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문무고(宗門武庫)

29. 담당선사의 탑명 / 무진 (無盡) 거사

通達無我法者 2008. 2. 20. 20:56
 

29. 담당선사의 탑명 / 무진 (無盡) 거사



스님 (대혜) 은 담당 (湛堂) 스님이 입적하자 각범 (覺範) 스님에게 행장을 부탁하고, 용안 조 (龍安慧照:1049~1119) 선사의 소개 편지를 가지고 특별히 형남 (荊南) 의 무진거사 (無盡居君) 를 찾아가 탑명 (塔銘) 을 청하였다. 처음 무진거사를 만났을 때 그는 선 채로 스님에게 물었다.

ꡒ스님은 그처럼 짚신만 신고 이 먼길을 왔습니까?ꡓ

ꡒ저는 수천리 길을 걸식 행각하면서 상공을 찾아왔습니다.ꡓ

ꡒ나이가 몇이오?ꡓ

ꡒ스물 넷입니다.ꡓ

ꡒ수행승 〔水牛〕 이 된 지 몇해나 되었소?ꡓ

ꡒ2년 되었습니다.ꡓ

ꡒ어디서 이런 겉치레를 배워 왔소?ꡓ

ꡒ오늘에야 상공을 만나 뵈옵니다.ꡓ

무진거사는 웃으면서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자고 하였다.

앉자마자 무슨 일로 먼길을 찾아왔느냐고 물으니 스님은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ꡒ늑담 (潭:담당) 스님께서 입적하여 다비를 하였는데 눈동자와 치아 몇개는 부숴지지 않았고, 무수한 사리가 나왔습니다. 이에 산중의 노스님들이 모두 상공의 문장으로 탑명을 마련하여 후학들을 격려하고자 하기에 부득이 먼길을 찾아와 청을 드리게 되었습니다.ꡓ

무진거사가 말하였다.

ꡒ나는 죄인으로 이곳에 머문 뒤론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위해 글을 짓지 않았소. 이제 한가지 물어 볼테니, 대답을 한다면 탑명을 지을 것이나 그렇지 못한다면 돈 5관 (五貫) 을 줄터이니 발길을 돌려 다시 도솔사로 가서 참선이나 하시오.ꡓ

ꡒ그러시다면 상공께서 물으십시오.ꡓ

ꡒ내 듣자하니 문준 노스님의 눈동자가 부숴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정말이오?ꡓ

ꡒ정말입니다.ꡓ

ꡒ내가 묻는 것은 그 눈동자가아니오.ꡓ

ꡒ상공은 어떤 눈동자를 물으셨습니까?ꡓ

ꡒ금강의 눈동자를 물었소.ꡓ

ꡒ금강의 눈동자야 상공의 붓끝에 있습니다.ꡓ

ꡒ이렇게 되면 이 늙은이가 그를 위해 광명을 찍어 내어 그것으로 천지를 비추라는 얘기로군!ꡓ

스님은 뜨락으로 내려서며 말하였다. ꡒ스승께서는 복이 많으신 분입니다. 상공의 탑명에 감사를 드립니다.ꡓ

무진거사는 이를 허락하면서 웃었다.

탑명은 대략 다음과 같다.



사리라는 것은 공자․노자의 책에서는 듣지 못한 물건이다. 세존께서 열반하시자 제자들이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우고 공양하였다. 조주 종심 (趙州從:778~897) 선사는 만여개나 되는 사리가 나왔고, 근세에도 융경사 (隆慶寺) 의 한 (閑) 선사, 백장사의 숙 (元肅) 선사는 다비한 연기가 미치는 곳까지 모두 사리를 이루었다.

출가자의 본분은 생사대사인데 만일 생사가 닥쳐왔을 때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임종 때 하나하나 분명히 유언을 남기는 시골 서리만도 못할 것이다. 사대 (四大) 로 된 몸이란 여러 인연이 거짓 합한 것이니 본래부터 사리라는 것에 어찌 체성 (體性) 이 있겠는가. 그러나 수행이 정결하고 정업 (淨業) 이 확고하면 영명 (靈明:마음) 이 확 트여 사후의 과보를 미리 알므로 놀라지도 겁을 내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의보 (依報) 와 정보 (正報) * 두 가지가 터럭만치도 어긋남이 없다. 거치른 세간심은 본분사에 있어서는, 하루 스물네시간 가운데 끊임없이 흐르는 미세한 망상을 비춰보지 못하고 크나큰 아만심 (我慢心) 을 낸다. 이것은 업주 (業主) 인 귀신이 우리 몸을 빌어 집을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리가 구슬처럼 흘러나오고 6근이 부숴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될 말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