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고서기( 書記)에게 주는 글
임제의 정종(正宗)은 마조(馬祖)스님과 황벽(黃蘗)스님으로부터 대기(大機)를 드날리고 대용(大用)을 발휘하였다. 그물을 벗어버리고 소굴을 벗어나 호랑이와 용처럼 달리며 별똥 튀고 번개가 부딪치듯 하여서, 오무렸다 폈다 잡았다 놓았다 하는 이 모두가 본분(本分)에 의거하여 면면적적(綿綿的的)하였다.
풍혈(風穴)스님과 흥화(興化)스님에 이르러선 종풍을 더욱 높이 드날리고 기봉은 더욱 준험하였다. 서하(西河)스님은 사자를 희롱하였고 상화(霜華)스님은 금강왕(보검)을 떨쳤는데, 종문(宗門)의 문지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인가를 직접 받지 않고서는 그 규모를 알 수 없으며 부질없이 스스로 껍데기만 더듬는다면 희론만 더할 뿐이다.
대체로 하늘을 치솟는 기개를 가지고 격식 밖의 도리를 받아 지니고 싸우지 않고도 백성과 군사를 굴복시키며, 살인을 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해도 오히려 본분의 취지와는 비슷하지도 못한데, 하물며 별을 옮기고 북극성을 바꾸며 천륜(天輪)을 굴리고 지축을 돌리는 경우이겠느냐. 그러므로 3현 3요(三玄三要)와 4료간(四料簡)과 4빈주(四賓主)와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과 땅에 웅크린 사자[踞地師子]와 한 할이 할의 작용을 하지 못함[一喝不作一喝用]과 고기 찾는 장대와 그림자 풀[探竿影草]과 한 번의 할에 객과 주인을 나눔[一喝分賓主]과 조용(照用)을 일시에 행함 등 많은 까다로운 언구[絡索]들을 보여주었다.
많은 납자들이 제 나름대로 분별 설명을 하였으나, "우리 법왕의 창고 속에는 이러한 칼이 없다"고 한 것을 사뭇 몰랐다 하리라. 희롱하여 가지고 나오면 보는 자들은 그저 눈만 껌적거릴 뿐이니, 모름지기 저 빼어난 이들은 계합 증오하여 시험과 인정을 받아 때로는 측면으로 제접하며 본분의 수단을 쓰거니, 어찌 일정한 단계와 매체를 빌리랴.
보수(寶壽)스님이 개당할 때 삼성(三聖)스님이 어떤 한 스님을 밀어내자 보수스님은 갑자기 후려쳤다. 그러자 삼성스님은 말하기를, "그대가 이와 같이 사람을 대한다면 이 스님만 눈 멀게 할뿐 아니라, 진주(鎭州)땅 온 성 안 사람들의 눈까지 모두 멀게 하고 말리라"고 하였다. 그러자 보수스님은 주장자를 던져버리고 곧바로 방장실로 되돌아가버렸다.
흥화스님이 함께 참학하던 스님이 찾아오는 것을 보더니 문득 '할'하자 그 스님도 할하였고 흥화스님이 또 할하자 그 스님도 다시 할하니 흥화스님은 "보아라, 이 눈 먼 놈아!"라고 하고 곧 바로 후려치며 법당에서 쫓아내버렸다. 시자스님이 "그 스님에겐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요?"라고 묻자 흥화스님은 말하였다.
"그에게는 권(權)도 있고 실(實)도 있었다. 내가 손을 가지고 그의 면전에 옆으로 두 번을 댔으나 결코 그는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처럼 눈 먼 놈을 때리지 않고 어찌하겠느냐."
살펴보건대, 저 본분의 종풍은 월등히 뛰어나 지략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저들의 눈이 바른 것만을 바랄 뿐이었다. 올바른 종지를 붙들어 걸머쥐고 바른 종안을 갖추려면, 모름지기 처음부터 끝까지 골수에 사무쳐 실오라기만큼도 구애됨이 없어 아득히 홀로 벗어나야만 한다. 그런 뒤에야 정확하게 서로 이어서 이 위대한 법의 깃발을 일으키고 이 큰 법의 횃불을 밝힐 수 있다. 그리하여 마조(馬祖)·백장(百丈)·수산(首山)·양기(揚岐) 등의 스님을 계승할 뿐 외람되게 다른 곳을 넘보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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