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성철스님] 인천보감(人天寶鑑) 4

通達無我法者 2007. 12. 7. 16:27
인천보감(人天寶鑑)

시랑(待郞)이 한스님과 법담을 나누다가 말하였다.
“참학(參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루종일 언제나 자기를 살펴보아야[照顧] 합니다. 듣지 못했습니까? 선[禪道]을 말하자면 늘 끼고 살펴야 할 도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무슨 일을 하거나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알을 품고 있는 닭이 알을 두고 일어나 버리면 따뜻한 기운이 이어질 수가 없어서 마침내 병아리가 부화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만상은 빽빽하고 6근은 요동하는데 조금만 살펴보는 일[照顧]을 놓치면 그대로 신명을 잃게 되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려가 여기 태어날 인연을 받아 생사에 매여 있는 이유는 수많은 겁토록 생멸심을 쫓아 그것에 끄달려 다니다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한번이라도 살펴봄을 잃은 적이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을 수 있겠습니까?”
“큰 길의 흰 소[露地白牛:본디는 법화경에서 一乘을 비유한 말로서 선문에서는 청정무구한 본심을 말한다]를 알고자 합니까? 콧구멍[鼻孔:본디 면목]을 잡고 한번 끌어당겨 보십시오.”
또 말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눈으로 가섭존자를 돌아보시며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있으니 이를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49년 동안 한마디도 설법한 일이 없다’ 하셨는데, 이것이 무슨 도리이겠습니까?”
“누구나 저마다 한 글자 각주도 달 수 없게 되면 누구에게나 굉장한 일이 벌어진 셈이나 그것을 ‘굉장하다’고 해버리면 벌써 틀립니다 그렇다면 석가는 패전한 군대의 장수이고, 가섭은 신명을 잃은 사람이라고 나는 말하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생사 열반이 모두 다 꿈속의 일이고, 부처와 중생도 모두 군더더기 말이라 하였습니다. 곧바로 이렇게 알아버려야지 밖으로 치달려 구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밝히지 못했다면 그대는 한참 잘못되었다고 말하겠습니다.”
시랑은 임종 하루 전에 게송 한 수를 직접 써서 집사람들에게 주며 다음날 이부마(李駙馬 .李, ~1038)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꺼졌다 일어나는 거품이여
두 법은 본래 같은 것
참된 귀결처를 알려 한다면
조주 동원의 서쪽이니라.
漚生與漚滅
二法本來齊
欲識眞歸處
趙州東院西

이부마(李駙馬)는 받아보고서 말하였다.
“태산(泰山)의 사당[廟] 속에서 지전(紙錢.죽은 사람의 노자돈으로 쓰는 가짜 종이돈)을 팔도다.”

장문정공(張文定公;張齊賢. 字는 師亮. 宋 太宗 眞宗代의 총신)은 전생에 낭야사(瑯耶寺)의 지장(地藏:장경각에서 경전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소임) 이었는데, 「능가경(愣伽經)」을 베끼다가 다 쓰지 못하고 죽게 되자 내생에 꼭 다시 쓰겠다고 발원하였다.
뒤에 제주(滁州)에서 지사(知事)가 되어 낭야산에 왔다가 도량을 두루 걸어다녔는데, 어쩐지 차마 떠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장경각에 이르자 퍼뜩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대들보 사이의 경(經) 상자를 가리키며 “저것은 내 전생사이다!” 하고는, 가져오게 하여 들여다보니 과연 「능가경」 이었으며 글씨체가 금생과 똑같았다.
한번은 그 경을 읽다가 “세간이 생멸을 떠난 것이 헛된 꽃 같은 일이며, 지혜는 유무가 있을 수 없어도 자비심을 일으킨다”고 한 대목까지 읽고는 마침내 자기 지견이 밝아졌다. 그리하여 게송을 지었다.

한 생각이라도 생멸이 있으면
천 가지 일이 유무에 묶이는데
신검의 칼끝을 가볍게 드는 곳에
쟁반 위의 구슬이 튀어나오네.
-念存生滅
千機縛有無
神鋒輕擧處
遂出走盤珠

만년에 이 경을 꺼내 소동파(蘇東坡)거사에게 보여 주면서 그 내력을 이야기하였더니, 소동파가 경 끝에 제(題)를 달고 그것을 비석에 새겼다.

