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대념처경(大念處經)

5-5. 네 가지 진리에 대한 관찰 / ③ 고가 사라진 상태

通達無我法者 2007. 12. 7. 11:01

5-5. 네 가지 진리에 대한 관찰 / ③ 고가 사라진 상태

 

다음으로 또한 비구들이여, 고가 멸하는 틀림없는 진리〔苦滅聖諦〕란 어떤 것인가?

애욕을 남김 없이 떠나고, 남김 없이 없애고, 남김 없이 가게하고, 남김 없이 버리고, 남김 없이 벗어나면, 이것이 물들지 않음이다.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애욕은 어디에서 버려지고, 어디에서 없어지는가? 세상에 사랑스럽고 기쁜 것이 있으면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세상에서 어떤 것이 사랑스럽고 기쁜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귀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코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혀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마음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물질〔色〕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소리〔聲〕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향기〔香〕는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맛〔味〕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감촉〔觸〕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법〔法〕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눈의 시각〔眼識〕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귀의 청각〔耳識〕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코의 후각〔鼻識〕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혀의 미각〔舌識〕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몸의 촉각〔身識〕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마음의 인식작용〔意識〕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눈의 촉감력〔眼觸〕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귀의 촉감력〔耳觸〕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코의 촉감력〔鼻觸〕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혀의 촉감력〔舌觸〕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몸의 촉감력〔身觸〕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마음의 감지력〔意觸〕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눈의 촉감력으로 생겨난 감수작용〔眼觸所生受〕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귀의 촉감력으로 생겨난 감수작용〔耳觸所生受〕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코의 촉감력으로 생겨난 감수작용〔鼻觸所生受〕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혀의 촉감력으로 생겨난 감수작용〔舌觸所生受〕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몸의 촉감력으로 생겨난 감사작용〔身觸所生受〕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마음의 감지력으로 생겨난 감수작용〔意觸所生受〕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물질의 상념〔色想〕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소리의 상념〔聲想〕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향기의 상념〔香想〕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맛의 상면〔味想〕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감촉의 상념〔觸想〕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법의 상념〔法想〕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물질의 생각〔色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소리의 생각〔聲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향기의 생각〔香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맛의 생각〔味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감촉의 생각〔觸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법의 생각〔法思〕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물질의 애욕〔色愛〕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소리의 애욕〔聲愛〕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향기의 애욕〔香愛〕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맛의 애욕〔味愛〕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감촉의 애욕〔觸愛〕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법의 애욕〔法愛〕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물질의 바람〔色尋〕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소리의 바람은〔聲尋〕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향기의 바람〔香尋〕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맛의 바람〔味聲〕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감촉의 바람〔觸尋〕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법의 바람〔法尋〕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물질을 찾아 살핌〔色伺〕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소리를 찾아 살핌〔聲伺〕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향기를 찾아 살핌〔香伺〕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맛을 찾아 살핌〔味伺〕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감촉의 찾아 살핌〔觸伺〕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법을 찾아 살핌〔法伺〕은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기뻐할 만한 것이다. 이런 애욕은 이곳에서 버려지고 이곳에서 없어진다. 

비구들이여, 이것이야말로 고멸성제(苦滅聖諦)라고 불린다.

해설
고의 원인이 나의 마음(주관)과 대상(객관)으로 인해서 생기는 연기법의 표상이라면, 고는 인연이 있으면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사라진다. 이렇게 보면 번뇌가 주가 되어 고가 생기고 없어지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모든 것의 되어진 모습을 보려면 그 원인을 먼저 살필 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곧 인연생(因緣生)을 보면 고의 실체를 아는 것이고, 인연생멸(因緣生滅)을 알면 진리를 아는 것이다.

'연기를 보면 법을 보고 법을 보면 부처를 본다.'라고 한 대품(大品)의 말이 떠오른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고와 고의 원인을 지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 고를 극복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네 가지 진실 중에서 이 점이 주목된다.

고가 없어진 상태는 곧 애욕을 모두 버린 해탈의 세계, 번뇌의 물들지 않은 세계이다. 객관 세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에서 떠나고, 주관 세계에 받아들여진 사랑스러움이나 기쁨 등으로부터도 멀리 떠나 온갖 상념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세계이다. 이 세계는 고의 초극, 절대 안온한 깨달음의 경지이다. 이러한 경지를 고집멸제(苦集滅諦)라고 한다.

고의 원인을 초극한다는 것은 갈애를 초극한다는 의미이다. 영원한 삶을 희구하는 것이 갈애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되고, 혹은 윤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이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근본 욕구를 없애는 것은, 인간의 생존욕이나 삶의 기쁨 내지는 내세에 대한 완전한 지멸(止滅)이기도 하다.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있게 된 법에 따라서 애욕이 생겼던 것이니, 없어지는 법에 따르면 없앨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없어지는 법이란 무엇인가?

육근(六根)의 주관과 육경(六境)인 개관에 의해서 있게 된 것이면 주관과 객관에 의해 없어진다. 주관은 객관에 의해 존재하고, 객관은 주관에 의해 존재하며, 양자는 모두 그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와 같은 주관과 객관에 의해서 있게 된 애욕이 실체가 있을 이 만무하므로 법에 의해 없어지는 것이다.

없어지는 법이란 무엇인가? 이것에도, 저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연기의 도리에 의해 생긴 애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으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올바른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여 올바른 삶을 살면 집착하지 않게 되고, 집착하지 않으면 법대로 살게 되고, 법대로 살면 고가 없어지고, 고가 없어지면 절대 안온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른다.

그렇다면 올바른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다음에 설명할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이다. 곧 고를 멸하는 길의 확실한 진리이다. 이는 갈애를 지멸시키는 길이다.

붓다는 주관과 객관에 의해 물든 집착된 애욕에서 벗어나면 그런 길이 열린다고 가르치고 있다. 고의 초극은 고 자체인 현실과, 고를 떠난 어떤 세계와의 합일(《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사상)도 아니고, 어떤 제3의 시에 의한 은총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고를 지닌 내가 고를 초극한 범(梵)과 합일한다는 것은, 범을 직관하는 종교 체험에 의한 것이다. 또한 신의 뜻을 어겨 고를 받았으니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것이므로 인간의 자각과 정진에 의해 고를 초극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