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심요(圓悟心要)

114. 등상인(燈上人)에게 주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5:42
 





114. 등상인(燈上人)에게 주는 글



당장에 투철히 깨달으려 한다면 반드시 우선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 이 하나가 있음을 깊이 믿어야 한다. 이는 고금에 빛을 드날리며 지견이 아득히 끊어져 씻은 듯 깨끗하여 아무것도 기댈 것 없이 없는 것이다. 항상 목적에 있으면서 털끝만큼도 모습이 없으며, 허공같이 넓고 태양보다 밝다. 천지만물은 비록 이루어지고 파괴됨이 있으나, 이것은 변함이 없으니 옛사람은 이를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또는 “여래의 정변지각[如來正?知覺]”이라고 불렀다. 다만 진실하게 알아차려 한 생각도 나지 않게 하면 본래를 철저히 깨닫는데, 원래 움직인 적도 없고 영원히 끊어짐이 없다. 가고 머무는 모든 작위가 애초부터 방해롭고 막히지 않아 역력고명하다. 한 기틀, 한 경계와 한 구절, 한 마디가 모두 법계를 머금어서 근본의 진여(眞如)와 들어맞으며 망정의 알음알이가 일었다가 꺼질 자리가 없는 곳이다.



이 정인(正印)으로 한 번 도장 찍으면, 자연히 네모난 건 네모난 대로 둥근 건 둥근 대로 둘이 아니게 되리라. 저 예로부터 불성을 분명하게 보고 도를 체득한 사람은 운용하고 작위 함에 있어서 티끌 인연의 경계를 관찰하되 가히 티끌 인연이라 할 것이 없어서 그것들을 움켜쥐어 하나의 참된 실제로 귀결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한 걸음 물러나면 하루 공부가 바로 일 겁(一劫)에 이른다.



그러므로 남천(南泉)스님은 말하기를 “내[王老師]가 열여덟 차례 만에 문득 살 궁리를 할 줄 알았다”라고 했다. 이는 잡아당겨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나는 듯이 두루 통하고 자재하여 하늘과 용과 귀신도 그의 마음 일으킨 곳을 찾지 못한 것이다. 이 무심한 사람의 행리는 간결하나 깊숙하고 엄하다. 만일 지견과 알음알이를 쉬면 장래에 철저하게 깨달을 분수가 있으며 살 궁리를 할 줄 알게 되리라. 요컨대 목적을 두고 힘써 노력한 뒤에 무엇을 하든지 원만해지면, 조계의 길 위에서 간단없는 힘과 활용을 얻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