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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53

通達無我法者 2010. 12. 28. 00:03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축적된 성향은 바꿀 수 없습니다.

바뀌지 않는 축적된 성향을 바꾸려하기 때문에 항상 괴로움이 따릅니다.

 

그러나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꾸지 않고 자신의 축적된 성향을 계속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적된 성향을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입니다.

바로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오랫동안 쌓여온 성향을 그대로 두고 ‘그렇네’하고

대상을 분리해서 지켜보아야 합니다.

 

바꾸려고 하는 것은 욕망이고

‘그렇네’하고 지켜보는 것은 지혜입니다.

 

이것이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할 때만이 축적된 성향이 차츰 개선될 수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위빠사나 수행자가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고

느끼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 수행의 개념이 바뀝니다.

그래서 느끼는 것을 아는 상태가 되면

이때부터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 뒤에 그냥 대상을 아는 상태로 수행을 하면

고요함에 의해 집중력이 생기고 지혜가 나서 수행이 발전합니다.

어차피 우리의 정신상태도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면

이러한 언어를 통해서 확실한 단계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을 하면서 본다, 느낀다, 안다. 로 이해하고

현재 자신이 어떻게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을 살펴보는 것도 유익합니다.

 

수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어느 단계에서 이런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그때 바로 이러한 본다, 느낀다, 안다. 라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수행자가 대상을 알아차릴 때

반드시 감각기관에 두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 감각대상에 마음을 두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가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수행자의 마음을 안에 두어야 할 때가 있고,

밖에 두어야 할 때가 있고, 안팎에 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합니다.

 

혼자서 수행을 할 때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상을 알아차릴 때는

즉 일을 하면서 알아차릴 때는 마음을 두는 위치가 상황에 맞게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안에 둘 때도 있고, 밖에 둘 때도 있고, 안팎에 둘 때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수행자가 좌선이나 경행을 하면서 대상을 알아차릴 때는

대상을 감각기관에서 알아차리는 것이 우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감각대상에 마음이 가면 알아차림을 놓치게 됩니다.

 

마음이 감각대상에 머물면

대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대상을 감각기관에서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감각기관에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초기에는 단체로 모여서 지도를 받는 것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익히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마음이 여기저기로 쫓아다니면서 알아차리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이 마음에 와서 부딪쳐서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마음이 들뜨거나 분주하지 않아서

고요하게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고요한 마음가짐에서 대상의 성품을 보는 지혜가 납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대상을 관념으로 알아차리지 않고

온전한 실재를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요함이 있는 만큼 노력이 함께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요함이 지나쳐 졸음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고요할 때는 그만한 노력을 해서 알아차림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미세한 대상이 나타날 때는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상태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상태에서는 고요하기 때문에 집중의 힘이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노력과 알아차리는 힘이 차츰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중의 힘이 커지면 졸음에 빠져버립니다.

그래서 이때는 집중으로 인해서 희미해진 마음을 알아차려서

알아차림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수행자가 수행을 시작할 때는 누구나 거친 대상을 알아차립니다.

가령 통증이 나타났다거나 망상이 나타났다거나

가려움이나 졸음이 나타난 것도 모두 강하고 거친 대상입니다.

 

수행초기에는 모든 힘이 약하기 때문에

강한 것을 대상으로 해서 알아차리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수행이 발전하고 알아차리는 힘이 강해졌을 때는

오히려 미세한 것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강한 대상과 미세한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수행을 지도하는 스승들이 조언해주기도 합니다.

 

지금부터는 오히려 미세한 대상을 알아차리려고 할 때는

집중력을 더 배가시키기 위한 시기입니다.

이때 미세한 대상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다른 때보다도

노력과 알아차리는 힘을 더욱 키워야 합니다.

 

수행자는 언젠가 반드시 이 관문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미세한 것을 대상으로 할 때는 거친 것을 대상으로 할 때보다도

더 고요하고, 부드럽고, 분명하게 알아차림을 겨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때는 대상의 변화를 주목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상의 변화란 매순간 다른 것을 아는 것으로 이것이 무상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도 반드시 거친 대상만을 선택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알아차리는 힘이 약할 때는 거친 대상을 선택하고,

알아차리는 힘이 강할 때는 자신이 스스로 미세한 대상을 선택해서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의 발전을 가져옵니다.

 

이때 미세한 것을 알아차리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미세한 것을 대상으로 할 때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알아차리는가?’하고 살펴봐야 합니다.

