마음을 지켜보기’라고 하거나

또는 더 줄여서 그냥 ‘앎’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뒤에 일어난 마음이 앞에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에서 처음에 있는 ‘아는 마음’이란

마음이 대상을 알아차리는 1차 행위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있는 ‘알아차리기’란 대상을 알아차리는 그 마음을

대상으로 새로 알아차리는 2차적 행위입니다.

그래서 현재 일하고 있는 마음을 새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알아차리거나,

또는 ‘지금 내 마음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수행을 하는 수행자가 일하고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고 알아차리는 통로를 통해서

마음의 영역에 들어가야 합니다.

 

마음은 비물질이라서 보이지 않고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떻게 할 줄 몰라서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이러한 문장을 통해서 마음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마음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좌선 중에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알아차렸다면

이때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을 알 수도 있으며,

망상을 하는 것을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있는 것을 알기도 할 것입니다.

때로는 졸고 있거나 통증이나 가려움과 싸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상황에서 직면해 있을 때 마음을 새로 내서

이런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아는 마음을 알아차리기’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린 뒤에 만약 수행을 하지 않고 멍청하게 있을 때는

즉시 대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대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고 있을 때는

계속해서 대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일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대상을 면밀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이익이 있으며

대상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가?’ 하고 알아차리는 것은

좌선을 할 때만 알아차리는 것이 아닙니다.

경행을 할 때나 일상생활을 할 때나 모두 적용됩니다.

그래서 항상 일하는 마음을 새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 지켜보는 마음이 일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감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일하는 마음이 망상을 하거나 다른 일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망상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내 알아차리는 마음으로 돌아 올 수 있습니다.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를 요약하면 2가지 현상을 알 수 있게 되어 도움을 줍니다.

 

첫째, 마음이 수행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를 아는 것입니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집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청한 상태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대상과 싸우고 있을 수도 있고, 수행이 하기 싫어서 짜증을 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거나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때 망상을 하고 있다면 망상을 문제 삼지 말고

단지 ‘지금 내 마음이 망상을 하고 있네.’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둘째는 마음이 대상을 겨냥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는 것입니다.

호흡을 알아차리고 있거나 아니면 느낌을 알아차리고 있거나

어떤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을 때 이렇게 알고 있는 마음을 다시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상이 명확해지고 더 견고한 알아차림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2가지 현상 중에 어느 상태가 되었거나

일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현재로 오게 하여 대상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그래서 수행을 지속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수행자는 이런 알아차림을 통해서 차츰 마음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매순간 항상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것과

새로운 마음이 일어나서 새로운 대상을 경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첫 번째 상태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새로 알아차림을 일으키게 합니다.

두 번째 상태에서는 대상을 알아차리는 일차적 현상이 있는 상태에서

다시 한 번 대상을 알아차리는 이차적 현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에 해당되는 것은 수행자는 먼저 대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 뒤에 알아차리고 있는 마음을 대상으로 다시 한 번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수행을 하는 수행자들은 일반적으로 대상을 알아차리는 마음을 모릅니다.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은 알 수 있으나 대상을 알아차리는 마음까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먼저 있는 마음 알아차리기를 하고, 일어난 마음 알아차리기를 한 뒤에,

하려는 마음 알아차리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은 마음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일하는 것을 안 다음에

일하는 그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

이것이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를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약간의 저의 수행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때 미얀마의 마하시 명상원에서 몇 년간 수행을 한 뒤에

쉐우민 명상원으로 옮겨서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쉐우민 사야도께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지도한다고 해서

몇 년을 벼르다가 어렵게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쉐우민 본원은 너무도 환경이 열악하여 외국인 수행자를 받을 수 없을 정도여서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그처럼 훌륭한 법이,

그처럼 유명하지 않은 분에게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법 앞에 열악한 환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쉐우민 사야도를 친견하고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에 대한 간단한 지도를 받았습니다.

이때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말씀하시면서 손으로 가슴을 가리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이 가슴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기 위해서

항상 마음을 가슴에 두고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경행을 할 때도 마음을 가슴에 두고 경행하는 움직임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먹을 때도 마음을 가슴에 두고 알아차리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가슴을 통해서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니

며칠 뒤부터 그만 가슴에 단단함이 생기고 숨을 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계속해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2개월을 보낸 뒤에 어느 날 점심공양을 하기 위해

비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양을 기다리는 대열은 법랍 순서로 서서 기다립니다.

이때 제 바로 앞에 서있는 비구에게 언제 환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느냐고

물으려 하다가 물으려고 하는 의도를 알아차렸습니다.

이렇게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에 제가 물으려고 하는 저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된 것입니다.

 

미얀마에서는 일시출가 제도가 있어서 일정기간 수행을 한 뒤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제 앞에선 비구나 저나 바로 일시출가자로서 비구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은 할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에 서있는 비구에게 언제 집에 돌아가느냐고

물으려 하는 마음을 알아차린 순간 제 자신이 부끄럽고 참혹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물으려고 했던 마음에는 앞에 서있는 비구가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비구가 집에 가면 제가 법랍이 높은 스님들과

한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제 뒤에도 많은 비구들이 있었지만 항상 앞에 있는 비구들만 본 것입니다.

일시 출가자가 법랍이 높은 비구들 행세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제 자신의 마음이 추악해서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한지 5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어서

제 자신에 대해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수행을 포기하고 귀국을 하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점심공양을 할 때

너무 참혹해서 음식이 입에 넘어가지를 않았습니다.

 

이튿날 면담 시간에 사야도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사야도께서는 그것은 내 마음이 아니고 그 순간의 마음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즉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자아의 덫에 걸린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스승께서 하신 이 말을 이론적으로는 저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제 자신이 직접 당하고 보니 이것을 내 마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도 바로 관념과 실재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으로는 아무리 알아도

자신의 문제에서는 실재를 적용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때 공양대열에서 제가 알아차린 것이란

바로 말을 하려고 하는 제 마음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입니다.

이렇게 2개월 만에 우연하게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순조롭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가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은 몸과 함께 있지 뇌나 심장에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몸의 어느 특정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곳이나 마음이 가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만약 마음이 손을 주시한다면 이때 마음이 손과 함께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손에 보내는 행위가 있어야 마음이 손에 갑니다.

 

수행을 한다는 사실은 대상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대상과 알아차림과 아는 마음이란

3가지가 항상 함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