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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62

通達無我法者 2010. 12. 28. 01:08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고정관념입니다.

관념은 두꺼운 호두껍데기 같은 것으로 외부와의 소통을 막습니다.

소통이 없으면 일방적이기 때문에 독단에 빠집니다.

 

관념은 대상의 실재를 보지 않고 이미 저장된 선입관에 의해서 결론을 내립니다.

이런 결론의 피해자는 자신입니다.

 

문제는 이런 그런 정보가 자신의 탐진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국가, 종교, 인종, 혈연, 가족, 직위, 학벌, 빈부, 미추, 모양 등의

관념을 가지고 대상을 보면 대상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고 관념이 세상을 삽니다.

지금 수행자 여러분들은 어떤 세상을 살고 계십니까?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상을 사십니까?

아니면 실재하는 진실한 세상을 사십니까?

 

수행자 여러분!

계속해서 오취온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온은 함께 일어나서 함께 사라지기 때문에

이것을 구생법(俱生法)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몸과 마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에 대해서 놀라서는 안 됩니다.

수행을 하면 차츰 고요해지고 집중력이 커져서 아는 힘이 생깁니다.

그러면 전에는 몰랐던 몸과 마음에 있는 현상을 새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에 없던 것이 나타난 것이 아니고

항상 있던 것을 새로 알아차리는 것뿐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자는 오온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일어난 즉시 알아차려야 합니다.

만약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아차리면 실재하는 현재를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서

생각으로 아는 것입니다.

 

뿐더러 일어난 즉시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순간에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 대상을 봅니다.

또한 나타나는 대상을 빠르게 좋다거나 싫다는 반응을 해 버립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넷, 오온을 논장에서는 근본법(根本法)으로 분류합니다.

근본법을 빨리어로는 빠라마타 담마(paramatha dhamma)라고 합니다.

이는 궁극적 진리, 최승의법(最勝義法) 절대적 실재 등등으로 부릅니다.

 

근본법은 4가지가 있는데 마음, 마음의 작용, 몸, 열반입니다.

그러므로 오온과 열반을 합쳐서 근본법이라고 말합니다.

 

근본법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가장 진실한 실재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 길을 통하여 해탈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실 정신세계에서는 모든 사물의 기본이 자신의 오온입니다.

그러므로 실재하는 오온을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자의 기본임무입니다.

근본법은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이기 때문에 최고의 법입니다.

아무리 좋은 대상이 있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는 오온이라는 실재가 없으면

무가치한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최고의 진리라고 하면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것 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최고의 진리는 정신과 물질이며

정신과 물질을 소멸시키는 열반이 최고의 진리인 것입니다.

 

근본법의 처음 3가지인 마음, 마음의 작용, 몸은

오온으로 이것을 유위법(有爲法)이라고 합니다.

이 유위법은 알맞은 조건이 성숙되면 새로운 원인이 일어나서 사라지는 결과가 생깁니다.

그래서 항상 번뇌와 함께 있습니다.

이것이 윤회하는 세계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붓다, 벽지불, 아라한을 제외한 모든 생명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네 번째는 열반입니다.

열반은 원인과 결과가 사라진 무위법입니다.

무위법은 원인과 결과가 사라졌기 때문에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위법에서는 선심과 불선심을 함께 가지고 있지만

무위법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끊어진 단지 마음만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의 마음을 무인작용심(無因作用心)이라고 합니다.

이 마음이 부처님과 아라한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사실은

오온을 알아차려서 원인과 결과가 끊어진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괴로움이 끊어진 지고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항상 자신의 오온을 알아차리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오온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며

궁극적 진리를 얻기 위해서 누구나 반드시 가야하는 길입니다.

 

다섯, 오온이 가지고 있는 법은 무상, 고, 무아입니다.

정신과 물질이 가지고 있는 가장 일반적 특성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입니다.

그래서 오온은 항상 일어나서 사라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과 물질의 본성은 매순간 계속해서 변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진동하지 않는 것이 없듯이 자신의 몸과 마음은 항상

끊임없이 진동하면서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변한다는 것’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불변하는 그런 것은 이 세상의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는 것은 없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 없으며 그래서 영혼이 없습니다.

단지 변하는 정신과 물질만 있습니다.

 

정신과 물질이 바뀐다는 것은 있던 것이 없어지고 없던 것이 새로 생기는 것입니다.

아프지 않다가 아프고, 아프다가 아프지 않은 것도 변하는 것입니다.

몸이 뜨겁다가 차가와지고, 차갑다가 뜨거워집니다.

좋아하다가 싫어지고, 싫어하다가 좋아하는 것도 변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항상 하지 않은 것에 불만족을 갖습니다.

없어서 괴롭고, 있으면 없어질 까봐 괴롭고, 더 얻지 못해서 괴롭습니다.

이것을 괴로움이라고 합니다.

이 괴로움을 불만족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느낌으로 사는데 이 느낌은 매순간 변하면서 항상 더 좋고,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누구나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무명과 갈애의 지배를 받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온을 가진 자체가 불만족인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몸과 마음은 조건에 의해서 변하는 몸과 마음이므로

이것을 소유하거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아는 없습니다.

