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33 교외별전을 해설하는 폐단을 경계하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7:19
33  교외별전을 해설하는 폐단을 경계하다   심문 운분(心聞雲賁)스님* 
 

 1. 납자들이 참선을 하다가 병통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병통이 귀와 눈에 있는 자들은 눈썹을 솟구치고 눈을 노기등등하게 하며, 귀를 기울여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선(禪)으로 여긴다. 병통이 입과 혀에 있는 자들은 전도된 말로 어지럽게 할(喝)! 할(喝)!하는 것을 선으로 여긴다. 병통이 손과 발에 있는 자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며, 여기 저기 가리키는 것으로 선을 삼는다. 병통이 가슴 속에 있는 자들은 현묘함을 끝까지 궁구하고 알음알이를 벗어나는 것을 선으로 여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경우가 사실은 모두 병통이다. 진짜 선지식〔本色宗師〕이라야 깊숙한 기미에서 분명히 살펴낼 수 있으니, 보자마자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를 알아차리며, 입문했을 때 깨칠 수 있을는지 못할는지를 분별해 버린다. 그런 뒤에 한 방을 날려 끈질기게 이어지던 그들의 미세한 번뇌까지 벗겨주며, 막힌 곳을 쳐서 진실과 거짓을 판정케 한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의 방편만을 고집하느라 변통(變通)에 어두운 일이 없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끝내 안락하여 일 없는 경지를 밝히게 하고 그런 뒤에야 그만두는 것이다. 『어록(語錄)』

2.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 사람 가운데서 빼어나면 영특〔英〕하다 하고, 만 사람 가운데서 빼어나면 걸출〔傑〕하다' 하였다. 납자로서 지혜와 수행이 총림에 소문난 자라면 어찌 영걸(英傑)한 인재에 가깝다 하지 않으랴. 단지 부지런히 탐구하여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지녀 누구나 제자리에 쓰일 수 있게 한다면 절의 규모나 대중의 수에 관계없이 모두가 그의 교화를 따르리라.
옛날 백정의 풍혈(風穴)·우란의 약산(藥山)·대매의 상공(常公)·형초의 자명(慈明)스님, 이 스님이 모두 위와 같은 영걸이셨는데, 당시 그들과 어울리던 유유자적한 무리들이 이들에게 지위나 외모를 구했더라면 보고서는 반드시 업신여겼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영광된 사석(師席) 법좌(法座)에 올라 모든 사람들이 에워싼 가운데 불조의 도를 밝혀, 만세의 빛이 되었으니, 총림에서 누군들 그 풍모만 바라보고도 쏠리지 않았겠는가. 
더구나 앞사람들은 아름다운 재질과 뛰어난 기상을 가지고도 시기를 만나지 못했을 즈음에는 조심하면서도 수치와 더러움을 참고 세상에 뒤섞여 함께 어울리면서 이렇게 살아갔는데, 하물며 이보다 더 못한 자의 경우이겠는가.
아 - 아, 옛날도 지금과 같으니 그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어코 약산·풍혈스님을 기다려 스승 삼으려 한다면 천년에 한번 만날 것이며, 꼭 대매·자명스님을 도반으로 의지하려 한다면 백년에 한번쯤 나올 것이다.
모든 일은 은미한 곳으로부터 현저한 데에 이르며, 공은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을 이루는 법이니, 배우지 않고도 성취하고 수행하기에 앞서 먼저 깨친 자를 보지 못하였다. 이 이치를 깨닫는다면 스승을 구하고 벗을 선택하며 도를 배우고 덕을 닦는 일이 가능하리라. 그렇게 되면 천하의 일 중에서 무엇을 시행한들 되지 않겠는가.
옛사람은 말하기를 `사람 알아보기가 참으로 어려우니 이 일은 성인도 부족하다 여기셨다' 
하셨는데, 하물며 그 나머지이겠는가." 『여죽암서(與竹庵書)』

3.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도는 지극히 간요(簡要)하여 애초에 아무 말이 없었다. 앞사람들은 의심없이 실천하고 꾸준히 지켜나갔다.
그러다가 천희(天禧:1017∼1022) 연간에 설두(雪)스님이 박식과 말재주로 의미를 아름답게 한답시고 손을 대어 희롱을 하였으며, 참신하게 한답시고 교묘하게 다듬으며 분양(汾陽)스님을 계승, 송고(頌古)를 짓고 당세의 납자를 농락하니 종풍(宗風)이 이로부터 한번 변하게 되었다.
선정(宣政:1100∼1125) 연간에 이르러 원오(圓悟)스님이 여기에다 또 자기의 의견을 붙이고 이를 떼어내 『벽암집(碧巖集)』을 만들었다. 그때 옛날의 순수·완전한 경지에 매진하던 인재로서 영도자(寧道者)*·사심(死心)·영원(靈源)·불감(佛鑑) 같은 모든 노숙들도 그의 학설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새로 진출한 후학들이 그의 말을 보배처럼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외우고 익히면서 지극한 학문이라 말들 하며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가 없었다.
슬프다. 잘못되어 가는 납자들의 공부〔用心〕여.
소흥(紹興:1131∼1162) 초에 불일(佛日)*스님이 민() 지방에 들어갔다가 납자들을 끌어당겨도 되돌아보질 않고 날로 달로 치달려 점점 폐단을 이루는 것을 보고는 즉시 그 경판(脛板)을 부수고 그 학설을 물리쳐버렸다. 이로써 미혹을 제거하고 빠져든 이를 구원하였으며 번잡하고 심한 것을 척결하고 삿됨을 꺾어 바른 길을 제시하게 되었다. 이런 기세가 널리 확산되자 납자들이 이제껏 잘못되어 왔다는 것을 차츰 알고 다시는 흠모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불일스님이 멀리 내다보는 고명한 안목으로 자비원력을 힘입어 말법의 폐단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총림에는 두고두고 걱정거리가 남았으리라. 『여장자소서(與張子韶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