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전법의 정통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1:35

“진실로 청정한 삼매”

 

 

‘숨음과 드러남의 법’ 부촉하니

미혹깨침 같지도 다르지도 않아

 

평하여 말한다. 당나라의 신청불희 선사는 그 저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전법은 현성들 가운데서 저 가섭 등과 같이 성문에게로 전해졌다. 그들은 회심은 했지만 지혜가 모자란데, 그러니 어찌 불심인을 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삼매는 진실로 청정한 것이다. 그런데 애욕과 악의를 지닌 사람들이 성인의 삼매를 어찌 알겠는가. 만약 전법자가 비록 성문의 가르침을 드러내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을 어찌 성문이라 하겠는가. 그리고 어찌 응화불이 화현한 바 아라한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부처님께서 화현하여 구비한 사선의 삼매와 무량한 공덕은 여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여래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의 심인을 전했다는 것이야말로 어찌 거짓이겠는가.”

 

위는 송대 설숭의 〈전법정종기〉 권2에 나오는 내용을 간추린 것으로 참 복잡하다. 내용의 이해를 위하여 먼저 그 배경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인도의 제11대 조사인 부나야사가 마명보살을 만나 전법하는 장면이 소개되는데 그 부나야사의 전법게송은 다음과 같다.

 

미혹과 깨침은 숨음과 드러남과 같아 (迷悟如隱顯)

밝음과 어둠 애초 분리되지 않았다네 (明暗不相離)

이제 숨음과 드러남의 법을 부촉하니 (今付隱顯法)

미혹과 깨침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네 (非一亦非二)

 

이에 대하여 당대의 신청불희는 그의 〈북산록〉 권6에서 ‘부나야사의 전법은 현성들 가운데서 저 가섭 등과 같이 성문에게로 전해졌다. 그들은 회심은 했지만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에 어찌 불심인을 전할 수 있겠는가’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 평가에 대하여 송대의 설숭은 신청불희를 다음과 같이 혹독하게 비판한다.

 

“이것은 선자들을 비방하는 것으로서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세속의 어중이떠중이의 말을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 참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함부로 평가하였으니 미친 소리일 뿐이다. 후인들이 따라 배울까 염려된다. 이에 나 설숭은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것일 뿐 팔이 안으로 굽는 격이 절대 아니다. 무릇 만사는 이치가 근본이 되고 흔적은 지말이 된다. 그래서 근본에 통하면 도리를 터득하지만 지말에 구속되면 도리를 상실해버리고 만다.”

 

신청불희는 일찍이 사천성에서 크게 선풍을 거양한 신라의 정중무상의 제자였다. 그래서 신청은 무상의 선풍에 대해서는 극구 찬탄을 하면서도 그와 법계가 다른 소위 혜능의 남종에서 주장하는 인도의 조사들에 대해서는 위의 부나야사에 대한 내용처럼 비판을 가한다. 이에 혜능의 남종을 정통으로 계승했다는 설숭이 신청불희를 다시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부분적으로 생략된 부분이 많아 전체적인 맥락이 흐트러져 있다. 이에 설숭은 〈능가경〉에서 말하는 3종의 아난을 인용하여 아난이 일찍이 성문나한으로 응화불의 가피를 입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경우 성문은 삼승 가운데 하나인 성문승의 의미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육성을 통해 설법을 들었다는 의미의 성문이 있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것은 후자의 의미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설숭은 〈부법장인연전〉의 내용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적에 상나화수가 우바국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의 삼매는 벽지불이 알지 못하고, 벽지불의 삼매는 성문이 말지 못하며, 모든 대성문의 삼매는 그 밖의 성문이 알지 못한다. 또 아난조사의 삼매는 나도 지금 알지 못하는데 내 삼매를 그대가 어찌 알겠는가.’

 

이로써 설숭은 전법에 대한 정의와 속성과 공능을 설명하여 신청불희의 평가가 참으로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바로잡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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