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叢林盛事)

131. 혹암 사체(或菴師體)스님의 대중법문

通達無我法者 2008. 2. 27. 14:38
 




131. 혹암 사체(或菴師體)스님의 대중법문



혹암(或菴師體)스님이 대중에게 법문하였다.

"소흥(紹興 1131~1139)초에 총림에는 씩씩한 기운이 넘쳤었다. 어디를 가나 납자들이 무명초를 헤치고 본지풍광을 바라보면서 선지식을 찾아 걸망과 바리때를 걸어놓고는 요점을 캐고 관문을 두드리며 모두 침식을 잊은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하였다. 그들은 입이 닳도록 쉴새 없는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얻은 것이라고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옛날돈 하나 없었다. 그런데 하물며 이 시대에 와서  보니 도처의 총림에서 선지식의 자리에 있는 스님들이란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상당을 하거나 입실을 하거나 오직 주지 자리가 비어있지 않다는 말 뿐, 스승이 학인을 보거나 학인이 스승을 만나거나 전혀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고 서로가 애매모호하다. 이쯤 되고 보니 한마디고 두마디고 어떤 말도 상정(常情)을 초탈하여 의심이 없는, 큰 안락의 경지로 이끌어 줄 수 없고, 무거운 사슬을 끊고 천하인의 본면목을 꿰뚫어 줄 수도 없다. 이제 대도(大道)는 머지않아 망할 것이다.

더러는 책 보따리며 우산을 등에 메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을 찾아가는 이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배 부르고 따뜻한 곳만을 찾고 외전(外典)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이야깃거리나 삼으려 할 뿐, 종문의 대사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못한다. 이에 한술 더 떠서 하릴없이 큰 절 주지자리에 앉아 복연(福緣)이 있으면 윗사람에게 달려가 모시고, 귀인들과 결탁하여 이를 외호(外護)로 삼아 일신을 편하게 할 계책을 삼는다. 마침내는 이러한 습관이 풍조가 되어 서로 본따 하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을 아는 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중 가운데 진짜 납자다운 노스님이 비록 도를 깨쳤다 하더라도 그들은 은밀히 고풍(古風)을 추앙하여 자취를 감추고 물러나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권세있는 귀인들과 가까이하지 않으므로 폐단을 개혁할 힘이 없다. 그저 차가운 방에 외로이 앉아 소맷자락에 손을 넣은 채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념에 잠겨 그들의 얕은 기량에 분개하여 혀를 차며 개탄할 뿐이다.

바라건대 안목을 지니고 정인(正因)을 얻은 역량있는 스님이 나와 노력하고 반성하여 목전의 작은 이익을 버리고 먼 미래를 도모하되, 자신부터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전할 수 없는 묘한 이치를 깨쳐야 한다. 그리고는 범성(凡聖)이 예측할 수 없는 기연을 마련하여, 후학들의 모범이 되어, 머나먼 길에서 허위적거리며 한탄하는 괴로움을 없애 주었으면 한다. 눈밝은 사람 앞에서 내 녹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진정 우리 조사의 도가 쇠퇴하는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해서이다. 우주 밖으로 높이 뛰어올라 빼어난 납자를 얻어야 한다. 세상을 밝게 비추고 천고 만고에 서릿발 같은 금강왕보검이 광채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