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書狀)

서장대강좌26/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12. 14. 14:12
 

 

서장 대 강좌 6- 4 강

 

p. 112

  이 때문에 口業(구업)을 아끼지 않고 힘써 이런 폐단을 구제해 왔더니, 구업을 아끼지 않고.

대혜스님이 엄청 욕을 많이 했거든요.

욕이란 욕은 다 쏟아 부어 가면서 그 사람들의 폐단을 구제해 왔더니,

지금은 그릇됨을 아는 사람이 조금 생겼습니다.

만약 바로 알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이 한 생각을 홀연히 단번에 타파해야 바야흐로 생사를 통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라 이름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마음을 가지고 타파하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이것이 “타파한다.”고 부득이 해서 이런 표현을 했지, 그렇다고 해도 마음을 가지고 ‘언제 타파할까?’ ‘언제 타파할까?’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이겁니다.

그럼 그것도 역시 돌로 풀을 누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마음을 어디 한 곳에다 잡아매는 것과 같은 겁니다.

 

  만약 마음을 가지고 타파하려고 하면 영원히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벌써 망상이니까요.다만

   妄想顚倒(망상전도)의 마음과

   思量分別(사량분별)의 마음과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과

   지견으로 아는 마음과

   고요한 것을 기뻐하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일시에 내리 누르십시오.

다만 내리 누른 곳에 나아가 화두를 드십시오.

여기에 내리 누른다.

이런 표현을 써서 앞에 부정적으로 말했던 돌로 풀을 누르는 것과 같이 이렇게 우리가 얼른 생각할 수가 있는데요.

이것. 별별 망상 다 있잖아요.

 

  가정사라든지 세상일이라든지 이해관계라든지 과거에 안 좋았던 생각이라든지, 이런 것을 제쳐놓고, “제쳐놓고”라는 이것이 참 좋은 표현인데요.

제쳐놓고, 그것 따라가지 말고, 바로 화두만 챙겨버리면 그것이 일시에 사라져버립니다.

그것을 다 쓸고 비우고 담는 것처럼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망상부터 제거해야 화두가 되지, 망상도 제거하지 못하고 어떻게 화두가 되느냐? 이것 정말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망상위에 화두 갖다 놔 보세요.

  망상위에다가 화두 갖다 놔 보시라고요.

그러면 예를 들어서 누가 “미워한다.” “사랑 한다.”는 이 감정이 제일 아주 무서운 감정 아닙니까? 미워하고 사랑하는 감정위에다가 화두를 하나 갖다 놔 보세요. ‘내가 미워하고 사랑하는 이 마음이 뭘까?’ ‘뭐가 들어서 내가 저렇게 미워할까?’ ‘뭐가 들어서 저 사람을 저렇게 내가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 사랑하는 마음의 當體(당체).

사랑하는 마음의 그 實體(실체)가 무엇일까?’

이렇게 들어가면 사랑이고 미움이고 그것은 어느새 없어져 버립니다.

‘무엇일까? 사랑하는 마음의 실체가 무엇일까?’라는 그것만 남게 된다고요.

사랑하는 마음을 다 쓸어 내놓고 ‘무엇일까?’가 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하는 그 외의 다른 것은 저절로 다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절대 망상 쓸어내고 화두 챙긴다고 하지 말고, 망상 아랑곳 할 것 없이 망상위에서 화두를 챙기세요.

그러면 저절로 그것은 쓰러져 버립니다.

왜냐? 망상은 실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망한 것입니다.

없는 것이라고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괜히 환영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지 실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하는 것 같으면 그게 안 되지요.

절대 그렇게 안 되지요.

환영입니다.

어떤 좋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도 전부가 환영이라고요.

幻 影(환영).

환영은 환영이기 때문에 금방 쓰러져 버립니다.

그 마음의 원리가 이렇게 신기한 것입니다.

 

다만 내리 누르는 곳에 나아가 화두를 드십시오.

내리 누른다고 해서 정말 힘으로 내리 누르는 것이 아니겠지요.

바로 그 위에다가 화두를 한 번 끌어와 봐.

그러면 그런 것이 저절로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환영이기 때문에, 실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p. 113

  無자 화두를 드는 법입니다.

이제 제대로 들어갑니다.