몸은 있습니다.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나의 마음이 아니라서 무아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이 나이고 내가 몸과 마음을 소유할 수 있다면

적어도 자신의 몸과 마음에 관해서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고 싶은 뜻은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몸과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몸과 마음이 자신의 소유이고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죽기 전에 호흡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숨을 쉬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누구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아인 것입니다.

 

여섯, 오온이 무더기로 모여 있는 것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오온은 색온이라고 하는 몸의 무더기,

수온이라고 하는 느낌의 무더기,

상온이라고 하는 인식의 무더기,

행온이라고 하는 마음의 형성의 무더기,

식온이라고 하는 아는 마음의 무더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 각각의 무더기가 다시 하나의 무더기로 모여서 오온을 이룹니다.

 

이들 5가지 무더기는 정신 현상의 무더기와 물질 현상의 무더기입니다.

그리고 이들 무더기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제(時制)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오온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행됩니다.

그래서 항상 과거, 현재, 미래라는 조건하에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또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외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대상을 아는 감각기관과 대상을 알도록 하는 감각대상의 부딪침이라는

무더기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며,

또는 조건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모든 것들이 이와 같은 과정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지

오온을 주도하는 어떤 존재도 없습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궁극에는 자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아가 없다고 알 때만이 오온을 집착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오온을 집착하는 이유가 이것이 나의 오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온을 분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색온(色蘊)은 몸의 무더기입니다.

모든 생명의 신체는 여러 가지 부분들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몸은 관념으로서의 몸과 실재로서의 몸이 있습니다.

관념으로서의 몸은 몸을 구성하는 32가지의 부분들이 있습니다.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과 발톱, 이빨, 살, 힘줄, 뼈 등등 32가지로 나눕니다.

 

물론 이 32가지는 부처님께서 부정관을 하시기 위해서 말씀하신 내용이라서

완전하게 몸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건 이것은 몸을 만드는 부분들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실재로서의 몸은 지, 수, 화, 풍이라는 4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이것이 몸을 인식할 수 있는 실재입니다.

몸에는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나타내는 땅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물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뜨거움과 차가움의 불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동하는 바람의 요소가 있습니다.

이들 요소들의 결합으로 몸을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 4가지의 요소 외에 여러 가지의 파생된 물질이 24가지가 있습니다.

 

이렇듯 몸을 구성하는 부분도 다양하며 몸을 인식하는 요소도 다양합니다.

이들 몸의 요소는 항상 변하며, 이것들은 불만족이고, 여기에 자아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몸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단지 색온이 일어난 것입니다.

 

몸은 단지 부르기 위한 명칭이지 이것이 나의 몸은 아닙니다.

존재하고 있는 자신의 몸은 있습니다.

그래서 유신(有身)은 있으나 이 몸이 나의 몸이라고 할 때는 유신견인데

이러한 유신견(有身見)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신견을 잘못된 견해라고 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면 자아가 강해서 이기심이 생깁니다.

그리고 자신이 최고라는 우월감을 갖기 마련이라서 법을 성품을 보지 못하고

오온을 집착하게 됩니다.

 

무명 중에서 가장 나쁜 무명이 내 몸과 마음이라고 하는 유신견입니다.

살인을 해도 법을 알아차리면 도과를 성취하여 열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유신견을 가지면 내가 본다는 견해를 가지고 보기 때문에

영원히 법의 성품을 볼 수가 없어 도과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 여러분은 자아가 있다고 하는 어떤 견해에 대해서도 동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유신견이기 때문입니다.

 

수온(受蘊)은 느낌의 무더기입니다.

누구나 6가지 감각기관을 가지고 6가지 대상과 부딪칠 때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대상을 안다는 것은 대상을 느끼는 것입니다.

느낌은 마음의 작용이고, 아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과 마음의 작용은 항상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아는 마음이 있을 때는 느낌도 함께 있습니다.

 

느낌의 종류는 매우 많습니다.

아는 마음이 다양한 만큼 느낌의 종류도 똑같습니다.

느낌을 크게 나누면 맨 느낌, 육체적 느낌, 정신적 느낌으로 분류합니다.

맨 느낌은 6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느낌이 일어나면 좋다거나 싫다고 반응하지 않은

순수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느낌과 정신적인 느낌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덤덤한 느낌으로 나눕니다.

 

사실 108번뇌는 108가지의 느낌에 속합니다.

행복과 불행도 느낌이고, 슬픔과 비탄도 느낌입니다.

이 느낌의 본성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상합니다.

그리고 느낌은 변하기 때문에 괴로움입니다.

그리고 이 느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서 사라지기 때문에 무아입니다.

 

느낌은 감각기관이 느끼는 것이지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행복과 불행도 나의 행복과 불행이 아닙니다.

단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순간적인 느낌입니다.

그래서 나의 느낌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단지 수온(受蘊)이 일어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