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마음] 천지우주의 생명자리, 진여불성의 자리에 마음을 두어야 합

通達無我法者 2007. 11. 26. 17:54

천지우주의 생명자리, 진여불성의 자리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부처님같이 그렇게 다생겁래로 이른바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을 닦아오신 성자는 아무런 고통없이 평생 잘 지내신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아요. 부처님 같으신 분도 당신 평생에 열 번이나 곤란한 경우를 겪으셨습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삼아승지겁을 닦아오신 분이기 때문에 아무런 허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부처님을 가장 시달리게 한 사람이 자기 친종제 제바달다(提婆達多) 아닙니까? 제바달다는 종제이면서도 심지어 부처님의 생명까지도 빼앗으려 한 아주 표독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모두가 다 부처님 스스로 받은 업(業)의 보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업이라는 것이 굉장히 지독한 것입니다. 겪어보면 업을 짓고서 몇십 년이 지나도 그 업이 소멸되지 않습니다. 몇십 년이 아니라 몇 겁, 몇천 겁의 세월이 흘러가도 한번 지어놓은 없은 소멸이 안 됩니다.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뜻으로 지은 삼업의 굴레
그 업은 무엇인가. 우리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 우리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우리 뜻으로 짓는단 말입니다.
가령 남을 한번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서 저 사람 참 고약하다, 차라리 어디 가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가질 수도 있겠죠. 그런 생각을 찰나 동안만 해도 그것이 소멸이 안 됩니다. 그 생각 하나로 자기의 온 세포가 오염돼 버립니다.
또한 우리 생명은 나뿐만 아니라 우주와 더불어서 있습니다.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 저 다른 나라에 있는 돌멩이 하나나 여기 있는 나뭇가지 하나나 모두가 다 같은 인연 가운데에서 생겨나고 변화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화엄계에서 말하는 중중무진입니다. 얽히고설키고 우주의 모든 것이 다 하나의 인연 가운데 있습니다. 때문에 부처님도 제바달다한테 당한 만큼 부처님 역시 과거 전생에 제바달다를 못살게 굴었단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누구나 부처님 공부 가운데는 참선하는 공부가 그야말로 가장 높은 공부고 부처님 공부의 핵심이므로 기왕이면 참선을 좀 했으면 쓰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요. 하지만 형편상 선방에도 갈 수 없고 또 그때그때 절을 찾아가 재가불자님들과 더불어서 공부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되니까, 참선은 도저히 안 되겠구나, 이렇게 체념하신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참선은 사실 천하에 제일 쉬운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좋은 것은 천하에 쉽고 좋지 못한 것은 천하에 어렵단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진실만을 말씀하신 분이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은 다 근원적이고 실존적입니다. 다만 허물은 우리 중생이 잘못 봐서 그렇습니다.

참선염불은 업 덩어리를 녹이는 가장 빠른 길
우리가 기왕 불법을 공부하고 불도를 닦기 위해서는 출가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출가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세속을 떠난다는 말입니다. 세속을 떠난다는 것은 세속적인 여러 가지 잘못된 견해를 다 씻어버리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영원한 도리를 깨닫기 위함입니다.
나지 않고, 죽지 않고, 영원히 변치 않는 그런 영원한 도리를 알기 위해서 나가는 사람이 출가자 아닙니까? 따라서 비록 출가했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세간에 대한 집착을 못 떠나면 그것은 출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신출가(身出家)ㆍ심출가(心出家)라, 몸으로 출가하고 마음으로 출가해야 참다운 출가인 것입니다.
마음으로 출가한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느끼고 진리는 분명히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명백합니다. 나 아(我)자, 볼 견(見)자, 아견이 있으면 그때는 진리가 아니고, 아견이 없어야 진리입니다.
존재라는 것은 모두가 다 현상 아닙니까? 이런 것은 다 인연생입니다. 인연 따라 잠시간 있는 것같이 보인단 말입니다. 내 몸뚱이나 내 관념이나 두두물물(頭頭物物), 모든 것이 하나의 상인데 이런 것들이 있는 것같이 보인단 말입니다. 부처님 말씀 그대로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이라, 눈에 보이는 대상들 이것이나 저것이나 모두가 다 꿈이나 허깨비와 같단 말입니다. 꿈이 실제 있습니까? 허깨비가 실제 있습니까?
우리 중생들은 그러면 어째서 바로 보지를 못하는가, 업장 때문에 바로 보지를 못합니다. 우리 몸뚱이는 지금 업장덩어리입니다. 어려운 말로 하면 업숙체(業熟體)라, 업덩이에 꽁꽁 묶여 있단 말입니다.
참선염불은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그 얽히고설킨 업덩어리를 녹이기 위해서입니다. 계율은 무엇 때문에 지키는 것인가, 함부로 먹고 함부로 행동하면 업덩어리가 녹지 않기에 지키는 것입니다.

