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제7장 화엄종사상] 4. 제법무애도리 - (3) 체용쌍융의

通達無我法者 2007. 4. 30. 11:45

 

제7장 화엄종사상

 4. 제법무애도리

  (3) 체용쌍융의


체와 용이 쌍으로 원융하다는 뜻이란, 모든 연기법은 반드시 역용(力用)이 교섭하고 전체가 융합하여야 비로소 연기가 성립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원융하게 통하는 것에도 또한 여섯 구[六句]가 있다.


하나는 체(體)로서 용(用) 아님이 없으므로 체를 들면 전부가 용이니, 곧 오직 상입이 있을 뿐이요 상즉의 뜻은 없다. 둘은 용으로서 체 아님이 없으므로 용을 들면 전부 체이니, 곧 오직 상즉만 있을 뿐이요 상입이 없다. 셋은 체에 돌아가는 용이 용을 장애하지 않고 모든 용의 체가 체를 잃지 않음이니 이것은 곧 함께 존재함을 장애하지 않아 즉(卽)하면서 또한 입(入)하여 자재하게 함께 나타남이다. 넷은 모든 용의 체가 체를 없애고 모든 체의 용이 용을 잊어서 즉하지도 않고 입(入)하지도 않아 원융한 한 맛이다. 다섯은 앞의 네 구를 합하여 같은 연기라서 걸림 없이 함께 존재함이다. 여섯은 앞의 다섯 구를 다 없애 버려 상대가 끊어지고 말을 떠나므로 자성바다에 고요히 같아진다.

體用雙融義니 謂諸緣起法은 要力用이 交涉하고 全體融合하여 方成緣起라 是故로 圓通에 亦有六句니라 一은 以體無不用故로 擧體全用이라 卽唯有相入이요 無相卽義라 二는 以用無不體故로 擧用全體라 卽唯有相卽이요 卽無相入也라 三은 歸體之用이 不碍用하고 全用之體가 不失體니 是卽無碍雙存하여 亦卽亦入하여 自在俱現이요 四는 全用之體體泯하고 全體之用用亡하여 非卽非入하여 圓融一味요 五는 合前四句하여 同一緣起라 無碍俱存이요 六은 泯前五句하여 絶對離言할새 冥同性海니라.


지금까지 상즉은 체라 하고 상입은 용이라 하여 나누어 논의했지만 체와 용이 다르고 상즉과 상입이 다르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상즉이 상입이고 상입이 상즉으로서 체와 용이 같다는 말입니다. 모든 연기법에 있어서 용과 체는 서로 융합되어 역용(力用)에 체가 따라가고 체에 역용이 따라가 체가 즉 용이고 용이 즉 체로서 비로소 연기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체와 용을 달리 말하고 상즉과 상입을 달리 설한다고 해서 상즉 다르고 상입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체와 용이 서로 통하고 상즉과 상입이 서로 통하여 원융무애하게 되는데 여기에도 또한 여섯 구가 있습니다.


첫째는 체가 모두 용 아님이 없음이니, 체는 완전히 잠겨 버리고 용만 드러나서 전체가 용뿐입니다. 곧 공(空) 이대로가 전부 색(色)이라는 말입니다. 용만 표현이 되므로 용면에서 논하는 상입만 있지 상즉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둘째는 첫째와 반대로 용이 모두 체 아님이 없습니다. 용 이대로가 전부 체이기 때문에 체만 드러나서 체의 면에서 설하는 상즉만 있지 상입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앞은 공즉시색이지만 지금은 색즉시공입니다. 첫째와 둘째에서는 그 중심 내용은 서로 통하지만 한쪽으로만 관찰하여 상즉과 상입으로 나누어 표현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용이 체에 돌아간다고 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체 역시 용에 돌아간다고 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체가 전부 용이 된다고 해서 체가 없어지고 용만 있는 것이 아니며 용이 전부 체가 된다고 해서 체만 있고 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체가 용이 되고 용이 체가 되더라도 서로 걸림이 없어 체가 즉 용이고 용이 즉 체가 되는 동시에 체와 용이 분명히 쌍존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 즉(卽)도 있고 입(入)도 있어 자유자재로 구현되는 것이니 이것은 곧 쌍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전체지용(全體之用)일 때는 용을 완전히 잊고 반대로 전용지체(全用之體)일 때는 체를 완전히 없애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즉(卽)도 아니고 입(入)도 아니며 체도 아니고 용도 아니면서 원융일미(圓融一味)입니다. 이것은 곧 쌍차를 말하는 것으로 체도 없고 용도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종합하여 논한 것입니다. 즉 첫째는 용으로, 둘째는 체로, 셋째는 체, 용이 쌍존하고, 넷째는 체, 용이 쌍민한 것을 종합한 것이니, 말하자면 이것은 다 같은 연기로서 서로 걸림이 없어 무애자재하게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다섯째를 다시 뒤집어 표현한 것으로 앞의 다섯 가지를 모두 소멸해 없애 버리므로 상대를 끊고 말이 떨어져서 자연히 자성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긍정을 하고 어떤 때는 부정을 하지만 긍정이 부정이고 부정이 긍정으로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언제든지 원융무애자재하여 참으로 대법계 연기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만약 다만 한쪽에 조금이라도 집착하게 되면 근본 연기를 모르는 것입니다.


처음의 용면에서 상입을 말하고 체면에서 상즉을 말할 때, 그리고 체와 용을 합하여 원융무애한 것을 말할 때에도 쌍차쌍조 이것이 근본 원리가 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래서 전에도 언급했지만 화엄종취의 근본 뜻이 쌍차쌍조에 있다는 것이 여기에 근본적으로 분명히 표현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