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칙 도오의 말할 수 없음〔道吾不道〕
(수시)
은밀하고도 완전한 참인 이 소식을 대뜸 깨치고, 갖가지의 반연속에서도 그것을 (주체적으로) 다룰 수 있어 단박에 당처를 알아챈다. 전광석화 속에서도 잘못을 순간에 끊고, 호랑이 머리를
타고 꼬리를 잡는 경지에 천 길 벼랑처럼 우뚝 서 있구나. 그러나 이런 경지는 그만두더라도 가느
다란 (방편의) 길을 놓아 수행자를 지도하는 부분이 있느냐? 거량해보리라.
(본칙)
도오(道吾 : 769~835)스님이 (제자인) 점원(漸源)스님과 함께 어느 집에 이르러 조문을 하게 되
었는데 점원스님이 관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무슨 말을 하느냐? 얼씨구,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 이놈이 (생사의) 양쪽에 있구나.
도오스님이 말하였다.
“살았어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
-용이 우니 안개가 피어나고 호랑이가 휘파람을 부니 바람이 이는구나. 모자를 사고 나서 머리
치수를 잰다. 노파심이 간절하구나.
“왜 말로 못합니까?”
-빗나가버렸다. 예상을 했지만, 잘못 알았군.
“말로는 안되지! 말로는 안되지!”
-더러운 물을 대뜸 끼얹는다.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볍지만 뒤에 쏜 화살은 깊이 박혔다.
돌아오는 길에
-정신을 바짝 차려라.
점원스님이 말하였다.
“스님은 어서 말해보시오. 말하지 않는다면 치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 귀뚫은 사람〔穿耳客 : 달마스님〕은 만나기 어렵고 뱃전에 칼 잃
은 곳을 새긴 자〔刻舟人〕는 많구나. 이같이 어리석은 놈은 쏜살처럼 지옥에 빠진다.
“때리려면 때려라. 그러나 말은 할 수 없다.”
-두번 세번이라도 일을 정중히 해야지. 쳐라! 이 늙은이가 온몸에 흙탕물 투성이가 되었군. 처 음 먹은 마음을 고칠 수야 있나!
점원스님이 후려쳤다.
-잘 쳤다. 말해보라, 그를 쳐서 무엇 하려고 했는가를. 억울한 매는 원래부터 맞을 놈이 따로 있 었는데…….
그 뒤 도오스님이 돌아가시자 점원스님이 석상(石霜)스님에게 이르러 전에 있었던 얘기를 말하
니,
-다 알고서도 한 번 해본거지.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으나 옳다면 매우 기특한 일이다.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살아도 말로 못하고 죽어도 말로는 못한다.”
-너무도 시원하군. 이 밥상을 받을 사람은 따로 있다.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합니까?”
-말은 마찬가지나 의도는 서로 다르다. 말해보라, 전일에 물었던 것과 같은지, 다른지를.
“말할 수 없지, 말할 수 없고 말고.”
-온 천하에 그득하네. 조계의 물결(두 스님의 말씀)이 서로 닮았다고 한다면, 수없이 많은 멀쩡한
사람을 땅속에 파묻는 꼴이 되고 만다.
점원스님은 그 말에 깨우침이 있었다.
-눈먼 놈아! 산승(원오스님)을 속이지 말았어야 좋았을 걸…….
하루는 점원스님이 삽을 들고 법당 위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가자,
-그렇지만 죽음 속에서 살아났구나. 돌아가신 (도오)스님께 그것을 보여드렸더라면 좋았을 걸.
그에게 묻지 말고 먼저 이놈이 당한 한바탕 수치를 살펴보라.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무얼 하는가?”
-후수를 두지 말아라!
“선사(先師)의 영골(靈骨)을 찾고 있습니다.”
-상여 뒤에 약봉지를 달았구나(차는 떠났다). 애당초에 조심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 너는 무
슨 말을 하느냐?
“거대한 파도는 까마득히 질펀하고 흰 물결은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무슨 선사의 영골을 찾겠
다는 것이냐?“
-그래도 그에게 본분소식을 되돌려주었어야 했다. (잡놈들이) 무리를 이루고 떼를 지울 정도로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아이고, 아이고!”
-너무 늦었다.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긴 격이다. (세 명 모두) 한 구덩이에 묻어버렸어야 옳 다.
점원스님은 말하였다.
“쓸데없이 애를 쓰네.”
-말해보라, 귀결점이 어느 곳에 있는가를. 돌아가신 스승께서 전에 그대에게 뭐라고 말했던가. 이 놈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직까지도 빠져나오지 못하는군.
태원(太原)의 부상좌(孚上座)는 말하였다.