미세한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더욱 노력과 알아차림이 집중되기 때문에

이런 상태의 노력이 수행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수행자가 일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그 순간 일하는 마음은 정지가 되고,

일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새로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 순간에 전에 있던 대상을 알아차리는 마음은 끊어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대상을 아는 마음만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 일어난 마음이 있는 마음을 지켜봅니다.

그러나 이것도 짧은 순간에 사라지고 오직 현재를 아는 마음만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마음이 오직 한순간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가령 망상을 했을 때 망상한 것을 알아차리면 그 순간에 망상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망상을 알아차린 새로운 마음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하는 말로 ‘보면 사라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망상이 완전하게 소멸한 것이 아닙니다.

망상하는 마음이 기억 속에 종자로 저장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완전하게 소멸된 것이 아닙니다.

이때 알아차림이 약해지면 사라진 망상이 다시 일어나거나

아니면 또 다른 망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망상한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망상한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망상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다시 나타나지 않게 하는 길은

오직 새로운 대상을 계속해서 알아차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한순간에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마음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혜로 작용합니다.

마음이 한순간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무상을 알 수가 있으며

이 무상을 통해서 무아를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항상 같은 마음이라면 결코 이런 지혜가 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차려서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마음은 한순간에 하나밖에 없다고 알고, 이것을 통해서 무상을 알고,

다시 무아를 아는 지혜가 납니다.

 

마음이 한순간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은

수행자여러분이 높은 지혜가 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상황에 따라서 매순간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방금 좋았다가도 불쾌한 일이 생기면 방금 싫어집니다.

방금 싫었다가도 이익이 있을 때는 방금 좋아집니다.

 

이때 전에 있던 마음과 다음에 생긴 마음은 분명히 다른 마음입니다.

이처럼 마음은 조건에 의해서 빠르게 변합니다.

그리고 이 마음 중에서 과연 어느 마음이 나의 마음입니까?

현재를 아는 마음이 나의 마음이라고 해도

현재는 현재라고 하는 순간에 이미 과거가 되고 미래를 향해서 갑니다.

이렇게 빠른 시간의 흐름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알기 위해서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현재를 아는 마음일 때는 현재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전면의 마음자리에서 마음을 알아차릴 때 반드시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자는 현재 여기에 있는 대상이라면 무엇이나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 말은 6가지 감각기관에 부딪치는 모든 대상이 다 알아차릴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리가 들린다면 소리도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냄새가 난다면 냄새도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만약 현재 고요함이 있다면 고요함도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현재를 지켜보는 것이 마음이라고 알 때는 마음도 알아차릴 대상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언제나 여러 가지 대상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마음도 알아차리고 몸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때의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추론적인 대상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추론적 위빠사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마음은 몸을 토대로 하여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실재하지 않는 것에 근거한 추론이 아니고

오직 실재하는 것에 근거한 추론에 속합니다.

 

마음은 몸과 함께 있으면서

몸이 가지고 있는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몸은 육체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마음은 정신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가 산다는 것은 이 2가지의 결합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는 것은 이 2가지가 어떻게 결합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전면에서 마음으로 알아차리더라도

몸의 영역에 관한 것이나 마음의 영역에 관한 것이나

모두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어떤 대상이 나타났을 때 이것은 몸의 영역에 관한 것이라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음의 영역에 관한 것이라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2가지의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성숙합니다.

 

만약 고요함과 함께 시간이 흐르는 것이 느껴지면

시간이 흐르는 것도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그리고 현재 여기에 있는 몸이 나타나면 이때는 몸이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자가 대상을 알아차릴 수가 없다고 괴로워할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몸에 있는 호흡만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수행자는 어떤 대상을 알아차려야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몸에서 알아차릴 것이 없을 때는

알아차릴 것이 없어서 방황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이것이 아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 대상과 저 대상 중에서 어떤 대상을 알아차릴까 선택의 고민을 할 때는

이것 자체가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알아차려야 할지 망설이고 있네’ 하고

이 사실 자체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몸과 마음에 관한 모든 것이 대상입니다.

감각기관에 접수되는 모든 것이 대상이 될 때

수행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져 싫증을 내지 않고 자유롭게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행을 할 수 있을 때 사념처 수행을 균형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가 호흡을 알아차릴 때는 호흡과, 알아차림과, 아는 마음

3가지가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은 늘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대상과 대상을 연결해주는 가교역할을 하는 알아차림이 부족하면

마음이 대상에 머물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버립니다.

그래서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대개는 과거나 미래로 가서 불필요한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이때 대상을 아는 그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면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는 빈도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생긴 마음이 일하는 마음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의 이익입니다.

계속해서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