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제7장 화엄종사상] 2. 법계삼관 - (3) 주변함용관

通達無我法者 2007. 4. 30. 11:32

제7장 화엄종사상 - 2. 법계삼관 - (3) 주변함용관



셋째는 주변함용관이다. 주변함용은 곧 사사무애이니 고덕을 의지하여 십현문을 드러냄이다. 이 십현문이 다 같이 연기하여 무애원융하여서 그 문 하나에 모든 것을 다 구비한다.

第三周徧含容觀이라 周徧含容은 卽事事無碍니 且依古德하여 顯十玄門이라 此之十門이 同一緣起하여 無碍圓融하여 隨其一門에 卽具一切하니라. [華嚴經疏;大正藏 35, p. 515上]


주변함용관에서 ‘주변(周徧)’은 두루 퍼진다는 뜻이니 ‘천상의 달 하나가 모든 물에 다 비치는 것[一月普現一切水]’을 말합니다.

‘함용(含容)’이란 그 반대로 ‘일체의 물에 비친 달이 천상의 한 달에 포섭되어 있다[一切水月一月攝]’는 뜻입니다. 따라서 주변함용은 일월보현일체수하고 일체수월일월섭으로 일즉일체(一卽一切)이고 일체즉일(一切卽一)인 사사무애를 말하는 것이며, 주변함용관은 일즉일체이고 일체즉일인 사사무애의 근본 법계를 바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가 일체가 되고 일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진공묘유의 체와 용을 따라서 상즉상입이 성립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상즉상입이란 진공묘유의 근본 작용인만큼 일체가 상즉상입하면 사사무애의 도리가 자연히 성립합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자의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법계(法界)의 본체가 원래 이러한 까닭입니다. 부처님도 원시경전에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대법계연기(大法界緣起), 상주법계(常住法界)라는 것은 부처님이나 중생이 만든 것이 아니라 본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부처님이 바로 깨쳐서 중생들에게 소개하였을 뿐입니다.


법계관이라 하니 마음으로 무엇을 만들어 접합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된 오해입니다. 만법 자체를 바로 보면 그 실체에 있어 전체가 쌍차쌍조하고 원융무애해서 중도라고 표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중도라는 것도 만법 자체의 근본을 지칭할 뿐이지 불교에서 중도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중도를 깨쳤다는 것도 만법 자체의 근본 원리인 중도를 깨쳤다는 것이지 부처님이 중도를 만들어 만법의 자체에다 적용시킨 것이 아닙니다.


‘고덕을 의지하여 십현문을 드러내니’에서 ‘고덕(古德)’은 현수스님을 말하는데, 현수스님은 지엄스님의 십현문을 조금 수정하여 탐현기나 오교장에서 십현문을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지엄스님의 십현문을 계승한 현수스님의 십현문을 ‘고십현(古十玄)’(五敎章說)이라 하고, 이를 수정한 현수스님의 십현문을 ‘신십현(新十玄)’(探玄記說)이라 합니다. 여기서는 현수스님의 신십현문을 말합니다.

‘이 십현문이 다 같이 연기하여 무애원융하여서 그 문 하나에 모든 것을 다 구비한다’는 뜻은 십현문을 열어 놓으니 각각 문이 열 개인 줄 알면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에 있어 상즉상입하므로 이문 저문이 서로서로 다르다고 볼 수 없으며, 일즉일체이고 일체즉일이기 때문에 한 문에 열 개의 문이 다 구비되어 있고, 열 개의 문 이대로가 다 한 문입니다. 중생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열 가지로 나누어 놓은 것이지 딴 문이 있는 줄 알면 안 됩니다. 한 문에 일체문이 다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곧 사사무애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동시구족상응문이니 이것은 총론이므로 구문(九門)의 처음에 두는 것이다.

둘째는 광협자재무애문이니 따로 말할 때에 먼저 이것을 말한 것은 이 별문의 유래가 위의 이사무애 가운데 이와 사가 서로 두루 있으므로 아래의 여러 문이 생한다. 또 사(事)라는 것은 이(理)와 같이 두루 있으므로 넓은 것이요, 사상(事相)이 무너지지 않으므로 좁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사무애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셋째는 넓음[廣]과 좁음[狹]이 걸림이 없으므로 두루 있는 바가 많아서 자신이 많은 것을 바라봄으로 일다상용부동문이 있으니, 서로 용납한 즉 두 체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요, 다만 작용이 통할 뿐이다.

