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둔하던 기봉이 날래지다 / 법운 고 (法雲曠) 선사
법운 고 (法雲 曠) 스님은 여러 스님 문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원통 기 (圓通圓璣:1036~1118) 도인의 회하에 이르렀다. 방장실에 들어가니 원통도인이 화두를 거량하였다.
ꡒ조주스님이 투자 (投子大同:819~914) 스님에게, 크게 죽은 사람이 문득 살아날 때는 어떠냐고 묻자, 밤길을 걷게 할 수는 없으니 동이 트거든 찾아오라고 대답하였다.ꡓ
원통도인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고스님은, 은혜가 커서 갚기 어렵다고 답하였고, 원통 도인은 그를 매우 칭찬하였다. 그 후 며칠이 지나 그를 입승 (立僧) 으로 천거하여 불자를 잡고 설법하게 하였는데 고스님은 기봉 (機鋒) 이 둔하여 온 법당이 웃음바다가 되자 부끄러운 빛이 역력하였다. 그 이튿날 특별히 대중을 위하여 다회 (茶會) 를 열었는데 상 위에 다구 (茶具) 를 벌여 놓고서도 부끄러움 때문에 처신할 바를 몰랐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구를 건드려 엎어 버리니 표주박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툭 툭 툭 몇번을 뛰자 화두에 답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그후엔 기봉이 빠르고 날카로워 감히 당할 수 없었다.
그 후 다시 진정스님의 회하에 가서 조사의 게송을 보게 되었다.
마음은 허공계와 같아서
허공과 같은 법을 보여주니
허공을 깨쳤을 때
옳은 법도 그른 법도 없다네.
心同虛空界 示等虛空法
證得虛空時 無是無非法
이 게송을 보고서 활짝 크게 깨쳤다. 뒷날 세상에 나아가 주지가 되었을 때 법당에 올라 소참법문을 할 적이면 으레, ꡒ나는 소성 (紹聖) 3년 (1096) 11월 21일 마음 선 〔方寸禪〕 을 깨달았다ꡓ고 하였다.
또 이런 말을 하였다.
ꡒ나는 희령 (7寧) 3년 (1070) 에 승적을 봉상부 (鳳翔府) 에 올렸는데 그 당시 화산 (華山) 18주 (州) 를 모조리 함락시켰다. 너희 가지 〔茄〕 와 표주박과 같은 놈들이 어떻게 이 일을 알 수 있겠는가?ꡓ
칙명으로 법운사 (法雲寺) 의 주지가 되었을 때 개당하는 날, 황제가 하사한 향을 가지고 찾아온 사신이 어록을 바치도록 요구하였다. 당시 홍 각범 (慧洪覺範) 스님이 그 회하에 있었는데 시자더러 그를 청하여 어록을 엮도록 하면서 ꡒ이 노화상의 참모습을 보라ꡓ고 하였다. 각범스님이 어록을 편집하여 바치자 다 읽은 후 각범스님에게 말하였다.
ꡒ만일 생사를 해결하는 선을 구하는 일이라면 내게 돌릴 것이려니와 이와 같이 꽃을 꺾어 비단 족자를 만들고 사륙체 (四六體) 의 문장으로 아름다운 말을 펴는 일이라면 반드시 우리 홍형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ꡓ
법운스님은 평소 기개가 여러 선림을 압도하여 세속의 무리를 마치 어린아이 쓰다듬듯 하였으니 그가 깨친 경지가 남보다 훨씬 앞선 데가 있기에 감히 그럴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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