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도첩을 거부하다 / 장노 조조(長蘆祖照)선사
장노 조조(長蘆祖照:1057~1124)선사는 포양(陽)사람이다. 처음 책봇짐을 지고 서울에 이르니, 어느 환관이 그의 비범한 모습을 보고서 도첩을 주었는데 도화스님은 받지 않고 도반에게 말하였다. "나는 대장부이다. 어떻게 내시의 식객이 될 수 있겠는가? 한번 그의 은혜를 입게 되면 일생동안 그에게 제재를 받을 것이다. 우리 불문엔 다행히 광대한 법문이 있고 나라에도 입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으니 내 스스로 노력할 것이다."
이를 계기로 모진 마음으로 `법화경"을 암송하여 그 해 승과(僧科)에 급제하여 큰스님이 되었으며 여러 곳을 두루 찾아다닌 후 장로산에 머무니 대중이 항상 천여 명에 이르렀다.
진헐 청료(眞歇淸了:1089~1151)스님이 단하(丹霞子淳)스님의 회하에 있다가 그를 찾아왔는데, 당시 나이는 어렸지만 도화스님은 그가 영리한 것을 보고 수좌에 앉혔다. 후일 사원을 물러날 때 주지자리를 물려주면서 자기의 법을 이어 주려니 생각했었는데, 청료스님은 가사를 들면서 게를 하였다.
법은 단하스님 선실에서 얻었고
법의는 조조스님 문정에서 물려받았으니
은혜가 깊고 깊어 할 말 없지만
내 마음이사 변함없이 분명하다.
得法丹霞室 傳衣祖照庭
思深轉無語 懷抱自分明
도화스님은 불쾌하게 생각하여 청료스님이 법좌에서 내려오자 법의를 다시 빼앗았다. 청료스님은 그 후로 죽는 날까지 법의를 걸치지 않았고 결국 단하 자순스님의 법을 이었다. 강호의 식견있는 사람들은 그가 근본을 잊지 않은 일을 아름답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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