저 앞에서도 있었습니다만, 잘 들으세요.

집에 가서 한번 해 보세요.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묻기를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하니, 조주가 대답하기를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은요.

불교적인 상식이 바탕이 된 위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왜냐?

불교적인 상식이란 有情無情(유정무정)이 皆有佛性(개유불성)이다.

“다 불성이 있다.” 그러거든요.

그런데 “개가 불성이 없다.” 이것은 개는 거의 사람에 가까운 동물인데 유정무정이 다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개가 불성이 없다니 이것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입니다.

 

  우리가 정말 이런 문제에 관심을 아주 많이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서부터 숨이 꽉 막혀버립니다.

‘없다?’ 이제 이 사람은 오도 가도 못하는 겁니다.

“없다”는 그 말에 그만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버려야 된다고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버려야 됩니다.

 

  이 한 글자는 허다한 나쁜 지식과 생각을 꺾는 무기입니다.

그렇지요. ‘없다?’걸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얼마만치 그 문제에 심혈을 기울여 왔는가에 달렸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지금 이거 아무리 이렇게 해봤자조주스님이 개가 불성이 없다고 했는데?’ ‘개가 불성이 없다고 했는데?’ 그리고는 딴 생각 실컷 하다가 ‘개가 불성이 없다고 했는데?’ 놀이 삼아 ‘개가 불성이 없다고 했는데?’ ‘아, 그 개? 어떤 종교에서는 개고기 좋아하는 성직자도 있다는데’ 하면서 이런 생각으로 그냥 흘러간다고요.

하하하 그렇게 됩니다.

이것이 다 저의 경험에서 나온 소리입니다.

  ‘그 전에 키우던 개가 참 괜찮았는데’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쪽으로 그렇게 흘러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약으로 치면 재탕 3탕 4탕 5탕 6탕,

완전히 초 탕도 효과가 있을까 말까한데 5탕 6탕,

이것이 1000년 전 이야기니까 지금은 도대체 몇 탕입니까?

정말 그렇게 되는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이것은 死句(사구)입니다.

죽은 화두입니다.

그런데 아까 제가 말했듯이 정말 불교적인, 불성에 대한 상식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처음 들었다면, 趙州古佛(조주고불)이라.

옛날 부처라고까지 추앙 받는 훌륭한 인물이다.

이것은 부처의 길로 가야 되느냐?

조주의 길로 가야 되느냐?

 

  ‘부처님은 있다고 했는데 조주스님은 없다고 했다.

’ 여기에 지금 세상이 무너지고, 대통령이 어느 놈이 되든지 뭐가 어떻게 되든지 여기는 아무것도 붙을 겨를이 없는 자리입니다.

제대로 여기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래야 된다고요.

화두는 제대로 되려면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초 탕입니다.

먹으면 바로 죽습니다.

숨이 꽉 막혀버립니다.

이해하시겠지요?

전 번에 제가 그런 이야기 했지요?

  1억짜리 수표를 금방 여기다 딱 뒀는데, 웃을 착 걸쳐 입고 돌아보고 주머니에 넣으려고 했는데 없어졌다 이겁니다.

들어온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바람도 불지 않았습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지요.

거기에 출근이고 뭐고, 식구고 뭐고 떠오를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그 어떤 중대한 사항이 앞에 놓여있다손 치더라도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지요.

배탈이 났더라도 지금 설사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 1억짜리가 금방 없어졌는데 언제 다른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올 스톱입니다.

이렇게 들어가면 3일이면 끝나고, 길어야 7일. 정 시간이 많이 걸리면 9순해서, 90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만 들어간다면 안 그렇겠습니까?

3일까지도 갈 것 없지요.

이것이 그렇게 해서 깨닫는 방법이 있는데요.

 

  지금 사람들에게 그것은 무리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부탁하고, 그런 식으로 이 간화선법을 몰고 가는 것은 절대 무리입니다.

전부 앉아서 염불하듯이, 염불은 그래도 북이나 치고, 소리라도 고성염불, 밤새도록 계속 “나무아마타불” 부르지요.

철야정진 하면서 계속 졸다가 ‘개가 불성이 없다는데?’ 하고, 잠꼬대처럼 몇 번하고는 또 앉아서 졸고, 그러다가 그냥 몇 시간 다 마쳐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북치면서 염불하는 것보다도 못하다고요.

