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꿈 속에 본 시구절 보봉 경상(寶峰景祥)스님
보봉사(寶峰寺)경상 차수(景祥叉手:1062~1132)스님이 동자였을 때, 두 노스님이 밤중에 이야기를 하던 차에 옛날 큰스님의 송을 거론하는 것을 들었다.
수렛소리 덜그럭거리며 강남 땅 지나더니
잠시 유해를 늑담에 머물려 두네
진령(秦嶺)의 자욱한 모래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는데
달밝은 밤 괜스레 선승의 암자에 자물쇠를 채우네.
征輪軋軋過江南 暫把遺骸寄泐潭
秦嶺烟沙猶未息 月明空鎖定僧菴
경상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느낀 바 있어 눈물이 맺혔다. 노스님이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얼마 전 꿈 속에서 이 시구(詩句)를 보았는데, 아마 이는 저의 전신이 지은 것인 듯 싶습니다."
"그대는 뒷날 반드시 늑담사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 후 경상은 비구가 되어 몇 해 동안 대중 속에 있다가 과연 늑담사의 주지로 세상에 나갔고 여러 차례 명산 대찰의 주지를 지냈다. 이어서 정강(紛康)의 난(금나라의 침공)으로 천태산(天台山)에 피신하여 고암 선오(高菴善悟:1074~1132)스님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연화봉에서 입적하니 그곳은 천태 덕소(天台德韶)국사가 선정(禪定)에 들었던 곳으로 전후의 사실이 모두 지난날 게송에서 들은 바와 같았다.
교종(敎宗)에서는, 보토(報土:과보의 영역)는 모두 옛 원력이 나타난 것이어서 모두 정해진 몫이 있다고 하였다. 이 어찌 우연한 일이라 하겠는가. 그러나 세속의 못난 무리들 중에는 주지를 하고자 구차스럽게 명성과 이권에 영합하여 늙어 죽으면서도 제 분수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지난날 태백산 밀암(密菴咸傑)스님의 회중에 있을 때, 한번은 꿈속에서 일련(一聯)의 게를 지어 벽 위에 써 붙인 적이 있다.
난간에 눈 내리니 절 집은 초록빛 유리 아래 있고
구름이 하늘을 가로지르니 사람은 연꽃으로 돌아간다.
雪點欄干寺在翠瑠璃之下
雲橫霄漢人歸紅菡 之中
이 글을 지은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되었는데 아직껏 세파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나의 보토(報土)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차! 꿈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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