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도(道)보다 시(詩)의 경지가 널리 알려지다 / 야당 보숭(野堂普崇)선사
야당 숭(野堂普)선사는 사명(四明)사람이다. 그는 오랫동안 천동사(天童寺) 굉지(宏智正覺)스님에게 귀의하였으나 생사대사를 깨치지 못하고 마침내 강서로 가서 초당(草堂善淸)스님을 찾아뵙고는 얼마 후 과연 깨친 바 있었다. 그 뒤 육왕사의 주지가 되자 향불을 사르고 초당스님의 법제자가 되었다. 설두 지(雪竇持)스님은 네 구절의 게를 지어 굉지 스님을 놀려 주었다.
종(宗:翠巖宗頭)하나 얻더니
숭(崇:野堂普崇)하나 잃었네
면전에선 합장하지만
등 뒤에선 가슴을 치네.
收得一宗 失却一崇
面前合掌 背後扌追胸
이 게송을 전해 들은 이는 모두 크게 웃었다.
보숭스님은 어릴 때 시에 대하여 공부를 많이 하였는데 한번은 여산(廬山) 삼협교(三峽橋)에 제(題)를 지어 붙였다.
쓸쓸한 자갈길 푸른 솔밭 둘러싸이고
산허리엔 홀연히 찬바람 몰아친다
추위 속에 앉았는데 저문 눈 내리려 하고
인적이 고요한데 산 숲엔 범종소리 울려온 듯
가파른 절벽 위엔 천고의 맑은 물이 쏟아지니
수백길 떨어지는 폭포 두 눈이 아찔하다
난간에 기대 지난 십년을 돌이켜보며
앉아서 오로봉 뒤덮는 흰구름을 바라본다.
蕭蕭石徑蟠蒼松 山腰忽斷來悲風
坐寒欲作暮天雪 人靜似發山林鐘
落崖千古流寒玉 眩眼百丈飛長虹
倚欄深省十年夢 坐看雲呑五老峰
후일 어사(榮史) 안국(安國)이 이 시를 보고 크게 칭찬하며 그곳에 걸려있던 많은 사람들의 시를 모조리 뜯어버리고 이 한 편만을 남겨 두었다. 그 후 그 도는 사방에 알려지지 못하였지만 시만은 세상에 널리 전해졌다. 후학들은 보승스님을 보고서 조심해야 할 것이다. 제이(齊已)․관휴(貫休)는 그의 경지보다도 시의 명성이 더 높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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