넷째는 이것이 저것을 용납하므로 저것이 곧 이것이며 작용이 통할 이것이 곧 저것이므로 제법상즉자재문이 있다.

다섯째는 상호간에 서로 포섭하므로 서로 숨고 나타남이 있다. 다른 것을 포섭함에 다른 것을 가히 볼 수 있으므로 상입문이 있고, 다른 것을 포섭함에 다른 것의 체가 없으므로 상즉문이 있다고 한다. 다른 것을 포섭함에 다른 것이 비록 있지만 가히 볼 수 없으므로 비밀은현구성문이 있으니 문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 문이 모두 서로 포섭하는 것이므로 상입(相入)한즉 거울이 서로 비추는 것과 같고, 상즉(相卽)한즉 물과 파도가 서로 거두는 것과 같고, 은현(隱顯)한즉 조각달이 서로 비추는 것과 같다.

여섯째는 이것이 저것을 포섭하는 것이므로 일체를 포섭하며 저것이 포섭함도 또한 그러하므로 미세상용안립문이 있느니라.

일곱째는 서로 포섭함이 중중무진하므로 제망무진문이 있느니라(인다라망경계문).

여덟째는 이미 제석천궁의 보배구슬 그물과 같으므로 하나를 따라 곧 일체가 무진하므로 탁사현법(생해)문이 있느니라.

아홉째는 위의 여덟 가지 문이 모두 근거가 되므로 의지하는 법이 이미 원융하여 다음의 능히 의지하는 때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이것이 십세격법이성문이다).

열째는 일체만법이 다 그러하므로 그 하나를 드는 즉 주체[主] 되는 것을 따라 연대하면서 연기하니 문득 주체와 조건[伴]이 있느니라(이것이 주반원명구덕문이다).

一은 同時具足相應門이니 以是總故로 冠於九門之初라 二는 廣狹(自在無碍)門이니 別中에 先辨此者는 是別門之由가 由上理事無碍中하여 理事相扁故로 生下諸門하니라 且約事如理扁故로 廣이요 不壞事相故로 狹이니 故로 爲事事無碍之始라 三은 由廣狹無碍하여 所扁이 有多하여 以己望多故로 有一多相容(不同門)하니 相容卽二體俱存이요 但力用이 交徹이라 四는 由此容彼하여 彼便卽此요 由此便彼하여 此便卽彼故有(諸法)相卽(自在)門이라 五는 由互相攝則互相隱現하니 謂攝他에 他可見故로 有相入門하고 攝他에 他無体故로 有相卽門이라 攝他에 他離存而不可見故로 有(秘密)隱現(俱成)門하니 以爲門別故라 故로 此三門이 皆由相攝而有相入則如鏡이 互照요 相卽則如水波相收오 隱現則如片月이 相暎이라 六은 由此攝他하여 一切齊攝하며 彼攝亦然故로 有微細相容(安立)門이라 七은 由互攝重重故로 有帝網無盡(因陀羅網境界)門이라 八은 由旣如所網일새 隨一卽一切無盡故로 有託事顯法(生解)門이라 九는 由上八이 皆是所以니 所依之法이 旣融일새 次辨能依之時도 亦爾니라(十世隔法異成門) 十은 由法法이 皆然하여 隨掌其一則爲主連帶緣起하니 便有主伴(主伴圓明俱德門)이니라. [華嚴疏;大正藏 36, p. 75下]


첫째의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은 동시에 모든 것, 일체가 다 구족하다는 말입니다. 우주 삼라만상의 법계는 공간적으로 무변(無變)하고 시간적으로 무한하며, 이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현상은 천차만별이지만 모든 것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서로 의존하여 성립되어 있는 동시에 서로 상응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가 일체에 상즉하고 일체가 하나에 상즉하여 교의(敎義), 이사(理事), 해행(解行) 등 일체법을 열 가지로 분류한 십의(十義)가 동시에 상응하여 연기를 이루는 것입니다. 동시구족상응문은 십현문 가운데 다른 구문(九門)의 모든 것을 구족하여 자재롭게 상즉하는 총론인 까닭에 구문의 처음에 두는 것입니다.


