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칙 용아의 서쪽에서 오신 뜻이 없음〔龍牙西來〕
(수시)
산이 첩첩하고 멧부리가 쌓인 듯이 (질문을 품고), 담장에 부딪치고 벽을 들이받듯이 (수행하고), 가만히 생각하고 기연을 쉰다 하더라도, 한바탕 괴롭고 굴욕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혹 어떤 자가 나와 큰 바다를 번쩍 들어 뒤집어버리며, 수미산을 차서 거꾸러뜨리며, 벽력같은 소리로 흰 구름을 흩어버리며, 허공을 쳐부숴, 당장에 한 기틀, 한 경계에서 천하 사람들의 혀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하면 그대들이 가까이할 수 없을 것이다.
말해보라, 예로부터 어떤 사람이 일찍이 이렇게 했는가를. 거량해 보리라.
(본칙)
용아(835~923)스님이 취미(翠微)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여러 총림에서 예전에 했던 이야기라 하더라도 반드시 감정해봐야 한다.
“나에게 선판(禪板)을 가져오너라.”
-선판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마터면 놓질 뻔했다. 위험!
용아스님이 선판을 가져다가 취미스님에게 드리자,
-또한 역시 잡으려 해도 되질 않는군. 청룡을 태워줘도 몰 줄을 모르네. 애석하다.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네.
취미스님이 받자마자 곧바로 후려치니,
-잘했다. 죽은 놈을 쳐서 무엇 하느냐? (제일의제가 아닌) 둘째번에 떨어져 버렸군.
용아스님이 말하였다.
“치는 것이야 마음대로 치십시오마는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이놈의 말이 둘째번에 떨어졌구나. 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기는구나.
용아스님은 다시 임제(臨濟 : ?~866)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총림의 케케묵은 공안을 거듭 물어오네. 반푼의 값어치도 되지 않는다.
“나에게 포단(蒲團)을 가져오게.”
-조계의 물결이 서로 흡사하다면 죄없는 많은 양민을 산지옥에 빠뜨리게 되리라. 함께 판결을 내려 한 구덩이에 묻어버려라.
용아스님이 포단을 가져와 임제스님에게 주자,
-여전히 잡으려 해도 되지 않고, 여전히 영리하지 못하군. 월(越)나라와 비슷하고 양주(楊州)를 방불케 한다.
임제스님이 받자마자 바로 후려치니
-잘했구나! 이런 죽은 놈을 때리다니 때리는 자가 불쌍하다. 쏙 빼 닮았네.
용아스님이 말하였다.
“치는 것이야 마음대로 치십시오마는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명백하게도 귀신의 굴속에서 살림살이를 했구나. 잘했다고 생각했더니만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겼군.
(평창)
취암 수지(翠巖守芝)스님은 “당시에도 이와 같았는데 요즈음 납자들은 가죽 밑에 피가 있는가?”하였으며, 위산 철(潙山喆)스님은 “취미스님과 임제스님은 본분종사였다고 말할 만하다. 용아스님은 한결같이 거친 풀을 헤치고 수행길을 나섰으니 참으로 후인의 귀감(龜鑑)이 되었구나”라 하였다.
용아스님이 주지가 된 뒤 어떤 스님이 그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당시에 두 큰스님(취미․임제스님)을 긍정하셨는지요?”하니, “긍정하긴 했어도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었다”라 했다. 이는 용아스님이 앞뒤를 잘 가려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다. 대위(大潙 : 潙山慕喆)스님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스님은 당시 두 큰스님을 긍정하였느냐”고 묻기만 하면 알았든지 몰랐든지 바로 등줄기를 후려쳐버렸다. 이는 취미스님과 임제스님을 추켜세운 것일 뿐 아니라, 찾아와서 묻는 이도 저버리지 않은 것이라 하겠다.