“선사(先師)의 영골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대중이여, 보았느냐? 번뜩이는 번갯불과 같다. 이 무슨 낡아빠진 짚신인가? (태원은 그래도) 조 금은 나은 편이다.
(평창)
도오스님이 점원스님과 함께 어느 집에 이르러 조문하였는데 점원은 널〔棺〕을 두드리면서 말
하였다.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도오스님은 말하였다.
“살았어도 말로 못하며, 죽었어도 말로 못한다.”
이 말 속에서 알아차리고 그 의도를 알면 이는 바로 생사를 투철하게 벗어나는 관건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반드시 정통으로 빗나가게 될 것이다.
잘 살펴보라. 옛사람들은 행주좌와 언제나 ‘이 일’만을 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남의 집에 가 조문하면서도 점원스님이 널을 두드리면서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하니, 도오스
은 조금도 그 물음의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에게 “살았어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점원스님도 완전히 빗나가 그가 한 말에 끄달려 다시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말로 할 수 없다고 하십니까?”
“말로 할 수 없지, 말로 할 수 없다.”
도오스님은 자비스러움이 굽이굽이 서려 있다. 그런데도 점원스님은 잘못으로 인해 점점 더 잘못
을 더해나갔다.
점원스님은 그때까지도 스스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빨리 말해주시오. 말하지 않으면 치겠습니다.”
이놈에게 좋은지 나쁜지를 가릴 줄 아는 능력이 어찌 있었겠는가? 이야말로 이른바 좋은 마음씨
를 좋게 갚지 못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도오스님은 변함없이 노파심이 간절하여 다시 말하였다.
“때리려면 때려라. 그러나 말로는 할 수 없다.”
그러자 점원스님은 후려쳤다. 비록 매를 맞기는 했지만, 그는 한 수 이긴 셈이다. 도오스님은 이
처럼 (땀방울이 아닌)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도록 그를 지도했으나 점원스님 깨닫지 못하였다. 도
오스님은 맞은 후에야 점원스님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떠나도록 하라. 절에 있는 책임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대에게 화를 미칠까 염려스
럽다.”
이에 남모르게 점원스님을 빠져나가도록 하였다. 도오스님은 참으로 자비로웠던 것이다. 점원스
님 그 뒤 작은 절에 이르러 행자(行者)가 외우는 관음경(觀音經)의 “비구의 몸으로 제도를 받을
자에겐 비구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을 한다”는 구절을 듣고 문득 크게 깨친후 말하였다.
“내가 그 당시에 스승을 잘 모르고 나쁜 짓을 했구나. ‘이 일’이 언구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몰랐
구나!”
옛사람(운문스님)의 말에 “도량이 한없이 큰 대인조차도 말에 놀아나는 수가 있다”고 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이를 망정으로 이해하고서 “도오스님의 ‘말로는 할 수 없지, 말로는 할 수 없네.’라는
그것도 말해버린 것이다”고 하며, 이는 등을 돌려 사람으로 하여금 찾지 못하도록 만드는 격이라
고 한다. 이처럼 이해한다면 어떻게 평온할 수 있겠는가. 실다운 경지를 밟았다면 실오라기만큼의
간격도 없을 것이다.
듣지 못하였는가, 칠현녀(七賢女)가 시다림(屍陀林)에서 거닐다가 시체를 가리키면서 물었던 이야
기를.
“시체는 여기에 있는데 (본래의)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큰언니가 말하였다.
“뭐냐, 뭐냐?”
그러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제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쳤다 한다.
말해보라, 깨친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를. 천 명 만 명 중에서 다만 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점원스님은 그 뒤 석상스님에게 이르러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말하자, 석상스님은 앞과 같이 말
하였다.
“살았어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말로 하실 수 없다 하십니까?”
“말로는 할 수 없지, 할 수 없고말고.”
이 말에 그는 문득 깨치게 되었다. 어떤 날 가래를 가지고 법당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
쪽으로 왔다갔다 한 것은 자기의 견해를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예상대로 석상스님이 그에게 물었
다.
“무얼 하는가?”
“선사의 영골을 찾습니다.”
석상스님은 바로 점원스님의 핵심을 쳐부수어 말하였다.
“나의 ‘이 자리’는 큰 파도가 까마득히 질펀하고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무슨 선사의
영골을 찾겠다는 것이냐.”
점원스님이 이미 선사의 영골을 찾았는데 석상스님은 무엇 때문에 그처럼 말했을까? ‘이 자리’에
이르러서 “살아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는 뜻을 말 끝나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틀을 몽땅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대가 이러쿵저러쿵 헤아
리며 찾고 생각한다면 알기 힘들 것이다.
