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30년을 화주하다 / 혜연 (惠淵) 수좌
홍주 (洪州) 봉신현 (奉新縣) 의 혜안사 (慧安寺) 는 산문이 길 옆에 있어서 황룡사 (黃龍寺) ․늑담사 (潭寺) ․동산사 (洞山寺) ․황벽사 (黃岫寺) 등지로 오가는 납자들이 모두 거쳐 가는 곳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주지 자리가 비어 있어 홍주 태수가 보봉사 (寶峰寺) 의 진정 (眞淨) 스님에게 서신을 보내 적임자를 추천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보봉사의 두수 (頭首) 나 지사 (知事) , 혹은 나이 많은 스님들은 모두 그곳으로 가기를 싫어하였다.
당시 연 (惠淵) 수좌라는 이가 있었는데 향북인 (向北人) 으로 강직하고 자립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회당스님, 진정스님 등에게 공부하여 실로 깨친 바 있었지만 나타내지 않고 대중에 묻혀 지내니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였다. 그가 두수나 지사 등이 서로 미루고 가지 않으려 한다는 말을 듣고 진정스님에게 아뢰었다.
ꡒ저도 갈 수 있습니까?ꡓ
ꡒ갈 수 있지.ꡓ
드디어 답장을 보내 혜연수좌를 천거하니 혜연수좌는 공문을 받자 곧장 떠나갔다. 당시 제일수좌 〔座元〕 로 있던 담당 (湛堂) 스님이 혜연수좌에게 물었다.
ꡒ그대는 그곳에 가서 어떻게 주지를 하려는가?ꡓ
ꡒ저는 복이 없는 사람이니 모든 사람과 인연을 맺고 스스로 걸망을 등에 메고 거리에 나가 목탁을 두들겨서 대중에게 공양할 것입니다.ꡓ
ꡒ이 일은 모름지기 노형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오.ꡓ
그리고는 게송을 지어 전송하였다.
스님이여! 신오 땅에 들어가거든
중생을 잘 이끌어
잠시 나귀다리는 숨겨놓고
먼저 부처님의 손을 펴시오
시비를 지적하고 미추를 분별하여
죽이고 살리는 칼자루를 잡고서
사자후를 하며
중생의 근기에 응하여
육신의 입을 여시오
동서남북으로 흩어지려는 자들을
구슬이 맴돌고 옥이 구르는 것처럼 가르치시고
자기를 모르는 모든 이에게
단박에 무명의 늪에서 헤쳐 나오게 하소서
하 하 하
3에다 3을 곱하여
3 3은 9가 되듯
조사 조사가 이 법을 전해왔고
부처 부처가 손수 주셨다오.
師入新吳 誘携群有
且收瘻脚 先展佛手
指點是非 分張好挑
秉殺活劍 作師子吼
應群生機 解布袋口
擬向東西南北 直敎珠回玉走
咸令昧己之流 頓出無明窠臼
呵呵呵
見三下三 三三如九
祖祖相傳 佛佛授手
연수좌는 혜안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날마다 화주를 계속해 왔고 잠시 쉬어가는 스님네를 만나면 절 안으로 맞이하여 쉬도록 하고 자신이 돌아가 공양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이처럼 30년간을 비바람이 몰아쳐도 변함없이 계속 한 결과 불전 (佛殿) 과 장서각 (藏書閣) , 나한당 (羅漢堂) 세 채를 새로 세웠고 사원에 있어야 할 것들을 모두 갖추어 놓았다. 황룡 사심 (黃龍死心) 선사가 그곳을 방문하자 혜연수좌가 말하였다.
ꡒ신 (新:사심) 장로! 당신은 항상 알음알이를 없애라 〔沒意智〕 는 하나만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싹 쓸어버리기를 좋아하니, 오늘밤 여기에 머물면서 그대와 더불어 큰 법문을 자세히 따져보기를 기대하오.ꡓ
사심스님은 그를 꺼리며 시자에게 말하였다.
ꡒ저 사람은 진정 깨달은 바 있는 자라서 그와 더불어 어금니를 드러내고 우열을 가릴 수는 없으니 차라리 여기를 떠나 쉬는 것만 못하겠다.ꡓ
그래서 그곳에서 묵지 않고 떠나가 버렸다.
연수좌는 혜안사에서 세상을 마쳤다. 다비를 하니 육근 (六根) 가운데 세 가지는 허물어지지 않았고 사리가 무수히 나왔으며 신기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여 여러 달을 끊이지 않았다. 봉신현은 병화 (兵火) 로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부서져 버렸지만 혜안사의 여러 전각만은 우뚝하게 남아 있었다. 이 어찌 원력의 성취로 신중들의 가피가 있었던 결과가 아니겠는가? 오늘날 제방에서 팔장을 끼고 눈 앞의 것들을 누리려고만 하는 자들이 연수좌의 풍모를 듣는다면 부끄러운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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