석문총(石門聰)스님은 “용아스님이 사람들로부터 내질리지 않았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납자에게 내질리고서는 일척안(一隻眼 : 이마에 붙어 있는 것으로, 도를 보는 제3의 눈임)을 잃어버렸다”하였으며, 설두스님은 “임제와 취미는 잡을 줄만 알았지만 놓을 줄은 몰랐다. 내가 그 당시에 용아였더라면 그들이 선판과 포단을 찾았을 때 번쩍 들어다가 정면으로 내던져버렸을 것이다.”하였으며,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은 “스님이 이처럼 어리석다니…….”라고 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조사의 머리에 토숙(土宿 : 죽음을 알리는 별)이 얹혀 있다”고 하였으며, 황룡 오신(黃龍悟新)스님은 “용아는 농부의 소를 빼앗아가고 굶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으니, 이미 밝고 밝은데 무엇 때문에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없다고 했을까? 알겠느냐? 몽둥이 끝에 해처럼 밝은 눈이 있으니 참 금〔眞金〕을 알고저 한다면 불 속에서 살펴보아라”고 하였다.
대체로 요체와 오묘〔要妙〕함을 드러내어 최고의 가르침인 선을 말하려면 제일기(第一機)로 밝혀야만이 천하 사람들의 혀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할 수 있다. 만일 주저한다면 제이(第二)에 떨어진다. 이 두 늙은이가 비바람을 치게 하고 천지를 진동시켰다고 하지만 끝내 눈 밝은 놈을 만들지는 못하였다.
옛사람은 참선을 할 때 많은 괴로움을 겪어왔다. 대장부의 지기(志氣)를 세우고 산천을 두루 행각하면서 큰스님을 참방하였었다. 용아스님은 먼저 취미스님과 임제스님을 참례했다. 그후에 덕산(德山)스님을 참방하고서는 드디어 물었다. “학인이 막야(鏌鎁) 보검을 짚고 스님의 머리를 베려고 할 때는 어찌하시겠습니까?” 덕산스님이 목을 쑤욱 내밀면서 “화!” 소리를 지르자, 용아스님은 말하였다. “스님의 머리는 떨어졌습니다.” 덕산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곧 그만두었다.
다음으로 동산(洞山)에 이르자 동산스님이 물었다.
“요즈음 어느 곳을 떠나왔느냐?”
“덕산에서 왔습니다.”
“덕산에게 무슨 언구가 있더냐?”
용아스님이 앞에 있었던 일을 들어 말하니, 동산스님이 물었다.
“그가 뭐라 하더냐?”
“그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말이 없었다 하지 말고, 떨어진 덕산스님의 머리를 노승에게 바쳐보아라.”
용아스님은 여기에서 깨치고 드디어 향을 올리며 멀리 덕산스님을 바라보면서 예배하고 참회하였다. 덕산스님은 이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동산 늙은이가 좋고 나쁨도 가릴 줄을 모르는구나. 그놈(용아스님)이 죽은 지가 언제인데……. 구제한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에게 노승의 머리를 짊어지고 천하를 돌아다니라고 하여라.”
용아스님의 근기가 총명하고 민첩하여 몸 전체에 선(禪) 냄새를 풍기며〔一肚皮禪〕행각하면서 곧바로 장안(長安)의 취미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나에게 선판(禪板)을 가져오너라.”
용아스님이 선판을 가져다 취미스님에게 주자, 취미스님은 받자마자 바로 그를 후려치니, 용아스님은 말하였다.
“치는 것이야 마음대로 치십시오만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또다시 임제스님에게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하자, 임제스님은 “나에게 포단을 가져 오라”고하였다.
용아스님은 포단을 가져다 취미스님에게 주니, 취미스님이 받자마자 바로그를 후려치니. 용아스님은 말하였다.
“치는 것이야 마음대로 치십시오만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
또다시 임제스님에게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하자, 임제스님은
“나에게 포단을 가져다 임제스님에게 주니, 임제스님도 받자마자 그를 후려쳤다. 용아스님은
“치는 것은 마음대로 치십시오만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다”고 하였다.
그가 질문을 던진 이유는 참으로 곡록목상(曲彔木牀 : 禪床)위에 있는 늙은이를 찾아보려 한 것이며, 또한 자신의 하나의 큰 일〔一段大事〕을 밝히려고 했던 것이다. 참으로 말을 헛되이 하지 않고 기연을 제멋대로 내지 않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경지를 마련해주었다고 하겠다.