점원스님이 “쓸데없이 애쓰네”라고 한 것은, 그가 깨친 뒤에 자연스럽게 기특하게 말할 수 있었
던 것이다. 도오스님의 한조각 정수리 뼈〔頂骨〕가 황금빛처럼 빛났고, 두드리면 구리 소리처럼
맑았음을 알 수 있다.
설두스님이 한 “아이고, 아이고!”라는 착어에서 의도했던 귀결점은 양쪽에 있었다. 태원 부상좌가
“선사의 영골이 아직도 있다”고 한 것은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이 한 토막의 이야기들은 단박에
한쪽을 드러냈다. 말해보라, 어떤 것이 요체를 깨닫는 것이며, 어떤 것이 쓸데없이 애쓴 것인지를.
“한 곳을 뚫으면 천곳 만곳이 일시에 뚫린다”는 말을 듣지도 못하였는가?
“말로는 할 수 없지, 할 수 없고말고”라고 한 곳에서 그 의도를 꿰뚫을 수 있다면 바로 천하 사
람의 혀끝을 꼼짝 못하게 꽉틀어막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반드시 스스로 참구하여 스스로가 깨
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말고 시간을 아껴야 한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토끼와 말은 뿔이 있고
-(모든 것을) 싹 잘랐구나! 참으로 기특하구나.
소와 염소는 뿔이 없도다.
-(모든 것을) 싹 잘랐구나! 어떻게 생겼을까?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나는 못 속여!)
가는 털도 끊겨서
-천상천하에 나 홀로 존귀하다. 그대는 어디를 더듬거리냐!
산과 같구나.
-(그런 것이) 어디에 있느냐? 고연히 파도를 일으켰다. 생명의 깊숙한 곳을 아프게 찔렀구나.
황금빛 영골이 지금도 남아 있어
-(주둥이질 못하게) 혀끝을 잘라버리고 목구멍을 막아버려라. 한쪽을 잘 드러내었다. 사람들이
‘저놈’을 모를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어디에서 찾으랴.
-한 번 용서해주었다. 자기 속에 갖추어져 있으면서도 모르고 지나갔군. 눈과 귀 속 어디에도 없
지.
찾을 곳이 없음이여!
-예상했던 대로이지. 그래도 약간 나은 편이군. 과연 깊은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신발 한 짝을 가지고 서천으로 돌아가다가 잃어버렸어라.
-조상이 변변치 못하여 자손에게까지 누를 끼쳤다. (원오스님은 탁자를) 치면서 말한다. 무엇 때
문에 여기에 있느냐?
(평창)
설두스님이 회통하여 설명을 잘하는 것으로 보아 운문스님의 자손답다. 일구 가운데 삼구(三句)
의 겸추(鉗鎚)를 갖추고, 말하기 어려운 곳을 말해주고 열리지 않는 곳을 열어주면서 핵심을 송
(頌)하였는데, 그는 곧 “토끼와 말은 뿔이 있고 소와 염소는 뿔이 없다”하였다.
말해보라, 토끼와 말이 어떻게 뿔이 있으며 소와 염소가 어떻게 해서 뿔이 없는가를. 앞의 말을
깨칠 수 있다면 설두스님이 사람을 지도하는 의도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어느 사람은 이를 잘못 이해하고서 “말로는 할 수 없다는 그것이 바로 말함이며, 문구로써는 나
타낼 수 없다는 그것이 바로 구절 있는 것이기 때문에, 토끼와 말은 뿔이 없는데도 뿔이 있다 말
했고, 소와 염소는 뿔이 있는데도 뿔이 없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
다.
옛사람은, 온갖 변화로써 이와 같은 신통을 나타낸 것이 그대들의 이와 같은 정령(精靈) 귀신 소
굴을 타파해주기 위함인 줄을 몰랐던 것이라 하겠다. 이를 깨칠 수 있다면 이 깨쳤다는 말도 필요
하지 않다. “토끼와 말은 뿔이 있고 소와 염소는 뿔이 없나니, 가는 털도 끊겨서 산과 같다”는 네
구절〔四句〕의 송은 마니보주(摩尼寶珠)와도 같은데, 설두스님은 이를 통째로 그대 앞에 토해내
버린 것이다.
맨 끝에는 모두가 죄인의 자백서에 따라서 죄를 다스린 것이다.
“황금빛 영골이 지금도 남아 있어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어느 곳에서 찾으랴”라는
것은, 석상스님과 태원 부상좌의 말을 노래한 것이다. 어째서 찾을 곳이 없을까?
“신발 한 짝을 가지고 서천으로 돌아가다가 잃어버렸다”는 것은 신령한 거북이 자취를 남긴 것
이니, 이는 설두스님이 몸을 뒤재켜 사람을 지도한 곳이다.
옛사람은 “활구를 참구해야지 사구를 참구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미 잃어버렸는데 저들 모두는
무엇 때문에 서로가 다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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