둘째는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으로 앞에서 동시구족상응문을 먼저 설한 이유는 그것이 전체를 한 덩어리로 말하기 때문이고, 개별적으로 말할 때 이 광협자재무애문을 먼저 말하는 것은 이 별문(別門)의 근본이 이사무애 가운데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理)와 사(事)가 서로 상즉상입하므로 열 가지 문이 다 성립되는 것인데, 사를 이면에서 볼 때는 막힘 없이 시방세계에 두루하므로 광(廣)이라 하고, 사면에서 볼 때는 흰 것은 희고 붉은 것은 붉으며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사상(事相)이 무너지지 않으므로 협(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광과 협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광이 즉 협이고 협이 즉 광으로서 원융무애하게 되어 사사무애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으로 하나[一]와 많음[多]이 상용한다는 말은 곧 일다가 상입한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광과 협이 무애(無碍)하고 색과 공이 자재해서 용(用)면으로 볼 때는 하나가 일체에 들어가고 일체가 하나에 들어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일과 다가 상용하지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 이것은 상용하면서 부동하고 부동하면서 상용하므로 이런 까닭에 일다상용부동문이라 하는 것입니다.본문에 ‘자신이 많은 것을 바라봄으로’에서 자신[己]은 작은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라 보아도 좋고 개체로 보아도 좋으며, 많음[多]은 일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전체를 말합니다. 상용(相容)은 상입(相入)으로 거울빛에 비유하면 거울빛이 서로 비칠 때 서로 의지하는 것으로서, 거울빛은 서로 의지해 걸림이 없어 중중무진하지만 다만 빛의 작용 즉 역용(力用)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서로 용납한즉 두 체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요 단지 작용이 통할 뿐이다’ 한 것입니다.


넷째는 이 거울이 저 거울을 받아들이고 저 거울이 이 거울을 받아들임으로써 이것이 저것이 되고 저것이 이것이 되어 일즉일체 일체즉일로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이 성립됩니다. 앞의 일다상용부동문에서는 용(用)면에서 거울빛을 비유하여 역용교철(力用交徹)로써 상입을 말하고, 여기서는 체(體)면에서 상즉을 말한 것입니다. 물과 파도의 관계로 비유하면 물과 파도가 상즉하면 호상형탈(互相逈脫)로써 이 물결과 저 물결이 서로서로 부수면서 합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모든 법상도 상즉하여 무애자재한 것을 제법상즉자재문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다섯째는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現俱成門)으로 서로 받아들이면 즉 상입상즉하면 서로 은현(隱現)이 있게 됩니다. 은현이란 한쪽이 드러나면 한쪽이 숨어 버리고 다른 한쪽이 숨어 버리면 다른 한쪽이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것을 포섭하여 그것을 볼 수 있으므로 거울빛이 서로 의지하는 것과 같아 상입문(相入門)이 있고, 다른 것을 포섭함에 그것의 체가 없어지므로 물과 파도가 서로 상즉하는 것 같아 상즉문(相卽門)이 있게 됩니다. 즉 다른 것을 포섭함에 다른 것이 비록 존재하지만 가히 볼 수 없으므로 비밀은현구성문이라 합니다. 여기서 ‘함께 성립한다[俱成]’란 표현은 숨는 것[隱]만 있고 나타나는 것[顯]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숨는 것이 즉 나타나는 것이고 나타나는 것이 즉 숨는 것으로서 비밀히 숨고 나타나는 것[隱現]을 같이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는 문이 각각 다르기 때문인데 상입문, 상즉문, 은현문이 서로 상입한즉 거울이 서로 비치는 것과 같고, 상즉한즉 물과 파도가 서로 거두는 것과 같고, 은현한즉 조각달이 서로 비추는 것과 같이 조각달 이대로가 은현을 구비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조각달을 볼 때, 보이는 부분은 현(現)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은(隱)으로서 조각달 이대로가 은현 동시를 구비한 것을 은현비밀구성문이라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으로 이쪽이 저쪽을 다 포섭하는 것이므로 일체를 이쪽이 모두 포섭하며 저쪽이 이쪽을 포섭함도 역시 똑같다는 의미를 말합니다. 일체(一切)가 일(一)이 되든지 일이 일체가 되든지 같은 것이 미세상용안립문인데, 진진찰찰이 서로 완전히 그대로 있으면서 상즉상입하여 원융자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일곱째는 제망무진문(帝網無盡門) 또는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으로, 상즉상입하고 은현자재하여 광협이 무애한 것입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제석궁에 있는 인다라망 보배그물의 구슬 하나에 일체가 비치고 일체가 하나에 비쳐서 중중무진하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제망(帝網)이란 인다라망(因陀羅網)을 뜻하는데, 인다라(Indra)란 천주(天主) 또는 천제(天帝)라고 번역합니다. 인다라망이란 보배구슬을 달아 그물을 짜서 제석궁을 둘러쳐 놓은 망을 말합니다. 이 인다라망에는 수많은 구슬이 달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가 서로 비추고 비치어서 일체가 상즉상입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일체만법이 상즉상입함을 인다라망에 비유하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석궁에 그런 구슬이 있는가 없는가는 우리가 알 바 아니고 비유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덟째는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으로 앞에서 해설한 인다라망과 같이 하나를 따라서 일체가 무진한 까닭으로 하나를 따라 전체가 드러남을 말한 것입니다. 사사(事事) 즉 티끌 하나, 구슬 하나, 흙덩이 하나, 똥덩이 하나, 할 것 없이 그 하나하나에 일체의 법이 다 구비되어 나타나서 사사무애가 성립되니 일색일향(一色一香)이 무비중도(無非中道)라는 말과 같습니다.