듣지 못하였는가? 오예(五洩 : 747~818)스님이 석두(石頭)스님을 참방하러 가면서 먼저 스스로가 “한마디 말로 서로 계합된다면 머물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바로 떠나리라”고 다짐하였다. 석두스님이 자리에 앉아 있자, 오예스님은 소맷자락을 떨치면서 나가버렸다. 석두스님은 법기(法器)임을 알고 곧 일깨워주었으나 오예스님은 그 뜻을 알지 못하고 하직한 후 문에 이르렀다. 석두스님이 “스님”하고 부르자 오예스님이 석두스님을 뒤돌아보니, 석두스님은 말하였다.
“평생 이것뿐이니 머리를 돌리고 뇌를 굴려 다시는 따로이 구하지 말라.”
오예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쳤다.
또 마곡(麻谷)스님이 지팡이를 짚고 장경(章敬 : 757~818)스님에게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돌더니 지팡이를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장경스님이 말하였다.
“옳다, 옳다.”
또 남전(南泉)스님에 이르러 예전과 같이 선상을 돌고 지팡이를 내려치며 서 있자 남전스님이 말하였다.
“틀렸어, 틀려. 이는 번뇌의 힘〔風力〕으로 그러는 것이니, 끝내는 없어지고 만다.”
“장경스님은 옳다고 말씀하셨는데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틀렸다고 말씀하십니까?”
“장경스님이야 옳겠지만, 바로 그대는 옳지 않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일대사인연을 제시하여 투철하게 벗어났는데, 요즈음 사람은 탁 물어보면 공부한 곳이란 전혀 없으면서도 오늘도 이렇게 보내고, 내일도 변함없을 뿐이다. 그대들이 이렇게 했다가는 미래가 다하도록 끝마칠 날이 없을 것이니, 모름지기 망상을 털어 버리고 정신을 차려야만 비로소 조금이라도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보아라. 용아스님이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라고 하자, 취미스님은 “나에게 선판을 가져오너라”라고 하였다. 용아스님은 선판을 가져다 취미스님에게 주었더니, 취미스님은 받자마자 바로 그를 후려쳤다. 용아스님이 당시 선판을 바칠 때 취미스님이 치려 한다는 사실을 왜 몰랐겠는가? 그가 몰랐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에 선판을 가져와 그에게 주었을까? 말해보라, 어떤 계기를 만나서〔當機〕본분소식을 알아차렸을 때에 어떻게 하여야 옳았겠는가를. 그는 살아있는 물〔活水〕을 피하고 스스로 썩은 물〔死水〕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면서, 한결같이 제나름대로의 견해〔主宰〕를 지어서 이르기를 “치는 것이야 마음대로 치십시오만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하북(河北) 지방으로 달려가 임제스님을 참방하고, 여전히 이 질문을 하였더니, 임제스님은 “나에게 포단을 가져 오라”고 하였다. 용아스님이 포단을 가져다 임제스님에게 건네주니 받자마자 그를 후려쳤다. 용아스님은 “치는 것이야 마음대로 치십시오만 그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습니다”고 하였다. 말해보라, 두 큰스님께서 각각 법맥이 다른데 무슨 까닭에 대답한 것이 서로 같았으며, 작용 또한 같았을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옛사람은 한마디 한 구절도 마구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그뒤 용아원(龍牙院)에 주석하였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당시에 두 큰스님을 뵙고 그들을 긍정하셨습니까, 아니면 긍정하지 않으셨습니까?”
“긍정하긴 했지만 요컨대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었다.
이는 흐물거리는 진흙벌 속에 가시가 있던 꼴이었다. 상대에게 한 수 물려주게 되면 벌써 제이의제(第二議諸)에 떨어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이 늙은이가 정(定)만을 붙들고 늘어져 다만 조동종의 큰스님이 되었을 뿐이다. 만일 그가 임제스님․덕산스님의 문하였더라면 다른 생애를 개척했으리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원오스님)가 그 경우였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다만 “긍정도 안 할 뿐더러 끝내는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마저도 없다”고 했을 것이다.
듣지 못하였는가? 어떤 스님이 대매(大梅 : 752~839)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서쪽에서 오신 데는 뜻이 없다.”
