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151

(제2장)11. 마음을 방비하여 허물을 떠나다〔防心離過〕

송(宋)나라 변경(汴京)땅 선본(善本: 1035~1109)스님은 동씨(董氏)로 한(漢)나라 중서(仲舒)의 자손이다. 여러 분야의 학문에 박식 통달하였으며, 원조 종본(圓照宗本)스님에게 출가하였다. 철종(哲宗) 때 법운사(法雲寺)에 머물렀으며 대통(大通)이라는 법호를 하사받았다. 평소 몸가짐은 앞만을 직..

(제2장)10. 조서(詔書)에 항거하며 굴복하지 않다〔抗章不屈〕

당(唐)나라 지실(智實)스님이 낙양 근처에 살 때였다. 태종이 낙양에 행차하여 도사(道士)들이 승려들의 앞에 자리하도록 조서를 내렸다. 서울과 시골의 사문(沙門)들이 항의하였으나 당국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실스님은 황제가 탄 가마를 따라가며 표문(表文)을 아뢰고 그 잘못된 점을 끝까지 주..

(제2장) 9. 문을 닫고 자식을 거절하다〔闔門拒子〕

당(唐)나라 종간(從諫)스님은 남양(南陽) 사람으로 어른이 되어 출가하여 오묘한 도리를 담박에〔頓〕깨쳤다. 회창법란(會昌法亂: 841~846) 때 황보씨(皇甫氏)의 별업사(別業寺)에 잠시 은거하였다가 대중 초년(大中初年:847)에 불교가 원상으로 복구되자, 이 때 옛날 살던 낙읍(洛邑)으로 돌아갔다. 한번..

(제2장) 8. 선서(仙書)를 받지 않다〔不受仙書〕

당(唐)나라 법상(法常)스님은 양양(襄陽) 사람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영민하며, 납의(衲衣)와 바랑과 발우만으로 살았으며, 아침공양만을 하였다. 정원(貞元) 연간에 천태산에서 매산(梅山)으로 갔는데, 매산은 매복(梅福)이 옛날에 은거했던 곳으로, 스님은 그곳에 거처를 잡았다. 하루는 꿈에 신인(神..

(제2장) 7. 무례한 비구니를 쫓아내다〔擯黜豪尼〕

당(唐)나라 혜만(慧滿)스님은 옹주(雍州) 사람으로 7세에 출가하였다. 뒤에 나라의 명으로 홍제사(弘濟寺)에 머물렀는데, 그 때 증과사(證果寺) 비구니 하나가 대궐에 드나들면서 비구 절을 빼앗아 자기 암자로 만들어버렸다. 혜만스님은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그 비구니를 쫓아내었다. 그러자 비구니..

(제2장) 6. 법당을 힘써 호위하다〔力衛殿堂〕

당(唐)나라 혜주(惠主)스님은 시주(始州) 영귀현(永歸縣) 사람으로 오로지 율학(律學)에 정진하며 청림사(靑林寺)에서 살았다. 그 때 능양공(陵陽公)이 익주에 부임하였는데 처음부터 신심이 적었다. 100여 마리의 짐 실은 말을 끌로 절로 들어와서 불전.강당. 승방에 매어 두었으나 감히 말리는 사람이 ..

(제2장) 5. 여자와 대면하지 않다〔不面女人〕

당(唐)나라 도림(道琳)스님은 동주(同州) 합양(郃陽) 사람이었다. 35세에 출가하여 태백산 깊은 바위굴로 들어가 살았다. 그 후 나라의 명으로 대흥국사(大興國寺)에 머물렀으나 잠시 있다가 양산(梁山) 남쪽으로 도망가버렸다. 평생토록 검소한 생활을 본분으로 삼았으며 여자는 마음을 더럽히는..

(제2장) 4. 술그릇을 깨뜨리다〔破壞酒器〕

당(唐)나라 현감(玄鑑)스님은 택주(澤州) 고평현(高平縣) 사람이다. 성품이 온후하고 강직하여 잘못된 일을 보면 반드시 면전에서 잘못이라 지적하며 어떠한 압력에도 피하지 아니하였다. 절을 수리하고 짓는 일이 자주 있어 기술자들이 많았으므로, 혹 그들에게 술을 보내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 때마..

(제2장) 3. 시자를 엄중하게 훈계하다〔嚴訓侍者〕

당(唐)나라 지정(智正: 559~639)스님은 정주(定州) 안희현(安喜縣) 사람이다. 개황(開皇) 10년에 칙명을 받들어 승광산(勝光山) 인수사(仁壽寺)에 머물렀었다. 다시 종남산(終南山) 지장사(至相寺)로 들어가 연법사(淵法師)와 도반이 되어 28년간을 일체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스님에게는 지현(智現)이..

(제2장) 2. 어려서부터 실없이 노는 일을 끊다〔幼絶戱掉〕

당(唐)나라 현장(玄奘: 602~664)스님의 성은 진씨(陳氏)로 한(漢)나라 태구공(太丘公)의 후손이며, 형 진소(陳素)를 따라 출가하였다. 나이 11살에 「유마경(維摩經)」,「법화경(法華經)」을 외웠으며, 탁월하게 굳세고 방정하여 당시 무리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사미(沙彌)들이 심한 말로 떠들며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