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59칙 조주의 지극한 도〔趙州至道〕

通達無我法者 2008. 3. 3. 10:28
 

 

 

제59칙 조주의 지극한 도〔趙州至道〕


(수시)

하늘을 두루고 땅을 감싸며 성인을 뛰어넘고 범부를 뛰어넘으니 백 가지 풀 끝에서 열반의 오묘

한 마음을 보이고 창칼이 오가는 와중에서 납승의 목숨을 탁 심사한다.

말해보라, 이는 어떤 사람의 은혜를 입었기에 이처럼 할 수 있었는가를. 거량해보리라.


(본칙)

어느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여쭈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게 없고 그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라 하였는데

-앞의 것을 다시 가져왔구나. 무슨 말을 하느냐? 세 겹의 공안이다.


말을 하기만 하면 그것이 곧 간택인데

-입이 꽁꽁 얼어붙었네.


스님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지도하시겠습니까?”

-이 늙은이를 내질렀군. 크아!


“왜 이 말을 다 인용하지 않느냐?”

-도적질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소인의 짓이나, 지혜는 군자를 능가하는구나. 대낮에 도적질하는군.

도적의 말을 타고 도적을 쫓는구나.


“제가 여기밖에 못 외웁니다.”

-둘 다 진흙덩이를 희롱하는 놈들이다. 도적을 만났군. 꼼짝않고 있으니 대적하기 어렵다.


“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게 없고 오로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니라.”

-그래도 (조주스님) 노장님이나 되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이 스님의 눈동자를 바꿔버렸다. 졌

구나.


(평창)

조주스님은 “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게 없고 그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니라”고 하였으니, 이

는 전광석화와도 같아 사로잡고 놓아주며 죽이고 살리기에 이처럼 자재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총

림에서는 모두들 “조주스님은 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난 말재주가 있었다”고 일컫는다. 조주스님의

평소 이 한 편을 가지고서 대중에게 말하였다.

“지극한 도는 어려울게 없고 그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라 하였는데, 말을 하기만 하면 곧 그

것이 간택이며 명백(明白)이다. 노승은 명백 속에 있지 않은데 그대들은 도리어 이를 보호하거나

아끼겠느냐?“

그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명백 속에 있지 않다면 무엇을 보호하거나 아끼겠습니까?”

“나도 모른다.”

“스님이 모르신다면 무엇 때문에 명백 속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십니까?”

“질문 끝났거든 인사하고 물러가거라.”

뒷날 이 스님은 조주스님의 논리의 틈새를 끄집어내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질문한 것은 참으로

기특하지만, 이는 마음의 사량분별로 그렇게 한 것이니 어찌하랴. 조주스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

다면 스님의 물음에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조주스님은 작가였으니 어찌하겠는가.

“왜 이 말을 다 인용하지 않느냐?”고 하자 이 스님 또한 몸을 비키고 숨을 쉴 줄 알았기에 대뜸

“제가 여기밖에 못 외웁니다”라고 했다. 이는 교묘하게 말을 꾸민 것이라 하겠다. 조주스님은 그가 말했던 대로 그대로 말했지만 마음으로 사량분별하지는 않았다.

옛사람(동산스님)은 “끊임없이 이어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하였다. 그는 용과 뱀을 분별하고

길흉을 구별하였으니 그 또한 본분의 작가이다.

조주스님은 이 스님의 눈동자를 바꿔버리면서도 칼 끝에 조금도 흠을 내지 않았으며 사량분별을

하지도 않고 저절로 딱 들어 맞았던 것이다. 여러분은 말을 했다고 해도 안되고 말을 안했다고

해도 안되며, 하지도 않았다고 안하지도 않았다고 해도 안된다. 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

非)를 끊은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이 일’을 의논하려면 번뜩이는 전광석화처럼 단박에 착안해야

만이 볼 수 있으며 머뭇거리거나 주저(躊躇) 한다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

음과 같다.


(송)

물로 씻을 수도 없고

-무슨 말을 하느냐? 몹시 심오하고 원대하다. 어찌 함께 말할 것이 있으랴.


바람으로 날려버릴 수도 없다.

-허공과도 같다. 당글당글 단단하다. 허공을 보고 하소연하는구나.


범이 걸어가고 용이 지나가니

-그(조주스님)는 자재를 얻었구나. 참으로 기특하다.


귀신이 (놀라서) 소리치고 혼령이 울부짖는다.

-대중들은 귀를 막아라! 바람이 스치니 풀이 쓰러진다. (설두)스님도 그와 함께 동참하지 않았느   냐?


머리가 세 척〔三尺〕인 줄 뉘 알리요?

-괴물이로군. 어디에서 온 성인인가? 보았느냐, 보았느냐?


마주하여 말없이 외발로 서 있네.

-쯧쯧! 머리를 움추려라. 한 번 용서해주노라. 산도깨비로다. 용서해줘서는 안되지. (원오스님은)

탁 때렸다.


(평창)

“물로 씻을 수도 없고, 바람으로 날려버릴 수도 없다.” “범이 걸어가고 용이 지나가니 귀신이 (놀

라서) 소리치고 혼령이 울부짖는다”고 하니, 그대들이 입을 댈 곳이 없다.

이 네 구절의 게송은, 조주스님이 대답한 말이 용이 날고 범이 치달리는 것과 같아 스님은 한바

탕 수치당한 것을 노래한 것이다. 비단 이 스님 뿐만 아니라 귀신도 (놀라서) 소리치고 혼령도 울

부짖으니, 이는 마치 바람이 부니 풀이 쓰러지는 것과 같다.

끝의 두 구절은 한 자식(설두스님)만이 친히 알아차렸다고 말 할 만하다. “석 자 긴 머리는 누구

일까? 마주하여 말없이 외발로 서 있다”고 하였다. 듣지 못하였느냐? 스님이 옛 대덕스님(동산스

님)에게 묻는 말을.

“무엇이 부처입니까?”

“머리의 길이는 석 자요, 목의 길이는 두 치니라.”

설두스님은 이를 인용하였는데 여러분은 이것을 알겠는가? 산승도 모르겠다. 설두스님이 단박에

조주스님을 고스란히 그렸으니, 그이 진면목이 여기에 있다. 여러분은 반드시 자세히 눈여겨보아

라.