그런데 만약에 한다면 아까 이야기 했듯이, 1억짜리 수표를 잃어버린 절대의 그런 기분으로, 또 불교적인 상식이 가득 있는데 불성이 없다고 했으니 정말 살아 있는 부처가, 살아 있는 부처인 조주스님이 없다고 했으니, 이것이 청천벽력이 아니냐 이겁니다.

 

  순수한 사람들이 공부가 잘 됩니다.

세상이 복잡한 사람들은 이리저리 자기 지식이 동원이 되어서 어려워요.

요즘 사람들은 지식이 옛날 공자 맹자 시대보다도, 백배 천배 더 많습니다.

정보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아주 어지러워요.

그러니 쉽지 않다고요.

그런 식 공부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그런 식 공부”라고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꼭 “그런 식 공부”라야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러나 간화선은 “그런 식 공부”입니다.

 

  그래서 여기 주의를 無字十種病(무자십종병)이라고 8가지를 소개를 했는데, 이것은 크게 귀담아 들을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무자 화두를 제대로 해서 공부가 깊이 들어간 사람들이 병이 있지, 공부도 아니한 사람이 무슨 병이 있습니까? 허허허허허허허허~~~~~~~~~~~~ 아니, 테니스 안치는 사람에게 테니스 치면 손목에 무슨 병이 온다하고 주의하라고 하고 별별 병을 나열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요는 잘못 하더라도 공부를 일단 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쨌거나 이런 것도 한 번 살펴봅시다.

 

   ‘있다, 없다’는 분별을 하지 말며,

   道理(도리)에 대한 분별을 하지 말며, 무자에 대한 어떤 이치입니다.

   의식[意根]을 향하여 분별하지 말며,

   눈썹을 치켜들고 눈을 깜짝이는 곳을 향하여 뿌리내리지 말며,

   말길을 따라 살 계획을 짓지 말며,

   일없는 소리에 머물러 있지 말며,

   話頭(화두) 드는 곳을 향하여 깨달으려 하지 말며,

   문자 속을 향하여 인용하여 증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無字화두의 십종병 이라고 합니다.

8가지가 소개되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시는 분은 이것을 참고 하시고, 공부 안하는 분은, 특히 無字화두 안하는 분은 필요 없습니다. 하하하~~~~~

다른 화두 하는 분들은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다만 하루 생활 속에서 항상 參究(참구)해 가기를,  “개도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고 한 것을 日用(일용)에서 여의지 아니하고 공부해 나가면 일용이 뭡니까?

우리 일상생활이지요.

공무원은 공무하고, 사업하는 사람이면 장사하고, 주부들은 살림살이 살고, 빨래하고 밥 짓고 청소하고 하는 그런 일들이 일용입니다.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고 공부해 나가면언젠가는 문득 스스로 보게 될 것입니다.

빨래 치대면서 “無 라” “無 라” “無 라” 이렇게 하면서 한 본 해보세요.

그것 할 만 해요.

괜찮아요. 

 

  그러면 그렇게 될 것 같으면 한 군내 천리의 일이 모두 서로 방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공무원이니까요.

아마 이 사람이 군수쯤 되는 모양이지요?

군수라고 치면 그 군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것 하고, 이 도 닦는 것 하고 전혀 방해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일이 그 일이니까요.

그 일이 그 일이니까요.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나의 이속은 살아있는 조사의 뜻이라 무슨 물건이 있어 능히 그를 얽어매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일용을 떠나서 따로 구하는 것이 있으면,

잘 들으십시오.

일상생활을 떠나서 빨래하고 밥 짓고 청소하고 사무보고 운전하고 하는 이것을 떠나서 따로 구하는 것이 있으면,이는 波濤(파도)를 떠나서 물을 구하는 것이며, 우리의 일상생활은 파도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파도치는 그것이 물입니다.

물결치는 그것이 물이라고요.

한 번 떠보세요.

“출렁” 하고 올라오는 것을 탁 떠보세요.

그것이 뭔가... 물이지 뭡니까?

  우리가 막 그냥 감정이 표출해서 옳으니 그르니 하고, 열심히 일하고 하는 그런 마음 씀씀이.

그것 한 번 탁 잘라서 보세요.

