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32 성급하게 제자 지도함을 경계하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7:18
32  성급하게 제자 지도함을 경계하다   월당 도창(月堂道昌)스님 / 1089∼1171 
 

 1. 옛날 대지(大智)스님께서 말세의 비구들이 교만하고 게으를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법도를 지어 이를 예방하셨다. 그들의 그릇과 능력에 따라 각각 소임을 정하였는데, 주지는 방장실에 대중은 큰 방에 거처하며, 예시한 10개 소임〔十局頭首〕의 엄숙하기는 관부(官府)와도 같았다.
웃사람은 굵직한 일을 주관하였고 아랫사람은 세부조목을 정리하여, 상하가 몸이 팔을 부리고 팔이 손가락을 움직이듯 서로 받들고 통솔하였다. 그러므로 앞사람들이 법도를 따라 계승하여 공경하고 떠받들며 조심스럽게 실천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옛 성인의 유풍(遺風)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총림이 쇠퇴하여 납자들이 재능에 능한 것만을 귀하게 여기고 절개 지키는 것을 천시한다. 들뜨고 화려한 것을 숭상하고 진실·소박을 가벼이 여기기를 날로 달로 더하여 점점 말세로 치닫는 것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편안함만 훔치는 정도였다가 빠져들어 익숙해진 지가 오래되면 으례 그런 것이려니 하고 비리(非理)로 여기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웃사람은 아랫사람을 두려워하며, 아랫사람은 웃사람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평소에는 달콤한 말로 굽신거리며 아첨하다가 틈이 생기면 사나운 마음과 속임수로 서로를 해친다. 여기에서 일을 이룬 사람은 훌륭하다 하고 패한 자는 어리석다 하며 존비(尊卑)의 질서나 시비(是非)의 이치를 다시는 묻지도 않는다. 일단 상대방에서 그렇게 하고 나면 이 쪽에서도 똑같이 본받으니, 아랫사람이 말하고 나면 웃사람이 그를 따르며 앞에서 행하고 나면 뒤에서 따라 익힌다.
아 - 아, 성인이신 우리 스승이 원력을 바탕으로 백년 공부를 쌓지 않으셨다면 이 고질화된 폐단을 개혁할 수가 없으리라.

2. 월당스님이 정자원(淨慈院)에 머문 지가 매우 오래되었다. 어떤 사람이 "스님께서는 도를 수행하신 지가 여러 해가 되었는데도 문하에는 제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지 못하였읍니다. 
이는 묘담(妙湛)스님을 저버리는 것이 아닌지요?" 하고 말하자, 스님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뒤에 거듭 이를 따지자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런 소리를 듣지도 못하였는가. 옛날에 오이를 심어놓고 매우 아끼는 자가 있었다네. 그런데 무더운 여름날 한낮에 물을 주자 오이는 발꿈치 돌리는 순간 시들어 버렸다네. 
무엇 때문이었겠나? 신경쓰기를 게을리해서가 아니라 물을 제때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니, 시들게 하기에 딱 알맞은 짓이었다네.
제방의 노숙(老宿)들이 납자를 끌어줄 때, 그의 도업이 안으로 충실한지, 재능과 그릇은 크고 위대한지를 관찰하지 않고 그저 성급하게 위하는 마음만 쓰려 할 뿐이지. 그리하여 납자들의 도덕을 보면 더럽고 언행을 보아도 도리에 어긋나 있으며 공평정대함으로 말하자면 삿되고 아첨스러우니, 아끼는 마음이 그의 분수에 지나쳐서가 아니겠는가?
이는 바로 한낮에 오이에 물을 주는 것과도 같다네. 나는 식견있는 사람들이 비웃을까 깊이 염려스럽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네." 『북산기문(北山記聞)』

3. 황룡스님이 적취암(積翠庵)에 머무를 때 병으로 석달을 문 밖으로 나오질 못하였다. 그때 진정(眞淨)스님은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하다가 머리와 팔을 태우기까지 하면서 은밀한 가피력을 빌었다. 황룡스님이 이 말을 듣자 꾸짖으며 말하였다. 
"살고 죽는 것은 원래 내 분수이다. 그대는 참선을 했는데도 이토록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였는가."
그러자 진정스님이 얼굴빛을 누그러뜨리고 대꾸하였다.
"총림에 저는 없어도 되지만 스님께서 없어서는 안됩니다."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진정스님이 스승을 존경하고 법을 소중히 하는 정성이 이 정도니 뒷날 반드시 큰 그릇을 이루리라." 『북산기문(北山記聞)』

4. 황태사 노직(黃太史魯直)이 일찌기 이렇게 말하였다.
"황룡 남(黃龍南)스님은 인격이 깊고 두터워 다른 것에 의해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았으며 평소에 교만이나 꾸밈이 없었다. 문하의 제자들도 종신토록 그가 희노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심부름하는 일꾼에게까지도 한결같이 정성으로 대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명성이나 기개에 흔들림 없이 자명스님의 도를 일으켰던 것이지 구차하게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일본견황룡석각(一本見黃龍石刻)』

5. 건염(建炎) 기유(¿酉:1129) 상사일(上巳日)에 종상(鍾相)이 풍양(陽)땅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문수 심도(文殊心導)스님께서는 난리에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었는데, 도적들의 세력이 성대해지자 그의 제자들이 도망을 가버렸다. 그러자 스님은 "재앙을 피할 수 있겠느냐"고 하며 의연한 모습으로 방장실에 계시다가 끝내는 도적들에게 해를 당하였다.
무구거사(無垢居君)는 그 법어를 발췌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오직 지극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본래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태어나도 삶에 집착하지 않으며, 한번도 멸한 적이 없다는 것을 통달하고 죽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환(禍患)을 당해 죽을 찰나에도 자기가 지키던 것을 바꾸지 않을 수 있다 하였는데, 스님이 바로 그런 사람일 것이다. 스님의 도덕과 절의는 총림을 교화하고 모범을 후세까지 드리우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스님의 이름은 정도(正導)이며, 미주(眉州) 단릉(丹稜) 사람으로서 불감(佛鑑)스님의 법을 이었다. 『일본견여산병부혜태사기문(一本見廬山兵府惠太師記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