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승행록(緇門崇行錄)
제4편 고상한 행(高尙之行)
1 . 총애를 피하고산으로 들어가다(避훌入山)
진(晋)나라의 도오(道惜)스님은 인품이 출중하고 훌륭하였다. 진나라의 왕 요흥(跳興)은 그런 도오스님에게 승복(借服)을 버리고 자신을 보좌하여 대궐에서 살 것을 여러 차례 청하였다. 그 때마다 그 청을 사양하였으나, 왕은 계속하여 권유하면서 윤허(允許)를 하지 않더니 나중에야 스님은 그 요청을 변하게 되었다.
그 후 성현들의 교훈을 생각하며 탄식하여 이강기를,
“옛사람이말하기를, 나에게 재물을 가져다 주는 자는 나의 정신을 좀먹게 하는 마구니이며, 나에게 명예가 생기도록 하는 자는 나의 목숨을 죽이는 자와 같도다”라고 하였다.
그 후로 더욱 그림자를 바윗골에 숨기고 초식(草食)으로 연명하면서 오직 선정(輝定)을 닦으면서 일생을 보내었다.
2. 맑고 소박한 모습을 존경하다(聚服漫敬)
진나라의 혜영(慧永)은 천태종의 종장(倧匠)인 혜원공(惠遺公)과 함께 여산(盧山)에 거처하고 있었다.
진남장군(鎭南將軍)인 하무기(何無忌)가 심양(尋陽)을 지키게 되자, 호계(虎漢)에 머물면서 평소부터 존경하던 혜영과 혜원스님을 청하였다.
혜원을 모시고 있던 백여명의 스님들。모두 단정하고 엄숙하여 위엄이 있었다. 그러나 혜영은 더기 옷에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고 발우를 지닌 걸승(乞僧)의 모습으로 소나무 아래에 초연히 이르렀는데 그 태도가 더없이 태연자약하였다. 하무기가 그런 혜영스님의 모습에 감탄하여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
“혜영공의 맑고 소박한모습은 학덕이 높은 혜원스님보다 더 훌륭하도다”
찬탄하여 말한다. ”
혜원스님을 시종했던 백여명의 스님들 백련사(白運柱)의 영현(英廣)들이었다. 그런데도 하공(何公)이 혜영 화상을 이토록 높이 찬양하였다.
요즈음의 승려들은 거드름을 피우느라 노복을 거느리고 일산을 펴 들고 온갖 물건이 든 상자를 걸머지게 하여 호귀(豪貴)한 사람의 문전으로 발길을 달리며 그들과 짝이 되기를 구한다. 이런 모습의 승려들을 하동이 보았다면 또 무엇이라고 탄식했겠는가? ”
3. 왕의 공양을 누리지 않다(不享王供) ”
요진(挑奏)의 불타야사(佛院耶舍)가 고장(始藏) 지방에 있을 때, 진나라 왕인 요흥(挑興)이 사신을 보내어 스님을 초빙하여 후하게 선물하였으나 받질 않았다. 그러자 왕이 직접 나아가서 영접하고 따로 신성(新省)을 세우고 왕궁 뜰에 새로이 관사를 마련하고 갖은 물건으로 공양하였으나 또한 받지를 않았었다. 공양시간이 되면 걸식해서 한번 밥 먹을 뿐이었으며 의발와구(衣鉢臥具)가 삼칸의 집에 가득 찼어도 이를 가지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요흥은 이들 재물로 성의 남쪽에 사원을 조성하였다 한다.
4. 어가를 맞이하지도 전송하지도 않다()
제나라의 승조(僧稠)스님은 한번은 문선제(文宣帝)가 우위군(羽衛軍)을 거느리고 절에 이르자, 작은방에 편안히 앉아서 끝내 영접하거나 전송하질 않았었다.
제자들어 그에 대해 간언(課름)을 하자 승조는 말하였다.
“옛날에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는 일곱걸음을 걸어 나가 왕을 영접하고 그로인해 칠년 동안 복이 감한 왕으로 하여금 나라를 잃게 하였다. 내가 진실한 덕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면서도 감히 껍데기인 형상이나마 스스로 속이지 못하는 것은 복을 얻어 왕에게 주고자 함 때문이다” 라고 했는데, 천하에서는 그를 조선사(觸神師)라 호칭하였다.
5. 귀한사람과결속하여 노닐지 않다()
양(梁)나라의 지흔(智微)화상은 단양(丹陽) 사람인데, 경전의 의미를 깊이 연구한 학승으로 유 하였다.
영명(永明) 말에 태자가 때때로 동전(東田)에 행차하여 자주 절에 왔다. 지혼스님은 그럴 때마다 병을 핑계하여 종산(鐘山)에서 편안히 자득하였다. 이렇듯이 스님은 홀로 한가히 지낼 뿐 부귀한 사람과 사귀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다 선물이나 시주물이 들어오면 축적하지 않고 그것으로 자기가 머무는 사찰을 고쳐 짓는 데에 사용하였을 따름이었다.
