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심요(圓悟心要)

116. 노수(魯?)에게 드리는 글

通達無我法者 2008. 2. 21. 15:46
 





116. 노수(魯?)에게 드리는 글



불법은 큰 바다와 같아 모든 것을 포함하여 모양이나 수량(數量)으로 헤아릴 바가 아니며, 낱낱이 무한함을 갖추었습니다. 만일 깨달아 들어가려면 반드시 헤아릴 수 없는 큰 지견(智見)을 갖추어서 법계를 다하고 허공과 같아져 미래가 다하도록 물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걸음걸이마다 뛰어 넘어 철석같이 견고해진 뒤에 정문정안(頂門正眼)을 확연히 하고, 진실로 본분작가의 솜씨를 갖춘 대종사를 신중히 선택해서 마음을 쉬고 그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생사의 큰일을 그에게 맡기고 투철히 깨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형식에 떨어지지 말고 단박에 본래 면목을 분명히 보고 본지풍광을 밟아야 합니다. 뿌리를 깊숙이 박고 줄기를 견고하게 하여 확실히 믿고 확실히 깨쳐서 텅 비고 신령히 밝아 요동하거나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써 기반을 삼아야 합니다. 정념도 계교도 전혀 나지 않고 당장에 텅 비어 앞뒤가 끊기면, 모든 성인과 실낱만큼도 다르지 않다 하겠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살핀 다음에는 뒤로 물러나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되 털끝에서 찰해(刹海)를 나타내고 겨자씨 속에 수미산을 받아들여, 향상의 기틀을 일으키고 불조의 법령을 드날립니다. 여기에 와서야말로 참으로 힘을 들일 곳이니, 과거와 지금의 현묘한 이성과 기묘한 언구, 하늘을 찌르는 책략에 이르기까지 모두 떨어버려야만 비로소 저쪽의 뜻을 체득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시절에 다시 나는 불법을 알았다느니, 활발하게 대기대용을 드날릴 수 있느니 하겠습니까. 만약 오랫동안 하다 보면 분명 하릴없는 안락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현이 출현하여 이를 위할 때, 일에 임해서 공이나 능력을 세우지 않고 아견을 드러내지 않았던 의도가 사람들을 의심 없고 함이 없고 하릴없는 데 있도록 하였음을 알겠습니다.



지금 한창 나이에 부귀를 누리시나 숙세의 원력으로서 높고 원대한 식견이 있으니, 이 도를 배우려면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고 세간의 인연을 버리지 않은 채 청정한 수행을 해야 합니다. 처음 단계가 벌써 바로 되었으니 요컨대 영원히 물러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추어, 비록 마음에 맞지 않는 외연을 만난다 해도 엿이나 꿀을 먹듯 해야 합니다. 이렇게 길러서 푹 익히면 크게 해탈한 사람이니 불법과 세간법이 어찌 다르겠습니까. 이를 미루어 곧장 앞으로 전진 한다면 어디를 간들 이롭지 않겠습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리가 같은 바람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말하지 않고도 알고 대면하지 않고도 알기 때문인데, 어찌 번거로운 말을 빌리겠습니까. 그러므로 비야대사(毗耶大士 : 유마)가 한 번 묵연 하자 문수는 “훌륭하십니다”라고 찬탄하였던 것입니다. 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많은 약이 필요치 않습니다. 의도는 낚시 끝에 있으니 모름지기 알아차려야만 합니다.



홀로 가고 홀로 걷는 곳에서 실제를 의지하여 참구하되, 어디로부터 일어나고 어디에서 오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속박을 풀어줄려면 진실하지 않고서는 어찌 기대하겠습니까. 무업(無業)스님은 “망상 피우지 말라”라고 하였을 뿐이며, 구지(俱脂)스님은 한 손가락을 세웠을 뿐입니다. 또 천황(天皇)스님의 “호떡”과 조주스님의 “차 마시게”와 설봉스님의 “공을 굴렸던 것”과 화산(禾山)스님의 “북 칠 줄 아는군”이라 했던 것이, 결코 다른 일이 아닙니다. 참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