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23칙 보복의 그윽한 산봉우리〔保福妙峰〕

通達無我法者 2008. 3. 3. 08:43
 

 

제23칙 보복의 그윽한 산봉우리〔保福妙峰〕


(수시)

옥이란 불로 (그 진가를) 변별하고, 금이란 돌로 변별하고, 칼이란 털로 변별하고, 물의 깊이는 지팡이로 잴 수 있다. 납승의 문하에서는 하나의 말 하나의 구절, 하나의 기틀과 하나의 경계, 한 번 나오고 한 번 들어가는 것과, 한 번 밀치고 한 번 부딪치는 곳에서 깊고 얕음을 보며, 제대로 됐는지 거꾸로 됐는지를 바로 보아야 한다. 말해보라, 무엇을 가지고 변별해야 하는가를. 본칙의 거량을 살펴보아라.


(본칙)

보복스님과 장경스님이 산에서 노닐 때

-이는 둘 다 풀 속에 떨어진 놈이다.


보복스님이 손으로 가리키며 “저것이 바로 묘봉정(妙峰頂)이다”라고 말하자,

-괜한 평지 위에 해골 무더기를 일으켰다. 절대 말조심을 하라. 땅을 파고 깊이 묻어버려라.

장경스님이 말하였다.

“옳기는 옳지만 애석하군.”

-만약 무쇠 눈에 구리 눈동자를 지닌 놈이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현혹 당했을 것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둘 다 한 구덩이에 묻어버려라.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오늘 이런 놈과 함께 산놀이를 해서 무엇하겠느냐?”

-사람의 위신을 깎아버리네.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 곁에 있던 사람이 칼을 매만진다.


또 착어했다.

“백․천 년 뒤에 사람이 없을 거라고 말하지 말라. 다만 드물 뿐이다.”

-우쭐거리지 말라. 이 또한 운거사에 있는 나한상같이 거만한 놈이로다.


그후 이를 경청(鏡淸)스님에게 말하자

-반은 잘한 일이고 반은 잘못한 일이다.


경청스님이 말하였다.

“손공(孫公 : 長慶)스님이 아니었다면 온 들녘에 해골이 가득 널려 있었을 것이다.”

-같은 길을 가는 자만이 비로소 알 것이다. 온 대지에 아득하도록 사람을 근심스럽게 하네. 남자종이 계집종을 은근하게 사모하는 꼴이군. 설령 덕산스님과 임제스님이 나왔다 해도 몽둥이를 맞았을 것이다.


(평창)

보복스님․장경스님․경청스님은 모두 설봉스님의 제자들이다. 세 사람은 똑같이 도를 얻고 똑같이 깨쳤으며, 똑같이 보고 똑같이 들었으며, 똑같이 드러내고 똑같이 활용했으며, 한 번 나오고 한 번 들어갔으며, 서로가 번갈아 가면서 내질렀다. 그들은 같은 가지에서 나온 사람들이었기에 한마디하면 곧바로 귀결점을 알았던 것이다. 설봉스님의 회하에서 평상시 문답을 했던 사람으로는 이 세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옛사람은 움직일 때나 머물 때나 앉으나 누우나 이 도를 생각하였기 때문에 한마디했다 하면 곧 귀결점을 알았던 것이다. 하루는 산놀이를 하던 즈음 보복스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기가 바로 묘봉정일세”하였다. 요즈음 선객들에게 이처럼 물었더라면 턱뼈가 떨어져 아무 말도 못했을텐데, 그래도 장경스님에게 물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대는 말해보라. 보복스님이 이처럼 말한 것은 무엇을 하려고 한 것인지를. 옛사람이 이처럼 한 것은 그에게 안목이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하기 위함이다. 그 집안 사람들은 자연히 그 귀결점을 알고서 바로 그에게 “옳기는 옳지만 애석하다”고 대답하였던 것이다. 말해보라. 장경스님이 이처럼 말한 뜻은 무엇일까? 그러나 오로지 이처럼 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엇비슷하긴 해도 무심하여 눈꼽만큼도 일삼음이 없는 경지에 있는 이들은 드물다. 다행히도 장경스님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설두스님은 이에 대해 착어하기를, “오늘 이런 놈과 산놀이를 해서 무엇하겠느냐?”고 하였다. 말해보라. 본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착어하기를 “백․천 년 뒤에 사람이 없다 말하지 말라. 다만 드물 뿐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설두스님이 핵심을 찌른 것으로 마치 황벽스님이 “선(禪)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단지 선사가 없을 뿐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하겠다. 설두스님의 이와 같은 말은 상당히 험준하다. 만일 같은 소리로 맞장구치지 못하였다면 어떻게 이처럼 험준하고 기괴(奇怪)할 수 있었겠는가? 이를 착어(著語)라 하는데, 양쪽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양쪽을 모두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양쪽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후 이를 경청스님에게 말하자 경청스님은 “손공(孫公)스님이 아니었다면 온 들녘에 해골이 가뜩 널려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손공은 곧 장경스님의 속성(俗姓)이다. 듣지 못하였느냐?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던 것을.