본래면목 자리를 놓치지 말라
우리 불자님들은 결연히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 우리한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성불(成佛)이라는 것은 부처님 말씀대로 계(戒)ㆍ정(定)ㆍ혜(慧) 삼학(三學)을 꼭 그대로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계율을 닦으므로 선정(禪定)에 들어가고 또 선정에 들어가야 참다운 깨달음을 얻는단 말입니다.
이처럼 부처님 가르침은 명백한 공식과 같습니다. 정확한 수학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궁극적인 모든 것을 다 달관해서 체계화시킨 그런 가르침입니다. 때문에 우주의 모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가르침 말고 다른 종교의 가르침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부처님 가르침만이 시대를 초월하고 모든 것을 완전히 초월해서 우주의 모든 문제를 다 포괄합니다. 기독교 진리나 유교 진리, 또는 현대 물리학 같은 것이 모두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으로 볼 때에는 안 풀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 불자님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참선을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간에 주인공 자리, 우리 본래면목 자리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주인공 자리는 내내야 마음자리 아닙니까. 우리 마음이 주인공이니까요. 그러나 남을 미워하고 남을 좋아하고 욕심을 내고 진심(瞋心)을 내고 나는 김아무개다, 나는 누구 남편이다, 나는 누구 아내다...이런 것은 참다운 자기면목, 본래면목 자리가 되지를 못합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천지우주의 근원적인 문제, 천지우주의 근원적인 생명이란 것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지우주가 모두 다 일미평등한 불성뿐이다
현대물리학도 증명하다시피 모든 존재는 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로 합해져 있습니다. 세상만사 눈에 보이는 것을 분석해 놓고 보면 다 원자(原子)가 되지 않습니까. 원자는 소립자로 구성되고, 또 소립자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알 수 없는 우주정기로 꽉 차 있단 말입니다. 그 알 수 없는 우주정기는 무엇인가, 이것은 물리학이 모르는 분야입니다. 왜 모르는가,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이라는 것은 공간성과 시간성이 있어야 축적이 되는 것인데, 시간과 공간을 떠나 있으니 물리학은 알 수가 없지요. 알 수가 없지만 신묘한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눈방울이나 물방울이나 공기나, 원자나 식물이나 동물이나 모두가 다 근원자리에서는 하나의 신비로운 생명이란 말입니다. 이 자리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불성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가 우주의 진리이기 때문에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부릅니다.
나는 여기에 있고, 우주의 근본자리인 진여불성은 저 멀리 대상적으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그렇게 대상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것은 오직 그 진여불성뿐입니다.
육식(六識)이 있고, 그 밑에 말나식(末那識)이라는 잠재의식이 있고, 그보다 깊은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암마라식(菴摩羅識)이 있는데, 그 근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생명체인데 그 자리가 이른바 불성입니다.
그 근원적인 것을 볼 수 있는 분들이 이른바 성자입니다. 자기 스스로 근본자리하고 하나가 되어야 성자입니다. 그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 몇 년 또는 몇 개월 동안 애쓰고 공부하지 않습니까. 그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냥 보통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업장이 가벼운 분은 빨리 되고, 업장이 무거운 분은 더디 되겠지요.
부처님 가르침은 우주 근본의 바탕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따르는 공덕이 꼭 붙습니다. 가령 하루 참선하면 하루 참선한 만큼 마음도 몸도 맑아지고 우리 건강도 더 좋아집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바른 참선을 하지 못하면, 이른바 상을 여의지 않거나 근본을 여의고서 하는 공부는 그렇게 안 된단 말입니다. 근본을 여의고 하는 공부는 몸도 안 풀리고 마음도 안 풀리고 참선공부에 따르는 법열(法悅)이나 행복감도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참선을 할 때는 꼭 그 근본자리, 본래면목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우선 중요한 것은 '천지우주가 모두 다 일미평등(一味平等)한 불성뿐이다' '진여불성뿐이다'라는 이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