기(祈)선사는 진주(秦州) 용성(龍城) 사람이다. 처음 천성사(天聖寺) 호태(晧泰)선사에게서 법을 얻고만년에 황룡 혜남(黃龍慧南)선사에게 귀의하였는데, 혜남선사는 스님이 바르고 투철하게 깨달았음을 보고 몹시 후대하여 전주(全州) 홍국새興國寺) 에 주지하게 하였다. 스님은 이곳에서 개당하여 마침내 혜남스님의 법을 이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산신이 나타나 말하였다.
“스님이 몹쓸 병을 만나면 이곳 인연은 다하는 것입나다.”
말이 끝나자 산신은 숨어 버렸다.
30년이 지난 뒤에 과연 문둥병이 걸려서 절 일을 그만두고 용성의 서쪽에 돌아와 작은 암자를 짓고 거기서 요양하였다.
스님에게 극자(克慈)라는 한 제자가 있었다. 오랫동안 양기 방회(楊破方會)스님에게 귀의한, 선림에서 뛰어난 사람이었다. 돌아와 정성으로 간호하였는데, 비 바람과 추위, 더위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 일생을 마칠 때까지 마을에서 걸식을 해와 봉양하였다.
하루는 스님께서 극자스님에게 말하였다.
“내가 천성사 호태(晧泰)스님에게 도를 얻었는데 만년에 황룡(黃龍)스님을 뵙고는 도(道)와 행(行)이 겸비함을 속으로 존경하여 법제자가 되었다. 그런데 반 평생 이런 몹쓸병에 걸릴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나. 그러나 지금은 다행히 그 죄 값을 다 갚았다. 옛날 신선들은 흔히 몹쓸 병으로 신선도를 얻었으니 그것은 아마도 티끌세상의 얽매임을 잘라 버리고 허유(許由)와 소부(巢父)의 풍모를 마음에 품었기에 전화위복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나도 이 몹쓸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어찌 오늘이 있겠느냐 이제는 머뭄도 떠남도 내게 달려 있어 머물고 떠남에 모두 자유롭게 되었다.”
마침내 큰기침을 한번하고 묵묵히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화장을 하니 신비한 향기가 들판에 가득하고 사리가 수없이 나왔다.