어떤 스님이 “어떤 것이 묘봉고정(妙峰孤頂)입니까?”라고 하니,

조주스님은 “노승은 그대의 말에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무슨 까닭에 이 말에 대답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너에게 대답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집착할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교학(敎學)에서는 “묘봉고정(妙峰孤頂)의 덕운비구(德雲比丘)는 원래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찾아가 참례하려 했지만 7일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하루는 다른 산 봉우리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선재를 보자마자 그에게 일념삼세(一念三世)와 모든 부처님과 지혜광명과 보현법문(普賢法門)을 말해주었다”고 한다. 덕운비구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는데, (묘봉고정에서 덕운비구를 만나지 못하고) 어떻게 다른 산봉우리에서 만났을까? 만일 그가 산에서 내려왔다고 한다면, 교학(敎學)에서 말한 “덕운비구는 원래부터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묘봉고정에 있었다”고 한 내용과는 모순이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덕운과 선재는 참으로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그후 이통현장자(李通玄長者)가 이에 대해 문자로 주석을 달았는데, 그 주석은 썩 좋은 편이었다. 이르기를 “묘봉고정이란 한 맛으로 된 평등한 법문이다. 낱낱이 모두가 진실하고, 낱낱이 모두가 완전하여, 득실․시비가 없는 곳에서 뚜렷이 드러났건만 선재가 보지 못했던 것이다”라고 했다.

본성(本性)에 딱 들어맞는 곳에 이르러서는 눈으로도 보지 못하며 귀로도 듣지 못하며, 손가락을 가리키지 못하며 칼로 자르지 못하며, 불로 태우지 못하고, 물로 씻지 못한다. 이것은 교학에서 참으로 노파심으로 보살펴준 것이다. 그 때문에 가냘픈 한 가닥 (방편의) 길을 터놓고 제이의문(第二義門)에서 손님〔客〕과 주인〔主〕, 기틀〔機〕과 경계〔境〕, 물음〔問〕과 답(答)을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은 세간에 나타나지도 않고 열반도 없으나,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고자 이같은 일을 나타낸 것이다.”

말해보라. 결국 어떻게 하여 경청스님과 설두스님이 이와 같은 말을 면할 수 있었을까? 당시에 척척 서로 응하지 못했다면 그 온 누리 사람들의 해골이 들녘에 가득 하였을 것이다. 경청스님이 이처럼 증명했고 이 두 사람이 이같이 활용하였다. 설두스님은 뒤에 송을 하여 더욱 이를 밝게 나타내주었다. 다음의 송을 보라.


(송)

묘봉고정에 풀은 우거졌는데

-온몸이 완전히 빠졌군. 발밑의 풀이 벌써 몇 길이나 수북하게 자랐다.


분명하게 드러내어 누구에게 줄까?

-무엇 하려고……. 온 천지를 둘러봐도 아는 사람이 없구나. 마른 똥막대기를 어디에 쓰랴? 코를 방어했더니 이제는 입을 잃어버렸다.

손공(孫公)이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면

-틀렸군! (장경스님이 쏜) 화살가는 방향을 보라. 도적을 맞혔는데도 모르는구나.


땅바닥에 즐비한 해골을 몇 명이나 알까?

-다시는 살아나지 못한다. 삼과 같고 좁쌀같이 많군. 설두스님! 코를 방어하는가 했더니 입을 잃어버렸어요.


(평창)

“묘봉고정에 풀은 우거졌는데”라고 한 것은, 잡초 속에 떨어져 구른다면 어찌 벗어날 기약이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분명히 드러내어 누구에게 줄까”라고 하였는데 어디가 분명한 곳일까? 이는 보복스님이 한 “여기가 바로 묘봉정상일세”라는 말을 송한 것이다. “손공이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더라면”하였는데, 손공은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옳기는 하지만 애석하다”고 하였을까? 그리고 “땅바닥에 즐비한 해골을 몇 명이나 알았을까?”라고 하였는데 그대들은 알겠는가? 눈이 멀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