6. 도적에게 길을 인도하지 않다(不引戰路)
수나라의 도열(道脫)스님은 형주(荊州)사람이다. 항상 반야경을 지송(持頭)하며 옥천사(玉果寺)에 주석하였다.
주찬(朱粲)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그가 절에 들어와 양식을 빼앗고 또 사람을 해치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러자 주찬의 무리는 스님을 놓아주었으나 길을 인도하라고 행패를 부렸다. 몇 걸음 발을 옮기더니 스님은 땅에 주저앉으면서 말하였 다.
“나는 사문이지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 한낱 허깨비같은 몸을 그대의 흰 칼에 맡기노라.”
주찬은 스님의 고상함을 거룩하게 여기고 이로 인해 스스로 풀어 보내주었다.
7. 조정에서 여러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다()
당나라 때에 자장(慧藏)은 신라국(新羅固) 사람이다. 그윽한 수행의 덕이 높아 모든 사람들이 믿고 존경하였다.
자장은 왕족인 까닭으로 왕이 여러 차례 대궐로 불렀으나 산에서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왕은 대신에게 이번에도 나오지 않으면 왕명을 거역하는 죄로 목을 베어오라고 명령했다. 칼을 가지고 간 대신이 왕의 말을 전하고 하산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자장은 태연히 이렇게 말하였다.
“차라리 하룻동안 계율을 지키며 살지언정 일생동안 파계(破戒)하며 살기는 원치 않는다.”
이렇듯 단호하게 결심이 굳은 자장스님을 죽이지 못하고 간 대신이 이 사실을 빠짐없이 아뢰자 왕은 크게 감탄하였다.
8. 차라리 죽을지언정 일어나지 않다()
당나라 시대 선종의 사조(四租)인 도신(道信)대사는 황매산에서 30여년을 머물렀다.
정관(貞觀)년 간에 태종이 세 번이나 조서를 내려 “장안으로 오라”하였으나 번번이 병을 핑계하고 거절하였다. 황재는사자에게 칙명을 내리기를 “다시 일어나지 않거든 그의 머리를 베어오라”고 하였다.
스님은 오히려 목을 내밀고 칼을 받으려 하였으나 사자는 차마 베지 못하고 이 사실을 아뢰었더니, 태종은 탄복하여 진기한 보물을 하사하고 그의 뜻에 따르게 하였다. 찬탄하여 말한다.
엄자릉(嚴子陸)이 광무제(光武帝)를 거절하고, 층노가 인조(仁租)를 사양했던 것도 일사(遺士)의 평상한 일일 뿐 흰 칼날로 위협해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소문을 아직 듣지 못하였다.
붉은 봉황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면 바라볼 수는 있어도 따라가지는 못한다 하거니와 이러한 것 사람의 행에 견준다면 도신스님과 자장스님의 행에나 비길 수 있겠도다.
9. 세 번이나 조서를 내려도 가질 않다( )
당나라 분주(紛州) 무업(無業)선사는 협서(陜西)의 옹주(雍州) 사람이다. 』
목종(穆宗)이 좌가승록(左街僧錄)인 영부(灵阜)스님에게 영을 내리기를 조서를 가지고 무업선사에게 가서 그를 일어나게 하라 하였다.
스님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빈도가 무슨 덕으로 임금을 여러번 번거롭게 하겠는가. 그대는 먼저 떠나도록 하라. 나는 즉시 뒤따라 가리라.”
그리고 나서 목욕하고 좌구를 펴더니 문인들에게 고하여 말하였다.
“너희들 견문각지(見聞覺知)의 성품은 태허공과 수명이 같다. 일체의 경계는 본래 스스로가 공적(空寂)하건만 미혹한 사람은 이를 알지 못하고 즉시 경계에 현혹되어 생사유전이 다하지를 않는다.
항상 일체가 공적함을 알면 한 현상의 법도 망정(妄情)에 해당함이 없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 말을 마치자 단정히 앉아서 한밤이 되자 돌아가셨다.
영부가 되돌아가 이 사실을 아뢰자 황재는 크게 공경하고 찬탄하면서 시호를 대달국사(大達固師)라 하사하였다. 스님은 현종, 목종의 양조(兩朝)를 지내면서 세번이나 조서를 받았으나 가질 않았다.
10. 조서가이르러도일어나지 않다()
당나라의 나융(懶融)스님은 금릉(金陸)의 우수산(牛首山)에 은거하고 있었다.
황제가 그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서 알현하라고 불렀다. 사신이 가자 나융스님은 땅바닥에 앉아서 소똥에 불을 지펴놓고 주워온 토란을 구워먹고 있었는데 추위로 콧물이 턱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천지께서 조서가 계셨읍니다. 존자께서는 일어나십시오”
나융스님은 한참을 바라보더니 되돌아 보지도 않았다. 사신은웃으며 말하였다.
“콧물이 턱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나융스님은 말하였다.
“나에게 무슨 공부가 있어서 속인을 위해 콧물을 닦겠는가.” |
황제는 그 말을 듣고 그 기이함을 찬탄하더니 그 뒤에 상을 후하게 하사하고 표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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