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연기법은 우주 모두를 포함시키는 진여연기
연기법은 법계연기(法界緣起) 또는 진여연기(眞如緣起)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진여는 참 진(眞)자 같을 여(如)자 입니다. 진리라는 말입니다. 일반인들은 진리라 하지만 불교에서는 진여라고 합니다. 진여 또는 진리란 우주의 생명 그대로의 여실하고 참다운 이치란 말입니다. 우주의 참다운 생명인 진여는 그냥 보통 이치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동하는 생명이기 때문에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도 합니다. 진여는 보통 이치적으로 우주의 원리 또는 우주의 도리라고도 하지마는, 그 진리는 또 하나의 우주생명이기 때문에 불성이라는 말을 합해서 진여불성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연기법 가운데 진여연기는 대승적인 인연법입니다. 우리 중생이 알고 모르고에 상관없이,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우주는 항시 그 진리, 즉 우주의 원리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거나 또는 누가 우리한테 베풀어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모르고 상관없이, 어떤 성자가 나오고 안 나오고 상관없이, 우주의 진리는 항시 우주의 도리 그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 도리가 진여불성 또는 진여연기의 도리입니다. 진여연기라는 것은 우주의 근원적인 진리이고 우주의 생명존재를 그대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도 진여불성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나 삼계제천(三界諸天)의 욕계에 있는 천상이나 우주에 충만해 있는 모든 보살들 또는 삼천대천 세계에 두루 있는 부처님들도 모두가 다 진여불성 가운데에 들어 있습니다.
아무리 미세한 것 속에도 다 진여불성이 들어 있어...
진여불성이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봐서 한도 끝도 없이 유구한 생명체이고, 거기에 들어 있는 공덕으로 봐서는 만공덕(萬功德)의 자리입니다. 그런 공덕이 들어 있는 자리, 자비로운 기운, 지혜로운 기운, 모두를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그런 공덕이 들어 있는 자리가 진여불성 자리입니다. 진여불성, 이것은 바로 우주의 생명이고 모든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세한 것 속에도 다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법성게(法性偈)」를 외우시는 분이 있겠지요.「법성게」가운데는 하나하나의 가운데에 전체가 들어 있고 또는 전체 가운데에 하나가 들어 있어 우주가 조금도 어긋남 없이, 어떤 충돌이나 마찰 없이 모두가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중생은 겉만 보기 때문에 잘 못 느끼지만 근본자리에서 본다면 우주의 생명은 하나의 생명인데, 하나의 생명 위에서 그때그때 인연 따라서 모양만 천차만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여불성이라는 그 자리, 그 도리로 본다면 어느 것도 진여불성으로 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곤충이나 병균이나 모두가 다 진여불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진여불성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 그런 차이만 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 공부를 할 때 참선도 하고 염불도 합니다. 그 참선과 염불이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부처님 법은 덮어놓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으십니다. 부처님 법은 실제로 우리 몸에나 마음에 유익하며 재미도 있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깊어지는 것입니다. 진리는 이론적으로만 안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또한 만공덕을 갖춘 자리가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의 길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면 나아간 만큼 우리 행복도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인연 따라 잠시간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진여불성은 만중생의 근본자리인 동시에 바로 우리 인간성의 본질입니다. 우리 인간이 고통스러워하는 원인은 자기 정체성, 자기 본질을 모르는 데 있습니다. 자기 본질을 왜 모르는 것인가? 그것은 허망한 것에다 자기를 묶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보고 거기에 매여버리기 때문에 자기를 구속시키고 자기 본질도 모르며, 자기 본질을 모르니 불행하단 말입니다. 우리가 몸만 두고 볼 때도 개인에게는 몸뚱이가 중요하지만 사실은 이런 몸뚱이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렇게 사실이 아닌 몸뚱이 하나를 잘 간수하고 꾸미기 위해서 남과 싸우고 턱없는 욕심을 내고 더러는 남을 죽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모두 자기 몸뚱이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기 몸뚱이는 어떠한 것인가? 몸뚱이를 바로 안다면 허망한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우리 몸뚱이나 눈에 보이는 모두가 다 허망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 중생은 허망한 것을, 있지 않은 것이 허망한 줄을 모릅니다. 실제로 이 몸뚱이를, 그야말로 금쪽 같은 몸뚱이를 과거나 현재는 물론 죽어서까지 그대로 가지고 간다고 몽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만 보더라도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럴 수 없는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 중생입니다. 