염관(鹽官 : ?~842)스님은 이 말을 듣고서,
“관(棺) 하나에 시체가 두 개 로구나”하였으며, 현사(玄沙)스님은
“염관은 작가 선지식이다”하였으며, 설두스님은
“(죽은 놈이) 세 명이 있었구나”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다만 어느 스님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물어서 “서쪽에서 오신 데는 별 뜻이 없다”고 말했다고만 그대들이 이해한다면 무사(無事)만이 깨달음이라고 집착하는 경계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해야지 사구(死句)를 참구해서는 안 된다. 활구에서 알아차리면 영겁토록 잊지 않겠지만, 사구에서 알면 자신마저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용아스님이 “서쪽에서 오신 데는 뜻이 없다”고 말한 것은 참 잘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옛사람(동산 양개스님)의 말에 “지속한다는 것은 몹시 어렵다”고 하였다. 옛사람은 한 말씀 한 구절을 아무렇게나 한 것이 아니다. 앞뒤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권(權)도 있고 실(實)도 있으며, 조(照)도 있고, 용(用)도 있어서, 빈(賓)․주(主)가 뚜렷하여 서로가 번갈아 가면서 종횡무진 하였다.
만약 그것을 자세히 판별해보면, 비록 용아스님이 최고의 가르침인 선에 어둡지 않았지만 제이의제에 떨어져 있음을 어찌하랴. 당시 두 큰스님께서 선판과 포단을 찾았을 때, 용아스님은 그들의 의도를 알았어야 했다. 두 큰스님들은 용아스님이 가슴속의 일을 깨쳤으면 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두 큰스님들이) 너무 고준한 방법을 썼다고도 할 수 있다.
용아스님이 이처럼 묻고 두 늙은이가 이처럼 답하였는데 (대매스님은) 무엇 때문에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없다”고 하였을까?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따로이 기특한 곳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설두스님은 이를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보도록 했다.
(송)
“용아산의 눈 없는 용이여.”
-눈 멀었다. 다른 사람을 속인다면 되겠지만 (나〔원오스님〕한테는 안 되지).
진흙 속에서 흙덩이를 씻는구나(아무 소용없는 짓하네) 천하 사람들이 모두 다 안다.
썩은 물 속에서 어떻게 고풍(古風)을 떨칠 수 있으랴!
-갑자기 살아난다면 어찌할 수 없다. 천하 사람에게 누를 끼쳐서 머리를 들 수 없다.
선판과 포단을 활용하지 못하니
-누구더러 말하라 하느냐? 그대는 선판과 포단으로 무엇 하려고 하는가? 설두스님에게 넘겨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응당 노공(盧公 : 설두스님)에게나 넘겨주오.
-넘겨주질 못했다. 먹통아! 이런 견해는 짓지 말라.
(평창)
설두스님이 (용아스님이 지은) 죄상에 의거하여 판결하였다. 그가 이처럼 송을 했지만 말해보라,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어느 것이 눈이 없는 것이며, 어느 것이 썩은 물일까? 여기에 이르러선 모름지기 상황에 딱 맞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맑은 못에는 창룡(蒼龍)이 살지 않는다”고 하였다. 죽은 물 속에 어떻게 사나운 용이 있겠는가? “죽은 물 속엔 용이 살지 않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살아 있는 용이라면 모름지기 큰 파도가 아득하고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리는 곳을 찾아갈 것이다. 이는 용아스님이 썩은 물 속으로 들어가 남에게 얻어맞은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치는 것이야 마음대로 치십시오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설두스님으로 하여금 “썩은 물 속에서 어떻게 고풍을 떨치겠느냐?”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비록 이와 같기는 하지만, 말해보라, 설두스님이 그를 추켜세운 것인가? 아니면 그의 체통을 깎아내린 것인가?
사람들은 흔히 이를 잘못 알고서 “무엇 때문에 응단 노공(盧公)에게 넘겨달라 하였을까?”하고들 있는데, 이는 용아스님이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모른 것이다. 일반적으로 참청(參請 : 참선 수행상의 질문)을 하려면 모름지기 문제의 핵심을 분별하여야만 옛사람이 서로 만나 깨달음으로 인도했던 일을 알아차릴 수 있다.
