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쌍수
禪은 진리를 바로 비춰 보는 공부입니다. 定은 주로 고요한 쪽으로 바른 마음을 분별없이 나아가는 것입니다.이 둘을 합한 것이 바로 선정인데 보통 합해서 많이 씁니다.참선할 때 가장 큰 원수는 분별시비하는 도거(悼擧)와 꾸벅꾸벅 조는 혼침입니다. 선방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참선을 아무리 오래 했다 하더라도 꾸벅꾸벅 졸아버리면 그 사람은 참선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지요.우리는 자기의 신심과 원력을 다 발휘해서 꾸벅꾸벅 조는 이 혼침과 분별시비하는 도거를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항시 흔들립니다.모두중생(毛頭衆生)이라. 바람이 안 불어도 터럭 끝이 움직이듯이 우리 범부 마음은 다 그렇습니다.항시 동요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마음을 다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혼침 없이 단정하게 앉아 제법 잘하는 것 같아도 마음으로부터 분별시비하면 참선은 되지 않고 망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이 두 가지를 꼭 이겨내야 합니다. 꾸벅꾸벅 조는 것과 분별시비하는 것,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혜쌍수를 지켜야 합니다.
"보조어록"을 보더라도 정혜쌍수라는 말이 나옵니다. "육조단경"에도 나오고 어느 성전에나 다 들어 있습니다. 定은 마음을 고요하게 한곳에 머물게하는 것입니다. 慧는 바로 진여불성자리,본래면목자리를 훤히 비춰본다는 말입니다.
'이뭐꼬''시심마'도 그냥 단순히 '이뭐꼬'가 아니라,나한테 한 물건이 있으되 밝기는 해와 달보다 밝고,검기는 칠(漆)보다 검고,하늘을 바치고 땅을 괴고,그런 것이 나와 더불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가,그 자리를 들어야지 덮어놓고 '이뭐꼬'만 한다고 선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화두가 나올 때 그 뜻을 알아야 합니다.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인가?' '道의 본래면목이 무엇인가?' 또는 '부처가 무엇인가?'이런 데 따라서 화두가 나왔단 말입니다. 본래의 자리,본래면목자리를 분명히 들어야 화두가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 상대적으로 의심만 한다고 화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래면목자리가 진여불성이고,그 자리는끝도 없는 광대무변한 생명의 실체이고 실상입니다.따라서 이런 실상자리를 비추어 봐야 합니다.우리 참선하는 사람들은 꼭 주의해야 합니다. 참선은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비춰 보는 지혜란 말입니다. 단경에 보면 '반야관조'라,반야의 지혜도 역시 우리 마음을 관조한다는 말입니다.
반야의 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가상과 가명을 떠나서 참다운 지혜로 우리의 본래자리를 비춰 본다는 뜻입니다.이렇게 해야 혼침과 도거가 줄어듭니다. 그냥 덮어놓고 아무것도 없이 묵묵무답으로 앉아만 있는다는 듯이 아닙니다.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이나 부처님의 명호도 모두가 그런 진여불성의 대명사에 불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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