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보인 별봉(寶印別峰)스님의 게송들
별봉 인(別峰寶印)스님이 금산사(金山寺)에서 유봉사(乳峯寺)로 옮겨갈 때, 의사 육안(陸安)이라는 사람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보인스님은 달관 담영(達觀曇潁)스님의 후신이라고 일러주었다.
스님은 한가한 성품을 타고났으며 화장사(華藏寺) 안민(安民)스님의 법을 이었다. 촉(蜀)땅에서 나와 쌍경사(雙徑寺)에 이르러 묘희(妙喜大慧)스님을 뵙자 묘희스님은 말하였다.
"어디에서 왔느냐?"
"서천(西川)에서 왔습니다."
"그대가 검관(劍關)을 나오기 전에 몽둥이 30대를 맞았어야 하는건데."
"스님께 폐를 끼쳐드리게 되었습니다."
묘희스님은 그에게 능가실(楞伽室)에 숙소를 정하도록 하고 매우 극진한 대접을 하였다. 뒤에 큰 사찰의 주지를 두루 지냈으며, 만년에는 칙명으로 경산사(徑山寺)의 주지가 되어 줄곧 9년 동안 머물면서 항상 `화엄경"으로 불사를 하였다.
소흥 경진년(紹興:1160)에 창포전(菖蒲田)에서 입적하였는데, 경산사의 도독(塗毒智策)스님에게 영결을 고하자 도독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언제 가시렵니까?"
"물이 이르면 시내를 이루는 법이다."
그리고는 옷을 갈아 입고서 단정히 앉아 열반하시니, 그해 12월 8일이다. 열반하려는 차에 문도가 게를 청하자 큰 글씨로 써주었다.
천마디 만마디 법문이
모두가 허튼소리
나에게 한마디 있으니
죽은 뒤에 들어보이리라
千偈萬偈 總是熱荒
我有一句 死後擧揚
도독스님이 급히 감(龕)을 받들고 경산사로 돌아와 법당의 정침(正寢)에 안치하고 7일 후에 당대 장례 법식에 따라 다비하니, 당시 사람들이 이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 후 2년이 지나 도독스님이 입적하자 사람들은 그의 덕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보인스님은 산중생활의 회포에 대해 글을 지은 적이 있다.
한결같이 숲 사이에서 단잠을 실컷 자고
마음대로 기염 토하니 햇빛이 뜨겁구나
병 없는 사람은 스스로 병을 구하지 말라
그것은 속박을 벗어나려다 도리어 얽매이는 격
어설프게나마 나찬스님처럼 토란을 구워 먹고
향엄스님처럼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어라
베개머리 맡에 청산이 있으니
비갠 뒤에 뚝뚝 떨어지는 처마의 푸른 빗방울들.
一味林間飽黑甛 儘敎氣焰日炎炎
不將無病自求病 多是解粘添得粘
粗有芋煨如懶瓚 更無錐卓昭香嚴
枕邊留得靑山在 雨後層層翠滴簷
또 한번은 `농부취타도(農夫醉打圖)'에 글을 썼다.
농부여, 어이하여 천지자연 저버리오
취한 뒤엔 으레껏 격양가를 부르도다
그 옛날 유방(劉邦)항우(項羽)의 흥문 밖 잔치에서
가슴 속에 제각기 창칼을 품은 것과는 다르구나.
農夫何事損天和 醉後依前擊攘歌
不似當年劉項飮 胸中各自有干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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