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심요(圓悟心要)

115. 선인(禪人)에게 주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5:44
 





115. 선인(禪人)에게 주는 글



이근종지(利根種知)는 듣자마자 들어 보이고 당장에 철두철미하게 알아차려 전혀 다른 법이 없다. 손을 놓아버리고 바로 가버리는데, 어찌 다시 머뭇거림이 있겠는가. 이는 마치 날카로운 칼을 들고 문전을 막아서는 것과 같으니 감히 뉘라서 접근하랴. 이쯤 되면 그 늠름하고 신령한 위엄에 불조도 가까이 할 수 없다. 뭇 생명을 삼켜서 녹여버리는데 어찌 큰 해탈을 얻음이 아니겠느냐. 다시는 향상이니 향하이니를 세우지 않고 초연하게 호젓이 깨닫는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옛분들이 세운 방편 하나, 드리운 말 한 마디를 두고 “낚시를 사해에 드리움은 사나운 용을 낚으려 함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선 이러쿵저러쿵 따질 것 없이 화살과 칼끝이 튕기듯 일격에 뚫을 것을 요한다. 조금이나마 머뭇거렸다간 천 리 만 리 로 멀어진다. 예컨대 달마스님이 소림에서 9년을 면벽하자 혜가 조사만이 묵묵히 계합했던 것이니, 요즈음도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밝히는 것이 어렵지 않다. 다만 이제껏 지어왔던 갖가지 지해나 방편을 완전히 없애 털끝만큼도 세우지 않고, 마음을 깨끗이 비우면 된다.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생각도 간직하지 않고 나와 남에 매이지 않으며 한 생각도 내지 않고 단도직입하는데, 다시 무슨 부처를 찾으랴.



비로자나 부처의 정수리를 높이 밟으며 석가모니 부처에게도 받을 것이 없다. 표적을 부수고 방편을 타파하여, 종지와 격식을 초월하며 머리를 방외(方外)로 내밀어 도대체 내가 누구인가를 살펴야만 비로소 씨앗이 될 만하다. 그런 뒤에 천 사람, 만 사람도 가둘 수 없는 곳에서 종문의 한 가닥 길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 빳빳이 굳건하게 천 길 절벽처럼 우뚝하여, 무심코 한 털 끝만 집어 들어도 단박에 시방허공이 꽉 차는 것을 보게 되고, 같은 가풍  같은 덕을 들어 보이면 바라지 않아도 저절로 깨닫고,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서로가 주인과 손님이 되어 종지를 건립하는데, 서로가 강이나 사막에 막혀 멀리 있다 해도 영원토록 눈앞에 보는 것 같아서 향상의 기틀을 꿰뚫고 생사의 일을 마쳐 은혜에 보답하고 법을 세울 수 있게 된다. 뭇 생령들도 낱낱이 이렇게 만들어야 대장부라 할 수 있으며, 기특한 인연을 짓고 수승한 일을 마쳤다 하리라. 옛날 배상국과 황벽스님, 이습지(李習之)와 약산(藥山)스님, 양대년(楊大年)과 광혜(廣慧)스님, 이도위(李都尉)와 자조(慈照)스님 등이 모두 위와 같이 기연에 투합한 분들이었다.



이미 기연이 투합하고 나면 다시 이를 바탕으로 실천하면서 밖으로는 모든 견해를 비우고 안으로는 마음의 지혜를 끊었다. 철저하게 평상심을 간직하여 날듯이 자유자재하여 안팎으로 보호한 사람이 되어 큰 법을 펼쳤던 것이다. 이는 이른바 “이러한 일을 알려거든 반드시 이러한 사람이라야만 하고, 이러한 사람이라야 비로소 이러한 일을 이해한다”고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