희안(希顔雪溪:연대미상)수좌는 자(字)가 성도(聖徒)이며 강직하고 과감한 성격이었다. 불법은 물론 다른 학문까지도 통달하였으며 품격과 절도로 스스로를 지켰다. 행각을 마치고 옛 초막에 돌아와 숨어살면서 세속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항상 문 닫고 좌선만 하니, 수행이 고결한 사람이 아니면 스님과 벗할 수 없었다. 명공귀인들이 여러 차례 몇몇 절에 주지로 모시려 했으나 굳게 거절하였다.
당시 참이(參已)라는 행자가 있었는데, 승려가 되고자 하여 스님을 시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님은 그가 승려 될 그릇이 못 됨을 알고 ꡐ석란문(釋難文)’ 이라는 글을 지어 물리쳤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들을 아는 데는 아비만한 사람이 없고, 아비를 아는 데는 아들만한 사람이 없다. 내가 보건대 참이(參已)는 승려 될 그릇이 아니다.
출가해서 승려가 된다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편안함과 배부르고 따뜻함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달팽이 뿔 같은 하잘 것 없는 명리를 구할 것도 아니다. 생사를 해결하는 길이고 중생을 위하는 길이며, 번뇌를 끊고 3계 바다를 벗어나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기 위한 것이다. 성인의 시대에서 멀리 떨어져 크게 허물어졌는데, 네가 감히 함부로 이런 일을 하겠다는 것이냐?˝
“「보량경(寶梁經)」에 말하기를 ꡐ 비구가 비구법을 닦지 않으면 대천세계에 침 뱉을 곳이 없다’ 하였고 「통혜록(通慧錄)」에도 ꡐ승려가 되어 10과(十科)에 들지 못하면 부처님을 섬겨도 백년 헛수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래서 어렵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나도 외람 되게 승려의 대열에 끼어 불도에 누를 끼치고 있는데 하물며 네가 하겠다는 것이냐?˝
“출가해서 승려가 되어 3승 12분교와 주공공자(周公孔子)의 도를 모른다면, 그는 인과에도 어두울뿐더러 자기 성품도 알지 못한 사람이다 농사짓는 수고도 모르고 신도들의 시주를 받기 어려운 줄을 생각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함부로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며, 재계(齊戒)를 파하고 범하여 장사를 차리고 앉아 부처를 팔아 먹는다. 도둑질, 간음, 노름으로 절 집을 떠들썩하게 하고 큰 수레를 타고 드나들면서 자기 한몸만을 아낄 뿐이니, 슬픈 일이다.“
“여섯자 몸뚱이는 있어도 지혜가 없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바보 중이라 하셨다. 세치 혀는 있어도 설법하지 못하는 사람을 부처님께서는 벙어리 염소중이라 하셨다. 또한 승려 같으나 승려도 아니고 속인 같으면서 속인도 아닌 사람을 박쥐 중 또는 민머리 거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능엄경(愣嚴經)」에 이르시기를 ꡐ어찌하여 도적이 내 옷을 빌려 입고 여래를 마구 팔아 온갖 죄업을 짓는가. 세상을 제도하는 나룻배가 아니라 지옥의 씨앗일 뿐이다. 이런 사람은 설사 미륵이 하생할 때가 되어 머리를 내밀고 나올 수 있다해도 몸은 이미 쇠우리 안에 빠져 온갖 형벌의 아픔이 하루아침 하룻저녁이 아닐 것이다’ 하였다.˝
“지금 이런 자들이 백천, 혹은 만이나 되는데, 겉으로 승려의 옷만 걸쳤을 뿐, 그 속을 까놓고 말해보면 승려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소위 솔개의 날개를 달고 봉 울음을 운다 하는 것이다. 이들은 길에 굴러다니는 돌이지 옥(玉)은 아니며, 풀 무더기 속에 우거진 쑥대지 설산(雪山)의 인초(忍草)는 아니다.˝
“나라에서 승려에게 도첩(度牒)을 주는 것은 본래 복을 별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부역을 면제받는 것을 따지면서 승려에게 평민이 되라하며, 그렇게 안하면 우리 승려들에게 심한 푸대접을 하고 있다.˝
“오직 지난 날 육왕 회련(育王懷璉) 영안설숭(永安契嵩) 용정 원정(龍井元淨), 영지 원조(靈芝元照) 같은 분은 한 마리 여우 털처럼 빛나는 보배라 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 양가죽같은 보잘것없는 자들이야 말할 가치가 있겠는가.
“아! 불교가 오늘날처럼 더렵혀진 적은 없었다. 이런 말도 지혜로운 이와 할 수 있을 뿐. 속인들과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1 ) 허유와 소부 : 요(堯) 임금이 허유에게 왕의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하니, 허유는 더럽다 하여 거절하고 영수(領水) 의 양지쪽에 있는 소부를 찾아가 그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소부는 귀가 더럽혀졌다 하여 물가에 가서 귀를 씻었다.
2 ) 달팽이 뿔 : 莊子에 나오는 우화. 달팽이 뿔 위에서 蠻氏國과 觸氏國이 다투어 수만의 희생자가 생겼다는 이야기로서 보잘 것 없는 명리나 소유욕을 두고 다툼을 비유한 말이다.
3 ) 십과 : 飜譯, 解義, 習禮, 明律, 感通, 遺身, 讀誦, 護法, 興福, 雜科
4) 육왕 회련(育王懷璉) : 운문종 늑담스님의 법제자 송나라 인종(仁宗) 황제의 존경을 받아 왕에게 불법을 설하고 대각(大覺)이라는 호를 받았다.
5) 영안 설숭( 1OO7 ~ lO72) : 운문종 효총스님의 법제자 「輪敎編」을 저술하여 陣門 의 계통을 밝혔고, 「原敎誠」을 지어 爛佛 -致를 주장하면서 한퇴지의 배불론을 반박하였다.
6) 영지 원조( ? ~ 1116) : 律과 천태교관을 배워 강론하면서 여러 종파의 학문을 두루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