“선판과 포단을 활용하지 못하니”라고 송하였는데, 취미스님이 “나에게 선판을 가져 오라”고 하자, 용아스님은 그에게 선판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이 썩은 물 속에서 살림살이를 한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히 이는 청룡(靑龍) 위에 태워줬는데도 용을 몰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활용하지 못한”것이다.
“응당 노공(盧公)에게 넘겨주오”라는 말에서의 노공은 육조(六祖)라고 흔히 말하지만 잘못된 것이다. 일찍이 남에게 넘겨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만일 남에게 넘겨주었다고 몰아붙여서 그를 나무란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예전에 설두스님은 스스로를 노공(盧公)이라고 불렀다. 그는 ‘발자취를 숨기면서 자신에게 남긴다〔晦迹自貽〕’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읊었다.
그림 속 동정호를 무척이나 사랑했는데
물결에 어린 일흔 두 봉우리는 푸르기만 했지.
이제는 한가로이 누워 지난 일 생각하니
돌병풍에 기대앉은 노공이 하나 더 있어라.
설두스님은 용아스님의 머리 위에서 걸으려 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잘못 이해할까 염려한 까닭에 따로이 송을 하여 사람들의 의심을 잘라버렸다. 설두스님은 다시 염(拈)하였다.
“이 늙은이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구나”하고는 또다시 하나의 송을 지었다.
-분명하군. 몇 사람이나 알 수 있을까? 스스로 아는 이들이 겨우 한 명이나 반 명이나 될까? 다행히도 말후구가 있기에 망정이지.1)
(송)
노공에게 넘겨준들 어찌 의지할 게 있으리요.
-온 누리에서 이런 사람을 찾아봤지만 찾기 어렵다. 누구를 깨우쳐주려고 그러는가?
(방석에) 앉거나 (선판에) 기대어서 조사의 등불을 계승하려 하지 마오.
-형편없는 놈이로군. 검은 산으로 들어가 앉아 있군. 귀신 굴속에 떨어져 있구나.
저녁 구름은 돌아가느라 모여들지 않으니
-한 개는커녕 반개도 없다. (말로써)들먹였다 하면 잘못된다. 과연 빠져 나오려 해도 되질 않는군.
먼 산은 아득히 푸르름에 싸여 있다.
-그대는 눈을 막아버리고 귀를 막아버렸다. 깊은 구덩이에 빠졌다. 다시 30년 더 참구하라.
(평창)
“노공에게 넘겨준들 어찌 의지할게 있으랴”는 달리 무엇을 의지할 바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렇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코 말뚝을 지키며 토끼를 기다리지〔守株待兎〕말라. 죽음을 눈앞에 두고 모두 타파하여 티끌 만한 일도 가슴속에 남겨두지 말고 말끔히 해맑게 한다면 뭐 의지할 게 있으랴!
혹은 (포단에) 앉기도, 혹은 (선판에) 기대기도 하면서 불법이 이러니 저러니 지껄이지 말라. 그러므로 “앉거나 기대어서 조사의 등불을 계승하려 하지 마라”고 하였다.
설두스님이 일시에 염송(拈頌)을 마쳤다 하겠다. 그에게는 몸을 전변할 곳이 있어, 뒤의 게송에서 스스로 이유를 드러냈으니, 조금은 좋은 곳이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이르기를 “저녁 구름은 돌아가느라 모여들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말해보라, 설두스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저녁 구름이 돌아가느라 모여들 듯 하면서도 모이지 못할 때, 그대는 말해보라, 어떠한가를.
“먼 산은 아득히 푸르름에 싸여 있다”고 하였는데 여전히 귀신 굴속에 들어 있구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쳐부숴버려 말끔히 해맑아야만 조금은 나은 편이다. “먼 산은 아득히 푸르름에 싸여 있다”하였으니, 말해보라, 이는 문수보살의 경계인가, 보현보살의 경계인가, 관음보살의 경지인가? 이는 어떤 사람의 경지에 해당하는 일인가를 말해보아라.
1)“이 늙은이~다행히도 말후구가 있기에 망정이지”는 원문에서는 한 글자를 내려 頌송(頌)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이 문장은 내용이나 운(韻)으로 보아 송(頌)은 아니다.
이 문장은 전반부의 송과 후반부의 송을 이어주는 설두스님 자신의 설명문이다.
불과원오선사벽암록 권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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