話頭·參禪

[종호스님의 참선강좌] 중국의 수행법 (8) - 묵조선 ② [마지막편]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21:21
[종호스님의 참선강좌] 중국의 수행법 (8) - 묵조선 ② [마지막편]
 
깨달음 얻기 위한 수단 아닌,
좌선 자체가 깨달음을 상징.

묵조의 수행은 본래 깨달아 있기 때문에 새롭게 증득할 것이 없으며, 따라서 수행과 증득이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 있다. 본증(本證)의 자각이며, 수증불이(修證不二)인 것이다.

그러면서 강조되고 있는 것이 좌선이다. 천동여정은 이를 지관타좌(只管打坐)라 하고 있는데, 지관은 ‘오직 한 길’, 타는 강조, 좌는 좌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직 성성적적한 마음으로 여여하게 좌선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기에는 어떤 수증론도 깃들어 있지 않다. 물론 묵묵히 묵좌(默坐)함을 강조하는 이런 것으로 인해 대혜로부터 활발발한 선의 세계가 없다고 하며 묵조사선(默照邪禪), 혹은 사구선(死句禪)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굉지정각은 또한 이런 묵조선을 현성공안(現成公案)이라고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으며 현재에도 계속성을 가지고 있는 분명한 법칙,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 하나가 이미 완전한 불법의 세계로 구현되어 있고 현상세계 모두가 불도(佛道) 아님이 없기 때문에 삼매를 현전시키려 애쓰거나 혹은 화두를 들고 타파하려는 노력도 필요없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모든 세계가 그대로 부처의 세계요, 부처의 상태와 같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대로 합일하기만 하면 된다는 내용이다.

이런 묵조의 수행형태는 일찍이 달마의 어록에서부터 보이고 있다. ‘법신불에 의거해서 수행한다면 열반을 찾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법신 자체가 곧 열반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열반에서 열반을 찾을 수 있겠는가. 또 그대는 법을 찾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그대 마음이 이미 진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진리의 세계에 있으면서 진리를 찾으려 하는가.’

또한 이후 4조 도신이 제불의 법신은 일체중생의 마음 속에 들어 있다고 하며 시심시불(是心是佛)을 설한 것이나, 마조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나 즉심시불(卽心是佛) 및 여러 조사들의 가르침도 이와 연결되어 있다. 곧 근원적으로 본래 부처요, 현재의 모습 또한 부처의 세계라는 것이며, 이것이 선의 기본 원리를 이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전의 원리를 계승하고 있는 것은 묵조이다. 다만 간화선과의 차이라면 간화선이 미(迷)의 부분을 인정하고 화두의 타파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방식이라면 묵조는 본래 깨달아 있음을 자각하고 좌선으로 합일하고자 하는 형태에서 다름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묵조에서의 선수행이란 부처를 이루기 위한 수행이 아니라 좌선행 그 자체가 그대로 부처, 좌선 그대로가 깨달음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묵조의 좌선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좌선 그 자체가 완결된 깨달음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다.


[ 출처: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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