몸뚱이, 이것이 인연생입니다. 인연 따라서 잠시간 있는 것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지금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뚱이나 만유가 다 변화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모두가 실존적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뚱이는 우리 중생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상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제법공(諸法空) 또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말씀이 불교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은 부처님께서 비유로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로 비었으니까 비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공(空)이니까 공이라 하신 것입니다. 정말로 '공'인 것입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전체 뜻이 제법공입니다. 색즉시공은 물질이 다 비었다는 뜻입니다. 내 몸뚱이가 물질이고 사방이 물질인데 물질이 공이라고 하면 우리가 사는 보람이 무엇인가 할 수도 있지만, 참으로 물질은 비었습니다. 물질은 실제적으로 고유한 물질이 될 수 없습니다. '있는 것같이 보이는 것'이지 사실은 있지가 않습니다. 그때그때 순간순간 찰나찰나 변화무상합니다. 자꾸자꾸 이렇게 변화되고 바뀌어지는 것을 우리 중생은 그대로 있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태어나서 이렇게 온갖 물질에 집착하고 권력이나 재물에 집착하다가 끝나버리면 우리는 금생에 지은 업 따라서 틀림없이 지옥에도 가고 축생계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누구나 성자가 될 수 있는 불교공부
인간으로 온다는 것도 참 소중합니다. 몇만 대 일 정도로 아주 희귀하게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소중한 인생을 우리가 그렁저렁 살지 않으려면, 말씀드린 대로 내 몸뚱이도 허망한 것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실제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느끼고 실천해서 그 자리에 이르셔야 합니다. 철학 가운데 실존철학이 있습니다. 철학자들도 실존은 무엇인가, 실제로 존재하는 참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평생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그 성과를 책으로 펴냅니다. 그러나 사실 이론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론이란 것은 불교말로는 간혜지(乾慧地)라, 마를 간(乾)자 지혜 혜(慧)자, 바싹 마른 지혜란 말입니다. 깊은 명상으로, 선정으로 바뀌어져야 우리 생각이 변화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이론만으로는 절대로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불자님들은 지극히 행복한 분들입니다. 우리 범부의 마음을 바꾸어서 성자가 되는 공부를 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성자가 되는 불교공부는 지식이 있으면 좋지마는 없다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마음이 있는 존재는 누구나 성자가 될 수 있는 공부가 불교공부입니다. 많이 배워가지고 자꾸만 분별하고 따지면 마음이 정화되지 않고 분별시비만 하다가 끝나버립니다.
우리 마음이 바로 부처고, 하느님이라
진여불성으로 해서 이 세상에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진여불성이라는 보배가 우리 마음에는 온전히 들어 있습니다. 진여불성이 들어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서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사실, 무엇이 많이 있으면 진여불성이라는 우리 보배를 닦고 빛나게 할 겨를이 없습니다. 실제로 자기 주변이 간편하고 무엇이 없으면 자기 마음을 닦는 기회가 훨씬 많아집니다. 그래서 그 기회를 갖고자 집을 떠나서 출가도 하고 신부도 되고 수녀도 되는 것입니다. 뜻은 모두가 다 하나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서 하느님 곁에 가까이 가려고 그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불교로 말하면 부처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느님 부처님은 표현만 다르지 뜻은 다 똑같습니다. 모두 우주의 참다운 진리란 말입니다. 우주의 참다운 진리를 우리는 바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누구 중개자가 들어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바로 부처고 우리 마음이 바로 하느님인지라, 우리가 마음을 닦고 깨달으면 그 속에 부처님 하느님이 다 들어갑니다. 천지우주라는 것은 하나의 진리이기 때문에 부처님이나 하느님이나 모두가 다 하나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이 천지우주가 모두 다 진여불성뿐이다, 하나의 진리다, 부처님 자리다, 하느님 자리다, 이렇게 믿는 것이 대승의 인연법입니다. 진여연기는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도리입니다. 우리 인간의 소중한 마음이 바로 진여연기의 도리 속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주라는 것은 이것이나 저것이나 하나의 도리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 가운데 저것이 있고 저것 가운데 이것이 있습니다. 불교의 전문술어로 말하면 입아아입(入我我入)이라, 저것이 나한테 들어 있고 내가 저것 속에 들어 있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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