청소하는 마음이라고 합시다.

자, 청소 열심히 한다.

청소하는 그 마음 탁 잘라서 보세요.

뭔가... 역시 나입니다.

역시 나라고요.

역시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나니까요.

물결을 딱 잘라서 봐도 물입니다.

조용한 물이나 물결치는 물이나 같은 물입니다.

우리의 고요한 마음이나 출렁거리는 빨래하고 밥 짓고 하는 그 마음이나 같은 마음입니다.

같은 나라고요.

 

  파도를 떠나서 물을 구하는 것이며, 金器(금기)를 떠나 금을 구하는 것입니다.

금 그릇을 떠나서, “아, 이것은 금으로 만든 컵이야.” “아니, 나는 컵이 아니고 금.

금이 필요하다.”고, 그러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와 같은 것이다 이겁니다.

금으로 만든 그대로 금이지요.

불상을 만들었으면 불상 그대로가 금이고요.

반지를만들었으면 반지 그대로가 금이지요.

그래 금반지. 금 컵. 금불상 그러잖아요.

외형을 보지 말고 금을 봐야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사기를 치든지 어디 가서 선행을 하든지, 사기 치는 그 놈도 부처요.

선행 하는 그 놈도 부처입니다.

그 능력. 그 자체가 부처입니다.

 

  전번에도 말씀드렸지요?

우리가 불상을 조성해놓고 점안할 때 늘 하는 것.

전단나무로 불상을 만들기도 하고 보살상을 만들기도 하고 나한상을 만들기도 한다.

그 조각 하다보면 버리는 나무 조각들이 얼마든지 많지요.

버리는 나무 조각이나 불상이나 맡아보면 똑 같이 전단향기가 납니다.

이야기 다 한 것 아닙니까?

이야기 다 한 것.

버려버린 전단나무 조각도 전단향기가 나고, 불상도 똑 같이 전단향기가 납니다.

보살상을 만들어도 전단향기가 나고, 거기에 생선을 조각해놔도 생선냄새가 안 나고 전단향기가 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공무 집행하고, 자기 맡은 소임을 열심히 하면서, 열심히 사는 그 당체가 바로 진리이고 도이고 부처라고 하는 사실.

이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제 이야기 같으면 여러분들이 안 믿겠지요.

간화선의 대 종장. 대혜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얘야, 이것은 컵이지 금이 아니야”하고 제가 거부하고 “금 가져오너라.”하고 따로 구하면 구할수록 더욱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금반지를 가져 오니까 “반지 말고 금말이야.” 금불상을 가져 와도 “불상 말고 금 가져오라.”고 했지 않느냐고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야~ 이것 참 불교설명 다 했습니다.

이것 선불교설명 다 된 겁니다.

우리 사회생활과 공부가 결국 둘이 되어서도 안 되고, 본래부터 둘이 될 수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 달리 다른 것을 찾지 말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

 

스님의 답변만 정리 했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무수히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기로 하면, 다 할 수가 없고, 이런 자리에서는 깊이 있게 이야기할 소재도 못 되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불교에 관심을 갖고 왜 지금 간화선인가?

라는 이런 주제 하에서 우리가 모였다면, 이제 그런 세상사는 일단 접어놓고, 또 세상사에 끄달리던 마음이 너무 끓어오르고 분노 스럽지만, 또 거기에 도대체 스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가서 여럿이 추종을 하고 동조를 하고 같이 그렇게 한다는 이런 사실들.

 

  참, 보살님(질문자) 심정을 제가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이 마당에서는 그런 것. 저런 것 다 덮어버리고, 그야말로 인생의 高手(고수)들끼리 모여서, 그런 것 다 하찮은 일들.

정말 ‘下手(하수)들이나 하는 일들이다.’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본다면 상당히 그것이 우리 인생에 소득이 있지 않을까?

다 뭐 그러니까 승복 입었다고 다 저 같이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하하~~~~~~

 

   - 6강 終 -

'서장(書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장대강좌28/무비스님  (0) 2007.12.28
서장대강좌27/무비스님  (0) 2007.12.28
서장대강좌25/무비스님  (0) 2007.12.14
서장대강좌24/무비스님  (0) 2007.11.28
서장대강좌23/무비스님  (0) 2007.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