아홉째는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입니다. 위에서 말한 여덟 가지는 모든 것이 융통무애하여 상즉상입함을 공간적인 면에서 말한 것이고, 여기서는 시간적인 면에서 말한 것입니다. 즉 십세가 따로 있지만 서로 원융무애하고, 원융무애하지만 따로 성립이 된다는 것입니다. 십세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다시 각각 삼세(三世)가 있다 하여 구세(九世)가 되는데, 이 구세는 다 한 생각에 섭수해 있기 때문에 구세에 이를 더하여 십세라고 합니다. 일념이 무량원겁이고 무량원겁이 일념이다. 이것을 표현하여 십세격법이성문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열째는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俱德門)입니다. 일체만법은 홀로 일어날 수 없어서 반드시 서로 의지하여 연기하게 되는데, 이것을 상의상관법(相依相關法)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일체제법은 서로 주체[主]가 되고 조건[伴]이 되어 존재하는데, 주와 반이 서로 찾아볼 수 없는 동시에 주와 반이 서로 원명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부처와 부처가 서로 보지 못하지만 또한 부처와 부처가 서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체만법이 서로 주(主)가 되고 반(伴)이 되면서 하나에 일체가 다 따라나오는 이것을 주반원명구덕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반원명구덕문이라 하면 앞의 아홉 문이 다 포함되어 있고, 중간의 어떤 문이라 하면 전후좌우가 다 포함되어 있어 서로 원융무애하여 한 가지도 독립적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중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열 가지 문으로 나누는 것이지 실제로 내용은 한 가지입니다. 한 문 이대로가 십문이고 십문 이대로가 한 문으로서 상즉상입하여 무애자재하게 되어 중중무진한 화엄대법계연기의 사사무애가 성립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화엄십현문에 상대되는 교리로 육상원융(六相圓融)이 있는데, 화엄십현도 이 육상을 가지고 배대하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육상(六相)은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을 말합니다. 총(總)이란 전체적인 것이고 별(別)이란 개별적인 것이며, 동(同)이란 같다는 말이고 이(異)란 다르다는 말이며, 성(成)이란 이룬다는 것이고 괴(壞)란 부순다는 것입니다. 이 총, 별, 동, 이, 성, 괴가 상대가 되면서 동시에 총(總)이 별(別)이고, 동(同)이 이(異)고, 성(成)이 괴(壞)로서 원융무애하며 서로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집을 비유로 들어 보면 집을 전체[總]로 볼 때 기둥과 문, 방 등은 별개[別]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집을 제외하고 기둥과 문, 방 등이 따로 있을 수가 없으며, 또한 반대로 기둥과 문, 방 등을 따로 제외하고 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총(總)이 즉 별(別)이고 별이 즉 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집 전체를 볼 때는 집 하나로서 같지만 집을 이룸에 있어 기둥, 방, 문 등이 전부 다르므로 별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이라고 부를 때에는 모두 다 한 재료로서 집을 제외하고 따로 기둥 다르고 서까래 다르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同)이 즉 이(異)고 이가 즉 동인 것입니다. 또 기둥과 문, 방 등이 서로 연(緣)이 되어 집을 이루고 있습니다[成]. 그러나 기둥과 문, 방 등은 각각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壞]. 그래서 성(成)이 즉 괴(壞)이고 괴가 즉 성이 됩니다.


이 총, 별, 동, 이, 성, 괴의 육상에 관한 내용은 벌써 화엄십현의 내용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처음의 동시구족상응문은 총(總)을 말하고 광협자재무애문 등은 별(別)을 말하는 것으로서, 육상이나 십현이 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거의 같은 것입니다. 육상의 총, 별과 동, 이와 성, 괴가 원융무애 자재하고 또한 화엄십현의 이(理)와 사(事)가 원융무애 자재해서 사사무애법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